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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고교학점제, 어쩌다 ‘사교육 폭탄’ ‘업무 폭탄’이 됐나

2025년 4월 현재 전국 고등학교는 고교학점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국회는 지난 9일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 주관으로 고교학점제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 발제를 맡은 백승진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정책위원장은 고교학점제는 전면화된 지 겨우 1년도 안 되었다며 “사과나무가 열매를 맺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비유들 들며 정책적 손질로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및 교원단체들은 고교학점제 중단 내지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 선 고교학점제,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교육부의 고교학점제 홍보 포스터 ⓒ필자 제공

이상은 높았던 고교학점제

고교학점제는 고등학교에서 대학교처럼 이수 학점과 출석 일수를 채우면 졸업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교육부는 고교학점제를 본격 추진한 문재인 정부 이래로 학생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자율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교학점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해 왔다. 학생이 스스로 진로에 맞게 과목을 선택하고, 진로를 탐색하는 과정을 통해 일종의 ‘교육 민주화’를 이루고 잠자던 교실을 깨운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부의 비전과 현장의 목소리는 판이한 실정이다.

고교학점제를 우려하는 교사들의 목소리는 2018년부터 실시된 ‘2015 교육과정’ 시기부터 있었다. 교육부는 학생들이 과목을 선택하며 진로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자율성과 주도성을 가지도록 한다 했지만 대다수 학생이 진로를 고민하기보다는 쉽고 평이한 과목으로 편중된 선택을 했다. 아직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17살, 18살의 학생들은 대입에 유리하기 위해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선택형 고교 교육과정은 대학조차 자율전공을 확대하여 진로 탐색을 권장하고 있는 국내 추세에도 걸맞지 않고, ‘교육은 직업 교육 이상의 의미를 가져야 한다’는 유네스코와 OECD 같은 국제 표준에도 부합하지 않았다.

전교조를 비롯한 43개 교육시민사회단체가 2023년 10월 19일 서울정부청사 국가교육위원회 앞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수능‧내신 전면 절대평가 실현을 촉구했다. ⓒ교육희망 제공

선결과제 해결 없이 추진된 고교학점제

그럼에도 2017년 문재인 정부 들어 고교학점제 시범학교 지정 및 각종 정책자료 보급이 급물살을 탔다. 그러자 교원단체들은 고교학점제를 추진한다면 다음과 같은 선결과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째, 입시에 유리한 과목으로 편중되지 않도록 내신 절대평가를 요구했다.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보장한다면서 상대평가를 유지한다면 진로 탐색에 필요한 과목을 수강하는 것이 아니라 점수나 등급을 잘 받는 데 도움이 되는 과목으로 편중되는 현상이 벌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둘째, 학생들이 희망하는 다양한 교과목 개설을 위해 교사 정원을 늘릴 것을 요구했다. 한 명의 교사가 과도하게 다양한 과목을 가르칠 경우 수업의 질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셋째, 담임제도 개선이나 대안 마련이다. 학급을 중심으로 하는 담임교사제는 반 학생들이 비슷한 조건에 있다고 가정하고 만들어진 반면, 고교학점제는 같은 반이라도 학생마다 듣는 과목이 제각각이라 담임교사가 학생 지도에 많은 어려움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교사 업무 폭탄이 된 고교학점제

그러나 이 선결과제 중 현재 실행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오히려 교육부는 고교학점제에 따른 행정업무만을 교사들에게 부과하고 있다. 고1 출석 업무 사태가 가장 대표적이다. 3월 초 교육부는 기존의 출결 관리 권한을 담임교사에서 교과교사에게로 넘겼다. 이 문제로 3월 한 달간 학교 현장은 큰 혼란을 겪었다. 담임교사는 학생의 결석이나 결과 사유를 빠르게 파악해 ‘출석인정’인 경우 교과교사들에게 일일이 알려야 했다. 교과교사 또한 ‘출석인정’인지 담임교사를 통해 확인해야 했다. 만일 ‘출석인정’ 서류 구비가 늦어지면 교과교사들은 이미 출결 마감한 것을 다시 풀고 수정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발생했고, 담임교사는 이 과정이 마감될 때까지 출결마감을 할 수가 없었다.

