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산불이 산청, 의성, 울주 등 영남권을 휩쓸며, 26일 기준 24명이 사망하고 2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또한 산불 피해 면적은 2만㏊에 달하고, 이재민이 6천여 명, 대피한 인원만 해도 2만여 명이나 된다. 오늘로 진화 엿새째가 되었는데, 강풍을 타고 번지는 불길은 좀처럼 잡히지 않아 피해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명·재산 피해만 봐도 역대 최악이다.
이렇게까지 피해가 확산된 이유는 무엇일까? 건조한 산림에 강풍이라는 악재가 있긴 했지만, 진화 등 대응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이번 산불 사망자 대부분은 60대 이상의 고령자들로, 대피소로 가는 도중 차 안이나 도로에서 사망한 경우가 많았다. 재난 상황을 듣고 신속하게 대피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대피 문자도 산불이 해당 지역으로 넘어오기 직전에야 발송됐다고 한다. 봄철 산불은 전국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지역 주민들 다수가 고령인 것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를 고려한 대처가 사고 당시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산불 진화 방식도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이번 산불 사망자 중에는 공무원과 민간 진화대원들도 포함되었다. 지난 2023년 말 산림청은 공무원들의 반발에도 일반 공무원으로 산불 진화대를 구성하도록 전국 지자체에 지시했다. 진화 작업이라는 위험한 업무에 일반 공무원을 투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 당시 공무원들의 반대 이유였는데,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되고 말았다. 민간 진화대원도 마찬가지다. 이는 ‘공공일자리’ 개념으로 고령자들을 모아 일 년에 6개월 정도 운영된다. 이들 대부분은 고작 10시간 정도의 교육만 받은 채 진화 작업에 투입됐고, 이들에게 지급된 방화 물품은 소방대원들이 사용하는 특수물품과 달리 고온의 복사열에 취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대로 된 훈련이나 실전경험 없이 열악한 방화복에 등짐펌프와 갈퀴 등을 들고 무리하게 투입됐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소방헬기는 이번에도 문제가 됐다. 산불 초기 진화를 위해서는 5,000ℓ 이상의 초대형 헬기가 필요하다. 현재 산림청이 보유한 소방헬기 50대 중 초대형 헬기는 5대만 가동 중이다. 또한 이번에 현장에 투입된 헬기는 30~35대로, 15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부품 교체를 하지 못해 지난해부터 운용이 중단된 상태다. 이번처럼 동시다발적 산불이 발생할 경우 100대 이상이 투입돼야 초기 진화가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기존의 헬기들이 노후화된 것까지 고려한다면, 소방헬기 확충은 시급한 사안이다.
이번 산불에서는 무엇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한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당장은 산불진화에 총력 집중해야겠지만, 이후 재발방지를 위한 원인규명은 철저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낙후한 방재 체계나 소방헬기 등 인프라 확충은 산불이 날 때마다 제기된 문제들이다. 해마다 산불 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제 ‘다음에’는 없다. 전면적인 점검과 혁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