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국무총리가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이뤄진 이 통화에서 두 사람은 한미동맹 강화, 무역균형 등 경제협력, 북핵 문제 등에 대해 협의했다고 총리실은 전했다.
다만 그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이 통화에서 "거대하고 지속 불가능한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 관세, 조선, 미국산 LNG의 대량 구매, 알래스카 가스관 합작 사업, 그리고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대규모 군사적 보호에 대한 비용 지급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또 "어쨌든 양국 모두를 위한 훌륭한 합의의 윤곽과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협상을 '원-스톱 쇼핑'이라고 부른 데서 드러나듯이 미국은 대미 수출관세와 주한미군에 대한 주둔비 지원금(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한꺼번에 테이블 위에 올리려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미 수출관세는 한미FTA에서, 주둔비 지원금 문제는 작년 말 타결한 한미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에서 끝난 문제였다. 그러니 합의와 약속을 깬 건 미국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협상 제안을 '쇼핑'이라고 부르는 등 뻔뻔하고 오만한 행태를 보였다. 우리 정부는 이 문제부터 지적해야 옳다.
협상에 응한다고 하더라도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지금 미국은 EU, 중국, 일본과 힘겨운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이런 국면에서 상대적으로 협상력이 약한 우리가 트럼프의 기를 살려줄 까닭이 없다는 이야기다. 미국이 다른 나라들과 어떤 수준으로 합의를 이룰지, 어떤 전략을 갖고 나서는지 본 후에 협상을 하는 게 더 유리할 것이다. 심지어 우리는 대통령이 파면된 상태다. 본격적인 협상에 나서지 않을 충분한 핑계가 있는 셈이다.
한 권한대행이 '골수까지' 친미주의자라는 것도 협상을 서두르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한 권한대행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보복관세로 강경 대응하는 나라도 있지만, 한미동맹을 안보동맹이자 경제동맹으로 격상시켜 나가는 것이 보다 슬기로운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집권세력은 늘 한미동맹을 '안보동맹이자 경제동맹'이라고 설명해왔다. 새삼 격상할 것이 무엇인지 어리둥절한 말이다. 지금처럼 합의와 약속을 깨고 '원-스톱 쇼핑'을 운운하는 '동맹'이 과연 실체가 있는지도 묻고 싶다.
한 권한대행이 협상을 주도한다면 그저 '퍼주기'로 끝날 것이 뻔하다. 두 달 남은 권한대행은 자신의 처지부터 돌아보고 운신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