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예상보다 지연되는 가운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 헌재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지연에 국민적 분노가 치솟는 상황에서, 김성원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은 31일 국회에 출석해 ‘신중한 심리 중’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김 처장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야 의원들로부터 현재 평의 상황과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지연 이유를 묻는 질문을 받자 이같이 답했다.
김 처장은 “(선고) 시기에 대해서는 제가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며 “수차례 평의가 열리고 있고, 심도 깊게 논의와 검토를 하고 계시고, 국민적 관심과 파급효과가 큰 사건인 만큼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서 심리 중에 있다”고 말했다.
김 처장은 ‘조속히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는 사실을 헌법재판관들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나’라는 국민의힘 박준태 의원의 질문에는 “네”라며 “모든 것을 종합해 고려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들어 헌법재판관들의 평의 횟수와 평의 시간이 짧아졌다는 얘기가 전해지면서 다양한 해석도 나오는 중이다. 다만 김 처장은 평의와 관련된 내용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그는 “평의는 수시로 열리고 있고, 필요할 때 항상 하고 있다고 이해해 주면 된다”며 “평의 내용에 대해서는 저희도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의 퇴임(4월 18일) 전에 결론이 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모든 재판은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하는 것을 기본적인 목표로 하고 있다. 원론적인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의 경우 노무현·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 탄핵심판과 비교해 쟁점이 간단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런데도 이미 앞선 대통령 탄핵심판의 심리 기간(63일·91일)을 훌쩍 넘겨, 이날로 벌써 107일째에 접어들었다. 더욱이 내달 18일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퇴임이 예정된 만큼 시민들의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있지만, 헌재는 평의가 길어지는 어떠한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승윤 의원은 김 처장에게 “변론 종결한 지도 벌써 34일이나 지났다. 국민은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 궁금해한다”며 “이 정도는 국민께 알려야 최소한 헌재 헌법기관으로서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라고 따져 물었다.
같은 당 김기표 의원은 “헌법재판관들이 주말에 국민들이 나와서 집회하는 거 알고 있나”라고 물으며 “뭐라고 하던가. 주중에 생업 포기하고 나와 있는 국민들 보고 대체 뭐라고 하는지 묻고 있다”고 울분을 토해냈다.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도 “지난 토요일 광주에 갔는데, 80년 5월을 경험한 분은 너무 무서워서 24시간 각성 상태로 잠을 잘 못 주무신다고 한다”며 “그런데 혁신당에서 기자회견 하러 헌재에 갔더니, 점심시간쯤 되어서 통제가 돼 20분간 갇혔다. 재판관들 점심 먹으러 경호 대동하고 갔다고 하는데, 재판관님들은 일상을 잘 살아가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국회 탄핵소추위원장이기도 한 민주당 소속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헌법재판관들이) 무엇보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는데, 그것과는 결이 다르게 가고 있는 건 분명하지 않나”라며 “그 부분에 대해 최소한 국민 알권리 차원에서 헌재에서 왜 그런지 밝혀야 하는 게 아니냐. 이건 헌재에 대한 최소한의 국민적 요구”라고 강조했다.
김 처장은 “심리할 만한 사안이 상당히 많은 사건이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신속하게 한다고 말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며 “그러나 선고 여부는, 탄핵 사건이 한 가지 사건만 있었던 게 아니고 여러 가지 사건이 같이 진행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재판부에서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현재와 같은 상황에 이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정청래 위원장은 “더 이상은 선고를 미룰 수 없다, 더 이상은 버티기도 어렵고, 회복이 불능하다는 국민의 절규를 헌재 처장이 재판관들에게 잘 전달해 주기를 바란다”며 “헌재도 국민 위에, 헌법 위에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같은 날 국회 대리인단도 헌재에 윤 대통령의 신속 파면을 촉구하는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국회 측은 ▲유흥식 추기경(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의 시국선언 메시지 ▲천주교 사제·수도자 3,462명의 시국선언문 ▲도올 김용옥 선생의 시국선언문 ▲한강 작가 등 작가 414명의 공동 성명서 ▲한국작가회의 문학인 긴급 시국선언 ▲한국독립영화협회 영화인의 성명서 ▲대표적 보수 인사인 조갑제, 정규재, 김진 등의 인터뷰 및 칼럼 ▲대한변호사협회의 성명서 ▲참여연대, 전교조 등 노동·시민단체의 시국선언문 등을 참고자료로 제출했다.
국회 측은 “신속하게 파면 결정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던 절대다수 국민의 예상과 달리 선고기일이 지정되지 않은 채 한 달가량의 시간이 경과하면서 국민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며 “유흥식 추기경이 ‘되어야 할 일은 빠르게 되도록 하는 일이 정의의 실현이며 양심의 회복’이라고 말씀하신 내용과 같이, 헌재가 시대의 정의와 헌법 질서를 지켜주시기를 바라는 국민적 목소리와 깊은 우려를 무겁게 받아들여 주시기를 간곡히 요청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