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견고딕체로 말한다. 볼드까지 넣는다. 내 면상에 신경 꺼! 내 인상 내 인성 내 인생에 신경 끄라고!”
수민은 온통 검은 옷에 검은 화장을 한 채 등장하며 소리친다. 관객을 향해, 선입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타자를 향해, 어쩌면 세상을 향해. 도대체 이 아이는 왜 이러는 걸까?
‘2022년 창작 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되어 초연되었던 연극 ‘견고딕걸’이 2025년 두산아트센터 무대에 다시 올랐다. 하드 펑크 고딕 메탈 스타일로 나타난 김수민의 ID는 ‘고딕 엑스트라 걸’이다. ‘견고딕걸’은 바로 김수민의 ID를 줄여놓은 것이다. 외형과 ID가 찰떡같은 궁합을 보이는 김수민의 등장으로 돌아가 보자.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어버린 동생의 죽음
2년 전, 수민은 쌍둥이 동생 수빈이 전철을 기다리던 한 사람을 철로로 밀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잘나가는 작가이자 강사인 엄마는 딸의 죽음을 유추할 수 있는 모든 흔적들을 없애려고 한다. 수빈의 사건은 살인을 저지른 피의자가 사망하면서 공소권은 소멸되고 만다. 자식이 죽었지만 온전히 죽음을 애도할 수 없는 가해자의 가족, 피해자이지만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피해자의 가족. 이들은 모두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살아간다.
연극 '견고딕걸' 공연 사진 ⓒ극단 작은방
어느 날 수민은 집을 나선다. 수민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다. 동생 수빈이 때문에 자식을 잃은 피해자를 만나 사과하는 것이다. 수민의 여행길에 피해자 한지은의 각막을 이식받은 화이트 해거 ’윤미나‘가 동행한다. 그리고 윤미나의 심장을 기증받은 ‘강연지’까지 함께 한다. 수민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게 될까?
‘견고딕걸’의 작가 박지선은 미국의 고등학교에서 총기 참사를 일으킨 가해자의 가족이 쓴 책을 읽고 ‘만일 가해자 또래의 형제가 있다면 그 아이는 이 거대한 진앙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인간의 선한 의지에 대한 작가의 믿음은 김수민을 통해 발현된다. 또한 작가는 수빈이 저지른 가해의 이유를 전혀 다른 곳에서 찾고 싶어 하는 엄마를 통해 인간의 이기심 또한 놓치지 않는다.
진정한 사과와 책임에 대해
모범생 딸에 죽음의 이유를 찾는 엄마는 자신의 잘못을 뒤늦게 알아채지만, 엄마의 통곡에는 피해자에 대한 미안함이나 애도는 없다. 엄마를 대신해 가해자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야 했던 수민의 아픔은 무엇으로 치유될 수 있을까? 수민의 사과는 피해자의 죽음 앞에 가닿을 수 있을까?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중립은 없다. 가해자는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고 피해자는 충분히 애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남겨진 가족들은 또 다른 문제다. ‘견고딕걸’은 뜻하지 않게 가해자의 가족이 되어버린 견고딕걸 김수민을 통해 답을 찾으려 한다. 진정한 사과란 무엇이며, 책임을 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것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연극 '견고딕걸' 공연 사진 ⓒ극단 작은방
‘견고딕걸’은 건반·타악·베이스 세 명의 연주자가 함께 무대에 올라 라이브 음악을 연주한다. 라이브 음악은 효과음이 되기도 하고, 등장인물의 심리를 대신하기도 하며, 무대 배경이 되기도 한다. 80분 동안 배우 서지우, 문가에, 임예슬, 김채원, 박세정 등이 등, 퇴장 없이 열연을 펼친다. 고딕의 틀 속에서 웅크리고 살아야 했던 수민이 세상을 향해 던지는 질문, 연극 ‘견고딕걸’은 4월 13일(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된다.
연극 ‘견고딕걸’
공연 장소 : 두산아트센터 Space111 공연 날짜 : 2025년 3월 29일(토) ~ 4월 13일(일) 공연 시간 : 평일 19시 30분/주말 15시/월요일 공연 없음 러닝 타임 : 80분 관람 연령 : 만 13세 이상 관람가 (2012년생 포함 이전 출생자 관람 가능) 창작진 : 작 박지선/연출 신재훈/음악감독 정준/작곡 고수영/연주 고수영, 윤두호, 최율태/무대디자인 송지인/조명디자인 김효민/영상디자인 고동욱/음향디자인 박재식/분장디자인 장경숙/의상디자인 이윤진/소품디자인 이수진/접근성 매니저 권지현/음성해설 대본 구지수, 김내원/음성해설 낭독 윤진성/접근성 운영도움 정수현/무대감독 안지형 출연진 : 서지우, 문가에, 임예슬, 김채원, 박세정 공연 예매 : 두산아트센터, 인터파크 티켓 공연 문의 : 극단 작은방 0507-1410-0233 휠체어석 및 공연접근성 문의 010-9685-90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