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보다도 길고 혹독한 겨울이었다. 약 3년 전, 시민들은 손바닥에 ‘王’자를 그리고 생방송 TV토론에 나온 후보자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대통령이 된 윤석열은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다행히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었다. 하지만 탄핵이 인용되기까지 많은 시민들은 차디찬 광장에서 마음을 졸여야 했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는 정책토론 제안을 “정치공세”, “싸움밖에 안 된다”며 ‘토론 무용론’을 펴며 토론을 기피했다. 토론회는 후보자의 자질과 정책 등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다. 토론을 기피한 윤석열 대통령 재임 기간 내내 주요 경제지표들은 내리막길을 걸었고 시민들의 삶은 더 힘겨워졌다. 다음 정부는 민주주의와 경제 재건, 인구 감소와 기후위기 대응과 같은 복합적인 문제들을 풀기 위한 대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기후는 단순한 환경이슈가 아니라 경제, 산업, 일자리, 주거, 복지, 건강, 돌봄, 안전, 지역 불균형까지 시민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민생 문제다.
기후정책이 곧 시민의 삶을 지키는 민생정책이다.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한 한국에서 국정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기후정책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과 국정철학은 매우 중요하다. 후보자들은 기후문제에 관심을 가진 시민들의 질문에 답할 의무가 있다. 이에 기후정치바람과 기후위기비상행동은 ‘기후 단일의제 대선 TV토론회 개최’를 요구한다.
‘기후묻다’ 플랫폼 첫화면 ⓒ‘기후묻다’ 홈페이지
왜 대선 TV토론회인가?
한국은 대통령선거 후보자 토론회 개최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다. 공직선거법은 대통령선거 운동 기간에 후보자를 초청해 3회 이상 대담·토론회를 개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하는 법정 토론회는 국회에 5인 이상 소속 의원을 가진 정당이나 직전 선거에서 3% 이상 득표한 정당의 후보자 혹은 여론조사에서 평균 지지율 5% 이상인 후보자를 초청한다. 이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 후보자는 초청 외 후보자토론회, 소위 군소 후보자 토론회를 별도로 개최한다. 지난 20대 대선에서는 법정 토론회와 언론사 주최 토론회를 합쳐 모두 6회의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하는 법정 토론회 1차는 2022년 2월 21일 경제 분야, 2차는 2월 25일 정치 분야, 3차는 3월2일 사회 분야를 주제로 열렸다. 2월 3일과 11일은 각각 방송 3사와 한국기자협회가 주최했다.
최근 정보를 유통하는 새로운 미디어들과 다양한 채널들이 생겨났지만, 여전히 많은 시민들은 TV토론회에서 후보자들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있다. 한국정치학회가 펴낸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토론회 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신문이나 TV와 같은 전통적인 언론매체를 통해 정보를 획득한다는 응답자가 약 60% 이상으로 가장 많았다.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한 4회의 토론회 중 3회를 시청했다는 응답자도 41%나 되었다. 또한 응답자 중 75%는 토론회가 유익한 편이라고 대답했고, 82%의 응답자는 토론회 시청 이후 주변 사람들과 선거에 대해 활발히 대화했다고 한다. 응답자 60% 이상은 토론회가 후보자의 자질, 정책 공약, 정책수행 능력을 비교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대답했다.
기후 단일의제 대선 TV토론회가 필요한 이유
지난 20대 대선에서 기후위기는 주요한 토론 의제가 되지 못했다. 법정 토론회와 방송사 초청 토론회에서 정치·경제·사회 분야의 다양한 주제로 토론이 이뤄졌지만 기후위기에 대한 심도 있는 후보 간 정책 토론은 이뤄지지 않았다. RE100, 그린택소노미에 대한 질의가 있었지만 용어조차 모르는 후보가 당선되었고, 우리는 지난 3년 동안 그 결과를 경험했다. 일반 시민들은 어려운 용어와 복잡한 국제사회 규범들을 자세하게 모를 수 있다. 하지만, 수출 주도형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의 지도자라면 마땅히 대응 방안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우리가 주춤하는 동안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 보급은 가파르게 확대되었고, 탄소중립은 산업분야 전반으로 확장되었다. 기후재난은 더 강력해지고 자주 발생하고, 불평등한 사회경제적 구조와 맞물려 더 많은 시민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파리협정에 따라 국제사회는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1.5℃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한국도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2018년 대비 40% 감축이라는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제출했다. 다음 정부는 2030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고 기후위기 대응을 국정 운영의 중심축에 두고 시민의 삶을 지키는 ‘기후정부’가 되어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국정 철학과 비전을 가진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대통령 후보들이 기후위기에 대해 어떤 생각과 정책을 준비하고 있는지 시민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 국정 철학으로서 기후의제에 대한 후보자의 생각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기후 단일의제 대선후보 TV토론회를 개최해야 한다.
선거기간이 짧거나 유권자들을 직접 만나기 어려운 상황에서 TV토론은 영향력이 매우 높다. 탄핵으로 인해 짧은 기간 동안 치러지는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우리는 묻고 후보자는 답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확대로 시민들의 살림살이를 나아지게 할 방안을 가지고 있습니까?”, “누구나 폭염과 한파로부터 안전한 집에서 살 수 있어야 하지 않나요?”, “모든 시민이 자동차가 없어도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정책이 있습니까?”, “청년과 지역, 일자리와 복지를 잇는 정의로운 전환의 로드맵을 갖고 있습니까?”
기후시민이 요구하고 묻는다 - 기후묻다 캠페인
기후정치바람과 기후위기비상행동은 이번 대선에서 기후 단일의제 TV토론회 개최를 위한 캠페인을 추진하고 있다. 기후시민들이 직접 TV토론회 개최를 요구하고, 토론회에서 후보자에게 하고 싶은 질문을 모으는 ‘기후묻다’ 플랫폼을 열었다. 기후묻다 플랫폼(https://climateask.org)은 시민 누구나 참여해 대선 후보에게 묻고 싶은 기후질문을 등록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후 단일의제 TV토론회 개최 여론을 형성하고자 한다.
4월 4일 시작된 ‘기후묻다’ 캠페인은 기후 단일의제 TV토론회를 요구하는 1만 5천 명 시민의 목소리를 모아낼 계획이다. 5월 6일까지 진행되는 이 캠페인에 참여한 시민들의 요구를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와 주요 방송사에 전달하고 TV토론회 개최를 요구할 것이다. 토론회 개최 요구 뿐만 아니라 후보자에게 묻고 싶은 질문들로 TV토론회를 구성하려고 한다.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시민의 물음에 답하지 않는 후보자가 시민의 삶을 지킬 수 없다. ‘기후묻다’는 단순한 캠페인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한 시민행동이자, 기후위기대응을 위한 전환의 시작이다. 후보들에게 책임 있는 답변을 요구하며, 유권자가 기후정책을 기준으로 투표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이번 대선에서 기후 단일의제 TV토론회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