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 이후 발족한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하 비상행동)에 참여해 함께 일하고 있다. 2016년~2017년까지 이어진 박근혜 퇴진 집회에서는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하 퇴진행동)에 참여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소속은 연출팀. 연출팀은 비상행동의 행사기획팀 안에 소속된 부서다. 집회 때마다 무대 시스템을 마련하고, 무대에 올라 발언하거나 공연하는 이들이 집회의 열기를 끌어올리며 순조롭게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연출한다. 그밖에도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조율한다.
집회는 대체로 토요일에 열리는 방식이지만, 그동안 상황에 따라 긴급하게 평일 집회를 잡기도 했다. 최근에는 거의 매일 집회를 하는 상황이다. 집회 장소 역시 광화문, 여의도 국회 앞, 경복궁역 인근, 한남동 관저 앞, 헌법재판소 인근 등으로 여러 차례 바뀌었다. 비상행동의 집회 외에도 다양한 집회들이 여러 지역과 공간에서 주중과 주말에 열리고 있다.
집회는 발언, 공연, 행진이 중심이다. 비상행동 집회의 경우 발언자는 비상행동의 논의를 거쳐 정한 시민사회단체 소속 발언자와 시민발언 신청자 가운데 행사기획팀의 검토를 거친 이들이 집회 때마다 균형을 맞춰 적절한 규모로 정해진다. 발언 시간은 대개 2~3분 내외로 한정된다. 윤석열 퇴진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하되 당시 상황에 맞는 이슈의 발언을 기획/선별하는 방식이다. 시민발언은 온/오프라인을 통해 퍼져나가며 집회의 기세와 재미, 감동을 배가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집회가 길어질 때는 참여율이 다소 떨어지기도 했다. 발언시 제한시간과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원고를 사전 검토해 욕설, 혐오표현 등을 배제하려고 노력해도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있어 활동가들의 속을 끓인다.
집회의 공연은 연출팀에서 주관한다. 매회 집회 때마다 3팀~5팀 정도의 공연 팀을 미리 논의하고 섭외한 뒤 무대에 올려서 공연한다. 공연은 발언과 발언 사이에 배치하며 팀당 10분으로 한정되어 있다. 겨울이라는 계절과 짧은 집회 시간을 감안해 내린 결정이다. 공연 팀을 결정할 때는 민중가요, 인디, 대중가수라는 특성을 가진 이들이 고르게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다만 민중가요 음악인이 상대적으로 적고, 유명 음악인들 중에서는 참여하려는 이들이 많지 않은 상황이라 항상 동일하게 균형을 맞추기는 어렵다.
집회 공연의 어려운 점은 일반적인 공연이나 페스티벌 무대와 달리 집회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이기 때문에 집회의 정서와 태도를 반영해 시민들의 반응을 끌어내야 한다는 점이다. 민중가수나 이전의 집회 무대에 선 경험이 있는 이들은 구호를 외치거나 선동적인 멘트를 던지며 호응을 끌어내지만, 일반적인 공연과 같은 방식으로 공연을 선보일 경우에는 적절한 반향을 끌어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 스태프.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
그럼에도 다양한 장르와 메시지를 가진 음악인들을 무대에 세우려 노력한다. 집회에 참여한 이들의 정체성과 성향, 지향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지루했다고 하는 공연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감동이 되니 쉽게 말할 일이 아니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인들이 공연으로 집회에 참여하려는 의사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0년대 이후 집회에 꾸준히 참여한 이들이라면 더 이상 집회의 공연이 민중가수 일변도가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유명 음악인들과 인디 음악인들이 광장에서 노래한지는 이미 오래 되었다. 민중가요가 아니지만 사회비판적이고 연대하는 메시지를 담은 노래들이 적지 않다. 대중음악의견가이자 집회의 캐스팅 디렉터로서 이처럼 다양하고 멋진 메시지와 완성도를 담은 노래를 널리 알리는 게 당연하다. TV에 나오는 음악만이 음악의 전부가 아니다. 민중가요만 세상을 비판하진 않는다. 좋은 노래는 더 많은 이들이 들어야 한다. 이렇게도 노래할 수 있고, 이런 음악인도 활동하고 있다고 소개하면 집회의 즐거움과 감동이 커진다. 음악은 긴 집회에 지친 이들에게 힘과 위로를 전할 수 있다. 비상행동의 집회가 구태의연하지 않고 문화적으로 세련되고 품위 있다면 집회에 참여하는 이의 자긍심을 끌어올릴 수 있다. 강아솔,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극동아시아타이거즈, 김뜻돌, 다브다, 단편선순간들, 두번째달, 말로, 솔루션스, 신승은, 아디오스 오디오, 옥상달빛, 요조, 이날치, 잠비나이, 전기뱀장어를 비롯한 1,000여 명의 음악인들을 광장으로 초대한 이유다. 지난 5개월은 대중음악과 집회문화의 징검다리가 되려고 애쓴 시간이기도 하다.
충분한 개런티를 받지 못하는데 무대에 오른 음악인들, 손이 펴지지 않는 강추위에 기타를 튕기고 건반을 누른 음악인들, 수도 없이 무대에 오른 민중가수들, 한밤중과 새벽에도 기꺼이 무대에 오른 음악인들을 잊을 수 없다. 연락 오기를 기다렸다는 반응도 마찬가지다. 한 번도 무대에 올라 구호를 외쳐보지 않았을 음악인들이 당차게 “투쟁!”을 외치고 공들여 써온 멘트를 읽는 건 그들 역시 시민이기 때문이다. 뜨겁게 연대하려는 의지다.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민들에겐 예술가도 노래도 넘쳐난다. 집회가 끝날 때마다 여기저기서 공연이 좋았다는 반응을 확인하고, 몰랐던 음악인을 알게 되었다고, 이렇게 좋은 음악이 많은 줄 몰랐다는 이야기를 듣는 기쁨을 음악인들에게 고이 전하고 싶다. 나 또한 무대 아래에서 숱하게 감동받았다.
