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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위기 극복 의지가 안 보이는 최상목 부총리의 10조 추경안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조 추경안을 예고했다. 최 부총리는 “산불 피해 지원이 시급하고, 전례 없는 관세 충격으로 우리 산업과 기업의 심각한 피해가 눈앞에 다가온 상황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면서 다음 주 초까지 10조원 규모의 추경안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추경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은 한참 됐다. 지난해 여야 합의가 불발되고 헌정 사상 처음으로 감액 예산이 통과될 때부터 추경은 기정 사실이었다. 그 이후 경기 침체는 점점 더 심각해져서 한국은행이 성장률 전망치를 1.5%로 내놓을 정도였다. 신속하고 과감한 추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각계에서 빗발쳤다. 이 목소리에 귀를 닫고 뭉개면서 시간을 허비한 당사자가 바로 최 부총리다. 4개월 동안 심각한 피해가 누적되고 있을 것을 경제 수장으로서 눈으로 보면서도 꼼짝 않던 사람이 갑자기 ‘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 자체가 황당한 일이다.

어차피 할 추경이었다면 빠를수록 좋다는 것이 상식이다. 침체에 빠진 경제에 마중물을 넣어야 하는데 침체가 심화되면 될수록 추경의 효과가 반감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 부총리는 정부 역할에 소극적이었던 윤석열 정부의 실패를 대통령이 탄핵 된 시점에도 고집스럽게 답습했고, 결국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을 자초했다.

최 부총리가 하겠다는 추경은 늦장일 뿐만 아니라 찔끔이기도 하다. 최 부총리는 추경이 투입되는 분야로 재난·재해 대응, 통상 및 인공지능(AI) 경쟁력 강화, 민생 지원 등을 제시했다. 서민·소상공인 지원에만 10조를 투입해도 될까 말까이고, 트럼프발 관세 대응에는 얼마가 필요할지 모를 일인데 10조를 쪼개서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 듯하다. 경제부총리가 지금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을 얼마나 안일하게 보고 있다는 현실이 암담할뿐이다.

통화관리를 사명으로 하는 한국은행의 이창용 총재조차 지난 2월 추경 규모로 15조에서 20조원을 제시했다. 그때는 관세 대응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현안이 아니었다. 그때보다 내수침체는 눈에 띄게 더 심각해졌다. 최악의 내외 여건 속에서 추경을 하려면 과감하게 제대로 해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데 지금 최부총리가 주장하는 10조 추경은 언 발에 오줌누기도 되지 않는다.

최부총리는 최근 개인적으로 미국 국채를 매입한 것이 알려져 빈축을 샀다. 한 나라의 경제 수장이 자국 통화의 약세에 배팅하는 약삭빠른 처신을 하면서 정작 자신이 책임져야 할 국가 경제의 심폐소생에는 굼뜨고 안일한 모습이다.

가계와 기업에 여력이 없는 지금 상황에서 대응에 나설 수 있는 경제주체는 정부가 유일하다. 다음주에 발표한다는 정부의 추경안이 이대로는 안 된다. 만약 최 부총리가 끝까지 고집을 부린다면 국회가 나서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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