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사 한 명이 한국을 헤집고 있다. 알래스카 주지사 이야기다. 지난 24일 방한한 마이크 던리비 알래스카 주지사는 당초 1박 2일 일정을 하루 연기해 2박 3일간 머물렀다. 한국이 알래스카 LNG 사업에 참여하는 문제가 한미 간 통상 협의 테이블에 올라온 탓이다. 던리비 주지사는 SK그룹, 한화그룹, 포스코, 세아그룹, 한국가스공사 등 관련 기업을 빠짐없이 방문하며 사업 투자를 종용했다.
정부 주요 관계자를 이처럼 많이 만난 미국 주지사가 있었나 싶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주무 부처니 그렇다 쳐도, 김동연 경기지사는 왜 만났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그를 국무총리실로 불러 “장기적 파트너십을 기대한다”고 말한 대목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미국이 사업 참여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대행이라지만 엄연히 국정 최고 통수권자가 일개 주지사를 만나 이미 사업 참여가 결정된 것처럼 말한 건 상식 밖이다.
한국에 꼭 필요하고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모를까, 알래스카 LNG 개발 사업은 이미 사업성이 없다고 결론 난 사안이다. 복잡한 손익계산서를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상식이다. 자국에서 나오는 천연가스가 수익성이 있다면, 미국이 굳이 한국에 투자를 압박할 이유가 없다. 만나지 않아도 될 주지사를 총리실로 불러 “장기적 파트너십”을 운운한다면,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항복하겠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알래스카 북부 프루도베이 가스전에서 남부 해안의 수출 터미널이 있는 니키스키까지, 장장 1,280km에 이르는 가스관을 건설해야 하는 사업이다. 니키스키에는 LNG 액화 플랜트는 물론, 저장 및 선적 터미널도 새로 건설해야 한다. 관련 사업비만 한화로 약 64조 원이다. 투자비가 높아 사업성이 떨어진다. 그러다 보니 세계 최대 석유회사인 엑손모빌도 손을 털고 떠난 사업이다. 트럼프가 이 사업을 한국·일본·대만에 떠넘기려 하는데, 대통령 권한대행이 덥석 손을 잡으면 어쩌자는 말인가.
일각에선 “이왕 미국에 뭔가를 줘야 한다면 LNG가 가장 낫지 않겠나”는 의견도 있는 듯하다. 어차피 수입할 에너지라면, 비중을 늘려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주장이다. 동의할 수 없다. 이는 수출기업에 이익이 되는 관세협상을 위해 국민의 전기료를 올리자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이미 한국은 값싼 LNG를 카타르, 호주,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수입하고 있다. 가뜩이나 비싼 미국산 LNG가 ‘통상 안보’라는 이름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지금 필요한 건 협상 카드를 만드는 일이다. 에너지 수입선의 다변화가 절실하다. 현재도 수입하고 있는 값싼 러시아 에너지를 확대하는 것도 방법이다.
더구나 수십조 원을 쏟아부으며 미국의 요구를 들어줄 필요는 없다. 한덕수 총리를 비롯한 이 ‘내란 내각’은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