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 혐의 유죄 판결로 대선 출마 막힌 프랑스 극우파 리더 르펜

42억원 횡령 혐의로 5년 공직금지, 프랑스 정치 지형도 재편 기회

프랑스 극우 지도자 마린 르펜이 3월 31일 자신의 정치 경력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횡령 사건에 대한 선고가 내려질 파리 법원에 도착하고 있다. 프랑스 법원은 이날 르펜 국민연합(RN) 대표의 횡령 사건에서 유죄 판결을 내렸다. 2 ⓒ사진=뉴시스

편집자주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실질적 리더이자 유력 대선 후보인 마린 르펜 의원이 31일 유럽의회 보좌진 급여를 유용한 혐의로 징역 4년형과 10만 유로 벌금, 5년간 공직 선거 출마 금지라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로써 르펜은 항소심이나 최종심에서 이기지 못하면 2027년으로 예정된 차기 대선에 출마하지 못하게 됐다. 예상대로 RN이 적극적인 반격에 나섰다. RN은  판결 이후 정치적 역풍으로 RN이 시작한 청원에 50만명이 서명했고 2만명 이상이 새로 당에 가입했다고 주장하고 르펜 지지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시위를 조직하고 있다. 르펜의 피해자 코스프레를 막고 이번 기회에 포퓰리즘이라는 안일한 라벨로만 극우를 비판하는 관행을 깨야 한다는 더컨버세이션 기사를 소개한다. 

원문:  Marine Le Pen’s victim narrative is already being constructed – but there are ways to stop her criminal conviction benefitting her

유럽에서 가장 확고히 자리 잡은 극우 정당 중 하나인 프랑스 국민연합(RN)의 상징적 인물 마린 르펜이 유럽의회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르펜은 2004년부터 2017년까지 유럽의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측근들과 함께 유럽 의회 보좌관에게 지급돼야 할 자금으로 당 직원들에게 급여를 지급했다. 법원의 판결에 따면 횡령된 자금은 총 290만 유로(약 42억 원)이며, 르펜이 개인적으로 횡령한 금액이 47만 4천 유로(약 6억9천만 원)에 달한다.

르펜은 4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중 2년은 전자 감시하에 집행유예로 보내게 되고, 나머지 2년도 항소 과정에 있어 르펜이 실제로 감옥에 갇힐 가능성은 작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르펜이 5년 동안 공직을 맡을 수 없다는 점이다. 결정적으로 이 금지 조치가 즉시 시작되기 때문에 항소하더라도 르펜이 다음 2027년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국민연합 내 많은 사람에게 법원의 결정은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국민연합은 2027년 승리를 향해 가고 있다고 굳게 믿었던 유력 후보를 잃은 셈이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올해 초 마린 르펜의 아버지 장마리 르펜의 사망에 이어, 이번 판결을 르펜이라는 이름과 완전히 결별할 절호의 기회로 바라보고 있다.

사실 '르펜 시대'는 이미 막을 내리기 시작했었다. 르펜에 대한 혐의가 처음 제기된 것이 수년 전이었고, 2022년 조르당 바르델라가 르펜으로부터 당 대표직을 이어받으며 지금 상황에 대비해 차분히 준비해 왔다. 르펜의 재판 내내 바르델라는 국민연합의 플랜 B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2024년 유럽 의회 선거에서 국민연합을 승리로 이끌었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몇 주 후 갑작스럽게 실시한 총선에서도 기록적인 수의 의원을 국회에 진출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우파 지지자의 상당수는 바르델라가 총리직에 오를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기에 당시 다소 실망했다. 이런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서 바르델라의 리더십은 더 큰 검증과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르펜이 정치적으로 배제되는 것에 대해 바르델라가 어떻게 반응하고 대응할지는 앞으로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관전 포인트다.

