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80세 노인을 사회가 부양하는 게 ‘폰지사기’인가

청년세대에 국민연금 ‘공포마케팅’하는 보수진영 대선주자들

이준석 의원이 공개한 국민연급 급여 지급 내역서 ⓒ온라인 커뮤니티

지난 1일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거쳐 공포됐지만, "젊은 층에 불리한 개혁"이라는 비판이 보수진영 대권 주자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특히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지금의 국민연금을 '폰지사기'라고 비판하기까지 했다.

이 의원은 이 의원은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 시민의 국민연금 납부·지급내역서를 게시했다. 해당 내역서에는 한 시민이 8년 3개월(99개월) 동안 보험료 총 657만2,700원을 납부해 2001년 4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약 23년간 총 1억1,846만280원의 연금을 수령한 내역이 담겨 있다.

이 의원은 이를 두고 "657만원을 불입하고 1억원 이상을 수령한 셈"이라며 "물가는 대략 4배 올랐지만, 연금 수령액은 납부액의 20배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래의 세금과 재정 부담을 떠넘겨 현재의 표를 얻는 복지 정책을 실행한다면 그것은 폰지사기와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이 공개한 지급 내역서를 보면 의아한 부분이 보인다. 99개월 납부에도 국민연금 급여를 지급받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민연금은 최소 10년(120개월) 가입해야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는 해당 가입자가 '특례 노령연금' 대상이기 때문이다. 1988년부터 시행된 국민연금은 시행 당시 가입확대를 위해 5년 이상만 가입해도 급여 자격을 줬다. 시행 시점에서 50대는 가입기간 10년을 채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1995년 농어촌 지역까지 가입대상을 확대하면서 '특례' 대상을 확대했고, 1999년 1차 연금개혁으로 전국민으로 대상을 확대하면서도 '특례 노령연금' 대상을 뒀다. 특례 노령연금 대상은 1999년 4월 1일을 기준으로 50세 이상인, 1949년 이전 출생자가 해당된다.

지금 기준보다 적게 내고도 급여 자격을 얻을 수 있으니 현재 기준으로는 유리한 것이 맞다. 그러나 초기 가입자에게 혜택이 관대한 것은 전 세계가 마찬가지다. 실제 국민연금이 도입될 당시, 국내에선 '5년 가입' 특례를 두고서도 턱이 너무 높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유럽 등에선 공적연금을 도입할 때 납부 이력이 없는 노인세대에게 최소한의 급여를 지급하면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 국민연금이 시행 초기에는 임금의 일부를 강제로 징수하는 국민연금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했다. 국민연금 지급 사례를 늘려, 국민들 사이에 국민연금의 효능감을 높일 필요도 있었다.

특례 노령연금 대상자라도 급여를 모두 지급하지 않았다. 특례 노령연금은 급여의 25%만 지급됐다. 1999년 소득대체율 60%를 기준으로 15%의 소득대체율이 적용된 것이다. 이마저도 '특례'인 만큼 일부 사례에 불과하다. 국민연금공단 수급자 현황에 따르면 2023년 12월 기준 특례노령연금 수급자는 전체 수급자 중 21.9%(121만여명) 수준이다.

해당 지급 내역서의 가입자가 2001년부터 급여를 지급받을 것을 고려하면, 2001년 기준 60세, 1941년 출생자로 추측된다. 그가 99개월 동안 납부한 657만원을 당시 보험료율 6%를 기준으로 역산하면 월 임금은 115만원 정도다. 납입시점으로 추측되는 1993년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240만원이다. 해당 가입자는 2024년 1월 약 23년에 걸쳐 83세가 될 때까지 1억1천만여원을 급여로 받았다. 월 평균 급여로 보면 40만원대다.

80대 노인에게 월 40만원 정도의 생계비를 사회가 지급하는 것을 두고 '폰지사기'라는 비판은 썩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8회 국회(정기회) 제14차 본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4.12.02. ⓒ뉴시스

무엇보다 이 의원이 착각하고 있는 것은 국민연금은 금융상품이 아닌 정부가 운영하는 복지정책이라는 점이다. 현재 국민연금은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를 수급자에게 그대로 지급하는 구조다. 지금은 보험료로도 모든 급여를 주고도 남는다. 남는 돈은 국민연금 기금으로 적립된다. 즉, 국민연금은 현재 노동세대가 은퇴한 노년세대를 공동으로 부양하는 사회적 연대에 기반한 제도다.

복지정책을 '폰지사기'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 같은 사회적 연대를 반대한다는 말과도 같다. 이 의원과 같은 논리라면 모든 복지정책이 문제가 된다. 의료보험을 예로 들면 의료 서비스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노년세대가 의료보험비를 더 많이 내야 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의원은 국민연금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두고서도 "소득재분배의 기능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적용되어야 공정하다"고도 했다. 주장의 찬반을 넘어 가능하기나 한 일인지 궁금하다. 각 세대가 격리돼 사회를 구성하지 않고서야 가능할 리 없다.

아마 이 의원의 발언은 KDI(한국개발연구원)이 제안한 '신연금'에 힘을 싣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KDI가 제안한 신연금은 현재 국민연금 제도를 '구연금'으로 격리하고,  확정기여형(DC)으로 운영되는 '신연금'을 운영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신연금 도입을 위해선 조건이 필요하다. 신연금 도입 시점부터 기금을 따로 분리하기 때문에 구연금의 급여 지급을 위해 609조원의 국고가 투입돼야 한다. 물가 상승률, 기금 수익률 등을 고려하면 609조원을 한번에 밀어 넣지 않으면 투입 규모는 더 커진다. 실현 불가능한 수준이다. 만일 정부가 이를 실현한다고 해도 결국 세금으로 돌아와 청년세대에게 이중으로 부담을 주게 된다.

물론 보험료율을 13%로, 소득대체율을 43%로 인상한 이번 국민연금 모수조정이 청년에게 유리하지만은 않다. 소득대체율을 2022년 수준으로 복구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청년세대가 보험료를 많이 낸 만큼 급여를 더 많이 받지 못해 손해라는 것이 이 의원 등이 제기하는 비판이라면 소득대체율을 더 올리자는 주장이 뒤이어 나와야 한다. 지난 연금개혁 공론화 결과로 나온 '소득대체율 50%'로 인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20년 전인 2007년 가입자보다 2026년 가입자의 급여가 확실히 더 늘어나게 된다.

이번 국민연금법 개정을 두고 모두가 미완성이라고 지적한다. 국민연금이 국민 모두의 노년을 책임질 복지정책이 되기 위해선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청년착취', '폰지사기'라는 표현으로 국민연금 자체에 대한 신뢰를 흔든다면 국민연금은 그저 세대간 갈등 요소로 전락하게 된다.

애초에 국민연금 급여는 '보험료 액수'과 '기금운용 수익률'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국민연금 급여산출식에는 오로지 가입자의 월 평균 급여와 전체 가입자의 급여, 가입기간이 반영된다. 애초에 정부가 '낸 돈은 얼마, 받는 돈은 얼마'라는 식으로 표현하면서 오해를 키운 책임도 있다. 국민연금에서 '내가 낸 돈도 못 받게 될 것'이라는 식의 공포마케팅은 국민연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소리다.

이 의원 등 보수진영의 대권 주자들이 현재 청년세대의 노후보장을 걱정한다면 세대갈등을 유발하는 공포마케팅보다 국민연금 급여산출식부터 찬찬히 읽어 보고 국민연금제도를 제대로 이해한 뒤 생산적인 토론을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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