하지만 무대에 서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음악인들 중에서 아쉽게 무대에 서지 못한 경우가 여럿이다.. 반대로 함께 해달라는 요청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사양하거나 거부한 음악가들도 무척 많다. 최근 극심해진 정치적 대립이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래와 소셜미디어에서 밝힌 태도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예술가들의 모든 것이라고 믿으면 안 될 이유다.
사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광장의 집회에서는 케이팝과 응원봉이 큰 화제가 되었다. 케이팝과 응원봉의 비중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이 두 가지는 남태령 집회 등에 집결한 젊은 여성/페미니스트/퀴어 시민들과 함께 2024년부터 2025년으로 이어진 윤석열 탄핵 집회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민중가요와 인디 음악, 촛불 중심의 기존 집회 문화와 크게 달라진 부분이다. 이에 대한 분석은 이미 많았는데, 기존 활동가들이나 중장년 세대의 반발과 저항이 크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탄핵 반대 집회 쪽에서도 같은 방식을 모방한다는 점 역시 특기할 만하다. 2024년 이후 한국의 집회문화는 크게 달라졌다.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 집회 모습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
다만 비상행동의 서울집회는 광화문 쪽으로 옮겨오면서 야간 집회를 피하게 되고 집회 시간을 줄이는 과정에서 케이팝이 차지하는 비중은 많이 줄어들었다. 집회 도중 케이팝에 맞춰 구호를 외치는 경우는 드물다. 이 같은 방식은 행진 때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집회 때 활용하는 음악은 케이팝이 다수이긴 하지만, 민중가요와 일반 대중가요도 늘어났다. 시민들과 활동가들의 요구이고, 집회가 오래 지속되면서 변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네 번에 걸쳐 디제이가 공연을 했다는 사실 또한 케이팝을 활용한 오늘의 집회가 과거의 집회와 달라진 부분이다. 그래서인지 음악팬들 중에서는 매주 집회 출연 음악인이 누구인지 유심히 살피고 페스티벌에 가는 기분으로 찾아온다는 반응도 있다. 밴드 솔루션스의 팬들은 집회 당일 단체로 굿즈 수건을 들고 맨 앞줄에 앉아 응원하기도 했다.
집회 시간이 한정되어 있고, 다수의 시민들이 앉아서 참여해야 하다 보니 음악 이외의 예술 장르 참여는 적은 편이다. 공연은 대부분 음악 공연이나 풍물/브라질 타악 연주에 국한되어 있다. 시낭송, 댄스를 비롯한 다른 장르의 참여를 항상 고민하고 있지만 수십만이 모인 광장의 무대에 올리기 쉽지 않다.
집회가 다섯 달에 이를 정도로 길어지면서 집회가 다소 정형화되었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변명하자면 겨울이라는 계절 때문에 1시간 반에서 2시간 내에 집회를 끝내야 하다 보니 발언을 길게 듣거나 공연을 오래 하거나 한없이 구호를 외치기는 불가능하다. 비용과 운영 등의 문제로 여러 공간에서 집회를 동시에 개최해 중앙집중방식에서 탈피하기도 어렵다. 집회에 참여하는 인원은 국회 탄핵안 가결과 윤석열 구속 이후 지속적으로 줄었다가 석방 이후 일부 회복했다. 2016년~2017년 박근혜 탄핵 집회 당시 광화문/종로/시청 앞 공간을 모두 활용했던 데 비해 현재의 집회 공간은 축소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집회를 주최하는 비상행동에서 매번 집회 때마다 압도적인 스펙타클을 창출하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케이팝과 응원봉을 연결해내 화제를 일으키고 참여자들을 확장하기는 했지만, 그 후 집회를 대표할 수 있는 집단 퍼포먼스는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 부분은 실무 담당자들의 고민 가운데 하나다.
이런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한 깃발들이 케이팝과 응원봉의 뒤를 이은 집회의 스펙타클을 담당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양한 깃발은 집회의 활기와 재미를 끌어냈을 뿐 아니라 개인 참가자들의 참여를 늘리는데 기여했다. 세 번의 깃발 입장 퍼포먼스는 깃발을 든 참가자들의 자긍심과 쾌감을 끌어올리는 주역이었다. 집회의 스펙타클을 비판하는 의견도 있지만 시각적 체험을 전시하고 과시하며 공유하는 문화가 보편화된 상황에서는 적절한 스펙타클의 창출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숏폼을 향유하는 소셜미디어 이용 패턴에 맞춰 집회의 스펙타클과 감동을 확산시키지 못하는 실무 역량의 부족 또한 아쉬운 지점 가운데 하나다.
집회는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들과 시민사회의 활동가/기획자들이 함께 만드는 장이다. 다른 시대와 사안마다 다른 감각과 정체성이 뒤섞이며 집회문화와 언어는 계속 변화하고 있다. 시민의 다양성과 주도성이 더욱 커진 집회의 문화와 언어가 이후의 집회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집회의 문화와 언어는 어떻게 변화할까. 집회의 문화와 언어는 우리 시대의 문화와 예술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광장의 경험과 기억은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바꿔놓을까. 윤석열의 시대가 끝난 이후 우리는 어떤 노래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