피해자 코스프레

부패 행위가 드디어 법의 심판을 받고 정의가 실현된 것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르펜의 유죄 판결은 그녀가 수년간 횡령을 통해 극우 세력을 체계적으로 키워온 이후에야 비로소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더욱 아이러니한 점은 그들이 공개적으로 '타도하겠다'고 맹세한 바로 그 유럽연합의 자금을 이용해 자신들의 세력을 불렸다는 사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판결은 '너무 늦게 찾아온 정의'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더욱이 이번 판결이 유럽연합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프랑스 국내 정치에서 극우 세력의 전형적인 선전 도구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르펜과 국민연합은 전형적인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자신들의 운명이 브뤼셀을 중심으로 한 '딥스테이트'가 치밀하게 꾸민 광범위한 음모 때문이라고 주장할 것이 분명하다.

공공 기관과 주류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깊은 불신이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크다. 르펜은 법원의 독립성을 교묘하게 부정하고, 이번 판결을 '프랑스 국민의 진정한 수호자'인 자신에 대한 정치적 암살 시도로 교묘하게 포장할 것이다. 그녀는 순교자 이미지를 구축하며 자신의 대의를 '부패한 체제'에 대한 정의로운 투쟁으로 재포장할 공산이 크다. 실제로 바르델라는 이미 르펜의 유죄 판결이 "민주주의의 처형"에 해당한다는 과격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이런 결과가 반드시 일어나야 할 필연적인 수순은 아니다. 극우파의 피해자 서사가 대중에게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지는 상당 부분 주류 엘리트 행위자들의 대응과 선택에 달려 있다. 언론인, 정치인, 전문가와 같이 공공 담론 형성에 접근할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 이 시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주류 언론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로 르펜과 극우 세력에게 불필요한 관심을 안겨주는 대신, 냉철하고 심도 있는 분석에 집중해야 한다. 개인의 행보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더 넓은 사회적, 정치적 맥락과 문제점에 시선을 돌려야 한다. 그래야만 극우 세력의 피해자 프레임이 대중의 공감을 얻고 자리 잡을 가능성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좋은 보도란 사건 자체에 대한 정확한 사실 전달을 넘어,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국민연합이 반드시 시도할 ‘정치 쇼’가 아닌 실질적인 정치 의제에 주된 초점을 맞춰야 한다. 국민연합의 사회 모델이 그들의 주장처럼 '엘리트에 반대하고 국민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하향식 권위주의 국가 체제 아래 다른 형태의 엘리트가 통제권을 장악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 날카롭게 파헤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만 하면 유권자는 극우 세력이 진정으로 서민의 편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권력, 부, 계층 구조의 편에 서 있음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그들을 '포퓰리즘'이라는 레이블로 안일하게 취급해 온 관행이 가져온 피해를 상당 부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다.

끝으로 진정으로 가치 있는 보도는 극우 세력이 선호하는 의제를 논의 중심축에서 과감히 배제해야 한다. 좌파, 우파, 중도파를 막론한 기성 정치인들이 자기 나라가 직면한 다양한 위기를 해결하는 데 있어 자기가 얼마나 무능해서 실패하고 있는지를 숨기기 위해 대중의 관심을 극우 세력으로 자꾸 돌리지 않았다면 극우 정당은 오늘날과 같은 강력한 영향력을 결코 확보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론 조사 결과가 명확히 보여주듯이 일반 시민에게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관심사에서 극우 정당의 핵심 의제는 놀라울 정도로 낮은 순위를 차지한다. 대신, 시민들은 경제적, 사회적 불안정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보다 과감하고 급진적인 대책이 필요한 이슈들을 우선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극우 정당은 사회의 실질적인 문제에 대해 어떠한 실효성 있는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한다. 그들은 단지 국민이 공동의 이익을 위해 단결해 맞서 싸울 수 없도록 사회적 분열만 교묘하게 조장할 뿐이다. 르펜이 정치 무대에서 일시적으로나마 사라진 현 시점은, 공론장의 의제를 다시 진정한 민주주의와 희망의 가치로 되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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