12.3 내란이 일어난 지 112일째다. 국회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도 100일이 넘었고, 헌재 변론이 종결된 것도 4주가 됐다. 내란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피의자가 서울구치소를 의기양양 걸어 나와 한남동 관저로 돌아간 것도 2주가 넘었다.
전 세계와 온 국민이 실시간으로 목격한 내란행위의 수괴가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음은 너무도 명백하다. 지난해 12월 14일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은 이러한 국민의 일치된 결론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최종 선고를 해야 할 헌법재판소는 차일피일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 헌재는 헌법과 주권자 위에 존재하는가.
하루가 다르게 국력은 쇠약해지고 국격은 무너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으로 안보와 무역 전 영역에서 상황 변화가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파도에 휩쓸린 조각배처럼 이리저리 떠밀려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오판과 실책이 누적된 경제는 추락을 면치 못하고 있고, 민생은 파탄지경이다. 그럼에도 최상목 권한대행을 필두로 한 정부여당의 기득권세력은 자기 이익을 지키고 정치적 장래를 도모하는 데 혈안이 됐다. 이들의 ‘윤석열 살리기’에 국가공동체가 죽을 판이다.
윤 대통령이 법원의 기묘한 판단과 검찰의 의도적인 항고 거부로 석방된 이후 국민들의 분노와 불안은 극에 달하고 있다. 내란 직후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 민주노총 위원장 등 주요 인사를 체포하려 했던 윤석열 일당은 비판세력 제거와 장기집권을 획책했다. 노상원 수첩의 끔찍한 계획과 시신 가방 3천여개 추가 비축 등은 윤석열이 돌아왔을 때의 현실을 미리 보여준다. 그런데도 헌재는 모르쇠다.
헌재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산물이다. 민주헌정을 수호하기 위해, 다시는 위헌적 쿠데타와 독재를 허용하지 않기 위해 국민들이 만들어낸 성과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는 군사쿠데타가 불가능한 나라로 인식됐으나 45년 만에 우려했던 사태가 재발했다. 그런데도 헌재는 자신의 존립 이유를 부정하며 판단과 책임을 미루고 있다.
우리는 수많은 외침에도 자주독립을 끝내 지켰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분단과 독재를 넘어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이뤄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국민적 역량으로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내란이 일어나고, 기득권세력이 이를 옹호하며, 내란수괴가 버젓이 관저에서 대통령 놀이를 하는 현실에 자부심도, 희망도 꺾였다. 가장 큰 책임이 지금 헌재에 있다. 극우세력의 발호와 폭력난동에도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인내하는 국민에게 더는 고통을 안겨서는 안 된다. 윤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이랍시고 산불 피해자를 위로하고 정부와 지자체에 대응을 당부하는 메시지를 올리는 것도 국민들에게는 모욕이다. 다음 개헌에서 현행 헌법재판소 제도를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는 점을 자각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