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was really, really the height of democracy” (그것은 정말, 정말로 민주주의의 정점이었어)
지난 4일 ‘안국동 사거리’에서 민주시민들과 함께 윤석열 탄핵심판 결과를 지켜본 알렉스(Alex)가 한 말이다. 이탈리아에서 온 알렉스가 한국에서 산 지는 5년. 여행하다가 한국에 매료되어 한국에서 살기로 결심한 그가 이날 본 모습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는 “변화시킬 힘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내게 ‘신선한 공기’와 같아”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That’s beautiful”(그것은 아름다워)
특별한 나라에서 마법과 같은 일
알렉스는 이날 오전 9시 45분쯤 안국역에 도착했다. 오전 11시부터 탄핵심판 선고가 예정돼 있었기 때문에, 일찍 도착한 줄 알았던 알렉스는 안국동 사거리 상황을 보고 놀랐다. 이미 그곳에는 수많은 시민이 모여 “윤석열을 파면하라”고 외치고 있었다. 알렉스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잔 게 분명해”라고 말했다. 실제, 시민들은 몇날며칠 이곳에서 밤새우며 윤석열에 대한 만장일치 파면을 촉구했다. 그리고 이날 드디어 4개월 동안 마음 졸이며 학수고대해온 탄핵심판의 결과가 나왔다.
안국역 사거리에는 탄핵심판 선고를 생중계로 볼 수 있는 대형 화면이 설치됐다. 1719개 노동시민사회단체의 연대체인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설치한 화면이었다.
지난 4월 4일 안국역 사거리에서 한 시민이 피켓에 얼굴을 파묻고 문형배 재판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2025.04.09. (알렉스가 찍은 필름카메라 사진) ⓒ알렉스(Alex)
오전 11시쯤 문형배 헌법재판관이 선고문을 읽기 시작하자, 안국동 사거리 일대가 고요해졌다. 수많은 시민들이 숨죽여 문 재판관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알렉스는 이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 알렉스는 “한동안 숨 막힐 것 같은 침묵이 이어졌어. 미래가 걸린 일이었어. 사람들은 매우 걱정하고 있었고, 절실했어. 나는 그걸 느낄 수 있었어”라며, 선고문의 마지막 문장을 듣기 위해 기다리던 시민들의 모습을 묘사했다. “어떤 사람은 울고, 어떤 사람은 기도하고, 어떤 사람은 차마 그것을 보지 못했어. 얼굴을 배너에 완전히 파묻고 귀 기울여 듣고만 있었어.”
알렉스는 재판관이 윤석열 측의 주장을 전부 물리치고 마지막 문장을 읽을 때 시민들의 반응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폭발하듯 터져 나왔어. 박수를 치고, 소리를 지르고, 정말 많은 사람이 울고, 낯선 사람끼리 껴안고, 모두가 서로를 돌아보며 안고, 하이파이브를 하고, 환호성을 질렀어.”
4월 4일 광장에서 긴장된 모습으로 얼굴을 피켓에 파묻고 귀로만 탄핵심판 결과를 듣던 시민이,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선고문 마지막 문장을 듣고 환호하는 모습. 2025.04.09. (알렉스가 필름카메라로 찍은 사진) ⓒ알렉스(Alex)
4월 4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을 파면하자, 시민들이 껴안으며 좋아하고 있다. 2025.04.09. (알렉스가 필름카메라로 찍은 사진) ⓒ알렉스(Alex)
모두가 하나 되어 기뻐하는 모습에, 그는 “마법과 같았어”라면서 “민주주의 정점이었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을 “매우 열정적인 사람들이 있는 ‘특별한 나라’(special country)”라고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그는 고향 이탈리아와 비교해서 설명했다. 그는 “이탈리아인과 한국인 사이에 많은 공통점이 있지만, 이탈리아에서는 불만이 있더라도 절대 시위를 하지 않아. 왜냐면 우리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I’m so happy to be in a country where the people feel that they can make a difference”(나는 무척 행복해. 국민들이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느끼는 나라에 있다는 게)
일본인의 눈물 "감동했습니다"
4월 4일 안국역 사거리에서 윤석열 파면을 촉구하는 시민들과 함께 헌법재판소의 파면선고를 지켜본 일본인. 그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고 “감동했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민중의소리
“피청구인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문형배 재판관의 마지막 말 직후 모두가 함성을 지르며 좋아할 때, 두 명의 시민이 약간 어눌한 한국말로 기자에게 바닥에 있는 피켓을 주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해당 피켓은 ‘나눔문화’ 측이 배포한 피켓으로 “윤석열 파면 빛의 혁명”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두 시민은 그것을 “기념품으로 갖고 싶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일본인이었다.
그들은 진심 어린 표정과 말투로 이날 광장의 모습을 본 소감을 한국말로 전했다. “와서 좋았습니다. 감동했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파면이 결정되는 순간에 눈물이 나왔습니다. 활기가 엄청 많아서 놀랐습니다. 일본에서는 절대 이런 데모를 안 합니다.”
싸울 준비가 된 시민들
9일 구글 검색창에 ‘south korea democracy’(한국 민주주의)라는 문구를 넣어 검색해 보라는 한 유튜브 채널의 제안에, 직접 검색해 봤다.
NYT 기사 ⓒ뉴욕타임스 온라인지면
그 결과, 가장 상단에 한국을 정의하는 ‘위키피디아’의 글이 떴다. 영어로 된 첫 문장을 번역하면 “한국은 현재 대륙과 동아시아에서 가장 선진화된 민주주의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였다. 그리고 위키피디아 글 바로 밑에는 뉴욕타임스(NYT) 기사가 나왔다. 검색창에 노출된 기사 제목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무모한 지도자를 이긴 방법”이었고, 기사를 소개하는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한국인에게 민주주의는 결코 저절로 주어진 적이 없다. 그것은 권위주의 지도자들에 맞서 고문, 투옥, 유혈 사태를 겪으며 투쟁하여 쟁취한 것이다.” 기사의 첫 문장 역시 ‘직접 거리로 나선 민주시민’에 관한 것이었다. “윤석열의 부상과 몰락은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드러냈지만, 회복력도 드러냈다. 사람들은 항상 민주주의를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페이스북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검색해 봤다. 윤석열 파면에 관한 BBC 기사가 나왔다. 윤석열 파면을 촉구해 온 시민들뿐만 아니라 윤석열 지지자들의 반응도 함께 다룬 영상이지만, 해당 게시물에는 영어로 “그들은 민주주의를 구했다”는 댓글이 달렸다. “미국인으로서 부럽다”, “이게 트럼프였으면 좋겠다” 등의 댓글도 보였다.
알렉스, 일본인, 뉴욕타임스, 외신에 댓글을 단 외국인들 모두 ‘직접 거리로 나선 민주시민의 행동’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변화시킬 힘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내게 ‘신선한 공기’와 같다”는 알렉스의 말처럼, 그것은 민주주의를 살아 숨 쉬게 하는 핵심이었다. 이번에도 한국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어느 비석에 적힌 것처럼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