학생들도 출석률(수업 횟수의 2/3 이상)과 학업성취율(40% 이상)을 충족해야 학점을 취득할 수 있기에 병결을 해야 하는 아픈 상황에도 학교에 나오거나 매시간 출석 확인을 받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혼선이 계속되자 급기야 어느 학교에서는 사설 출결관리 시스템을 연 700만 원을 주고 구입해 쓰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금 당장의 어려움은 출결 문제이지만 돌아올 학기 말이면 성취도 40%에 미달하더라도 학교에서 예방 지도와 보충 지도를 통해 학점 이수를 지원한다는 ‘최소성취수준 보장지도’, 매 학기 방대한 양을 써야 하는 ‘학생생활기록부 업무’ 등도 교사들에게는 ‘업무폭탄’으로 예고되어 있다.

학생도, 학부모도 행복하지 않다

2023년 12월,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교육계의 수능과 내신 절대평가 전환 요구를 외면하고 상대평가 유지와 강화를 골자로 한 ‘2028년 대입제도 확정안’을 발표했다. 2028학년도 대입제도와 학생의 진로에 맞게 과목을 선택하는 고교학점제와의 엇박자는 학생과 학부모에게도 큰 부담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개편된 대입안에 따라 올해 고1부터는 내신 등급제가 기존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변경되었다. 등급별 학생 수도 기존 1등급 4%, 2등급 11%, 3등급 23% 등으로 구분되던 방식에서 5등급제는 1등급 10%, 2등급 24%, 3등급 32% 등으로 변경된다. 한 등급 당 학생 수가 늘어나니 경쟁이 줄어들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5등급제여도 상대평가는 유지되기에 전보다 정교한 변별 문항이 필요하다. 결국 내신 시험은 문제 수를 늘리거나 문제 풀이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학생은 더 어려운 시험을 봐야 하는 셈이다. 또한 상위권 학생들의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1등급인 학생 수가 이전 4%에서 10%로 늘어났기 때문에 다른 1등급 학생들과 차별화를 위해서 비교과 영역(예컨대 학교에서 진행하는 각종 프로그램)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치열한 경쟁은 사교육 의존도를 더욱 높여 학부모 입장에서는 더 무거운 교육비 지출 압박으로 돌아왔다.

2028 대입안에는 기존 선택과목을 없애고 1학년에서 배운 공통과목으로 시험을 보게 했다. 문제는 국어, 수학, 영어, 사회, 과학이 1학년 공통과목이지만, 실제로는 모든 선택과목을 완전히 정통하게 이해해야 풀 수 있는 정도로 출제된다는 점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사교육 업체들이 ‘정시파이터’(내신은 등지고 수능에만 전념하는 학생)를 겨냥해 수능 대비 고액의 ‘통합사회반’, ‘통합과학반’을 운영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렇다 보니 내신으로는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전망이 낮아지는 대부분의 학생은 정시로 한탕을 노리거나, 과목을 선택할 때는 최대한 ‘나를 괴롭히지 않을 과목’을 고른다. 심지어 자퇴를 선택하는 학생도 늘어난다. 교육부는 고교학점제를 통해 학생이 진로를 탐색하는 자율성을 주겠다는 청사진을 그렸으나 2028 대입제도와의 충돌은 이런 청사진이 가능하지 않게 만들었다. 2028학년도 수능 실시 계획을 보면 고교학점제와의 부정합성으로 인해 파행적 고교학점제 운영은 이미 예정되어 있다.

전교조는 지난 4월 2일 정부서울청사 앞 기자회견을 통해 고교학점제를 둘러싼 교육 현장의 혼란을 전하며 고교학점제 전면 폐지를 요구했다. ⓒ교육희망 제공


고쳐 쓸 게 아니라 원점에서 재논의

교육부가 야심 차게 진행한 고교학점제는 시작부터 파열음을 내고 있다. 고교학점제는 교사가 전문성을 발휘하기 어렵게 노동환경을 악화시킨다. 학생은 더 어려운 시험으로 1등급을 받아도 불안한 마음에 ‘스펙 쌓기’에 나서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대학입시를 위해 학원으로 달려가야 한다. 더욱이 학생의 진로 선택을 너무 이른 나이부터 강요하는 고교학점제는 국제 교육 표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학부모는 자식을 어떻게든 좋은 학교에 보내겠다는 마음으로 고액의 사교육비를 견뎌내야 한다. 결국 고교학점제로 인해 누구도 행복하지 못한 것이다.

고교학점제가 만들어 낼 불행은 하나의 시한폭탄과도 같다. 따라서 고교학점제를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는 일은 윤석열 파면 이후 맞이할 교육대전환 시대에 필수 불가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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