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코어나 헤비메탈 계열의 음악을 들으면 이 격렬한 음악이 가리키는 마음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마음이 언제 이렇게 비감해지고 뜨거워지는 걸까. 김수영의 시처럼 우리는 대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 족속이지만, 금세 식을 분노로도 얼마든지 펄펄 끓어오를 수 있다. 세상이 끊임없는 짜증과 분노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지난 몇 달 동안 이어진 내란뿐일까. 먹고 사는 일, 먹고 살기 위해 애쓰는 일, 다른 이들과 함께 사는 일 모두 고통이 된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삶의 순간마다 모두의 내면이 상처받고 피 흘리고 울부짖는 이유다. 그 때마다 다 표현하지 못해 견디고 참거나 다른 방식으로 표출하기 일쑤이지만, 그 순간의 마음을 곧이곧대로 표현하자면 하드코어나 헤비메탈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최근 정규 2집 [A LOVE SUPREME]을 발표한 포스트하드코어밴드 체인리액션의 신작 역시 슬픔과 고통이 넘실거린다. “텅 빈 껍데긴 으스러지고 / 사나워지는 표정과 몸짓으로 / 네 목을 물고 네 위에 몸을 세우고”(‘Evidence’), “아무리 걸어봐도 / 닿는 땅은 모두 거짓뿐 / 마음을 나에게 / 되돌릴 힘이 없어”(‘Buried Mind’) 같은 가사의 주인공은 거짓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겨우 버티거나 무너지고 쓰러진다. 이처럼 비관적인 세계인식은 노래 속 주인공들이 얼마나 처절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줄 뿐 아니라 그들의 처지에 우리를 투영하게 만든다. 한 사람의 시민으로 살아가지만 기실 별다른 힘이 없는 우리는 이 같은 노랫말이 거짓이나 과장이라고 부정하지 못한다. 외면하지 못한다.
체인리액션 'A LOVE SUPREME' ⓒ체인리액션 인스타그램
체인리액션의 음악은 이 같은 상황과 태도와 인식을 포스트 하드코어의 어법으로 말한다. 속주와 짧은 길이, 맹렬한 분출이라는 장르의 고유한 방식을 유지하면서 더 다양한 구조를 활용해 상투적인 방법론의 반복을 뛰어넘는다. 언제 어떻게 터트리고, 터트리기 전까지 어떻게 사운드를 제시해 몰고 가는지, 어떻게 비감하고 장엄한 정서를 아름다움으로 연결해내는지 살피면서 들어야 할 음악이다. 이를 위해 각각의 연주자가 어떤 연주를 구사하고 어떻게 변형시키는지 귀 기울여 들어보면 체인리액션의 음악이 단순명쾌한 음악이 아님을 이해하게 된다. 대개의 록 음악이 그러하듯 리프를 통해 주제를 먼저 제시하고 변형한 후 복귀하는 간명한 음악이 아니다. 흐름을 쌓아가면서 만들어내는 밀도와 드라마틱한 연주가 음악의 완성도를 높이는 ‘Evidence’ 같은 곡이 있고, 다른 록 하위 장르의 어법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곡들이 한 음반에 담겨 있다.
음반의 라이너노트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했듯 오래 전부터 다양한 록 음악을 꾸준히 들어왔다면 훨씬 더 많은 가치와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는 음반이다. 지금의 대중음악은 이렇게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면서 재창조하는 혼종의 시대라는 사실이 체인리액션의 음반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저 과거의 음악을 복제하거나 존경을 표하는 차원이 아니다. 과거의 유산이 박제될 만큼 낡지 않았으며, 얼마든지 현재와 연결할 수 있다고 설득하며, 체인리액션이 그 유산들을 능수능란하게 부활시킬 수 있는 밴드임을 보여주는 음반이다. 드물게 록 발라드를 시도한 ‘Reprise’ 또한 이들의 노력이 얼마나 다양한 도전으로 채워지고 있는지 드러내는 증거다.
Chain Reaction 'Numb'
하지만 11분 40초에 이르는 ‘A Love Supreme’를 빼고 이 음반을 평가할 수는 없다. 곡의 긴 길이를 빼곡하게 채우는 도저한 연주와 가창에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추억으로 현재의 고난을 이겨내려는 의지가 장렬하게 피어난다. 고난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사람은 단호한 결단으로 오늘을 맞이한다. A-A’-B-A라는 전형적인 구조에 기대는 대신, 의지의 발산과 진실한 고백을 위해 구성한 곡의 도도한 흐름은 묵직한 감동을 선사하는 주역이다. 록의 전성시대가 다시 오는 것 아니냐는 섣부른 기대에도 장르의 균형은 여전히 부족한 현실에서 이러한 곡의 존재가 얼마나 귀한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한국 록의 토대와 다양성을 뒷받침하는 음악인의 존재에 대해, 그들이 얼마나 피땀 흘려 연주하고 창작하는지 납득하기 위해서는 이 곡 하나면 충분하다. 어떤 노래는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