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24일 한덕수 국무총리의 탄핵심판을 기각했다. 헌재 재판관 8명의 판단은 기각(5인), 인용(1인), 각하(2인)로 각각 갈렸다. 한 총리의 탄핵소추 사유에는 대통령 윤석열의 탄핵소추 사유의 핵심인 위헌적인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한 혐의(내란 방치·방조)도 포함되어 있어 이 부분 판단이 어떻게 나올지 관심이 쏠렸지만, 헌재는 해당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을 내놓지 않음으로써, 윤석열 탄핵심판 사건 결론에 대한 예단을 차단했다.
한 총리의 탄핵소추 사유 5가지 중 ‘국회 선출 헌법재판관 3명 불임명’ 건에 대해서는 재판관 5인이 “헌법과 국가공무원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이들 중 재판관 4인(문형배·이미선·김형두·정정미)은 한 총리가 국회의 헌재 재판관 3명 선출 과정의 헌법·법률적 하자가 없음에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부담해야 하는 재판관 임명에 관한 헌법상 작위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한 총리가 대통령의 헌법 수호 책무를 규정한 헌법 제66조 및 공무원의 성실 의무를 규정한 국가공무원법 제56조 등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정계선 재판관도 별도 의견에서 한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재판관 임명을 하지 않은 행위’를 두고, “헌재가 헌법질서수호라는 본연의 임무를 계속해 나가지 못하고 무력화되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며 헌법 위반 정도가 무겁다고 봤다.
이들 5인 중 정계선 재판관을 제외한 재판관 4인(문형배·이미선·김형두·정정미)이 한 총리의 재판관 불임명의 헌법 위반을 인정하면서도, 파면할 정도까지 아니라는 결론을 낸 점은 매우 의아하다. 이들은 한 총리의 ‘헌법·법률 위반 정도’가 가볍지 않다고 해놓고, “파면 사유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파면 결정은 정치적 혼란 등 중대한 국가적 손실을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전제하면서, 이를 ‘법 위반 행위의 중대성’과 ‘파면 결정으로 인한 효과’ 사이의 법익형량을 할 때 고려해야 한다는 견해도 덧붙였다.
이러한 판단은 헌재가 지난달 27일 마은혁 재판관 불임명 관련 권한쟁의심판 사건에서 전원일치 의견으로 내린 위헌 결정과도 괴리가 크다. 김복형 재판관은 재판관 임명 거부는 헌법 위반이 아니라고 했고, 정형식·조한창 재판관은 탄핵소추안 의결 정족수 불성립을 이유로 본안 판단 자체를 기피해버렸다. 내용과 최종적인 파면 여부 결정을 달리한 재판관 4인이 “대통령은 재판관을 ‘선별’하여 임명할 수 없고, 실질적으로 심사해 임명 여부를 결정할 재량권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해놓고, 파면 여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는 ‘선별’적 임명을 유리한 양정으로 적용한 것도 모순이다. 이들은 최상목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마은혁 재판관을 제외한 재판관 2인을 선별적으로 임명한 행위에 대해 “헌법 질서가 일부 회복됐다고 볼 만한 사정이 존재한다”는 점을 파면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근거 중 하나로 제시했다.
결국 이번 헌재 결정의 핵심은 재판관들 스스로가 한 총리의 탄핵 사유에 대해 헌법 위반 정도가 무겁다고 판단하면서, 종국적인 신분 처분에 있어서는 면죄부를 줬다는 데 있다. 대통령이든 권한대행이든 현실적으로 위법·위헌 행위에 대한 견제 장치는 헌재를 통한 탄핵 절차가 유일하다. 그런 만큼 입법부의 탄핵권 행사는 물론 헌재의 본안 판단 과정도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이 과정을 거쳐 판단이 도출됐다면, 그에 걸맞은 처분으로 이어지는 것이 탄핵 제도에 대한 국민적 합의다. 그렇지 않다면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공직자들의 위법·위헌 행위는 언제나 면죄부를 받게 된다. 헌법수호 기관인 헌재는 이번 결정이 결과적으로는 대통령과 그 권한대행, 국무위원들의 헌법 위반 상태를 방기하고, 나아가 ‘이 정도 헌법 위반은 괜찮다’는 식의 반헌법적 국정 운영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는 점을 엄중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