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세상에 모든 록산느에게 보내는 사랑 이야기

10주년 맞은 국립극단 청소년극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

국립극단 청소년극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 공연 사진 ⓒ국립극단

록산느를 처음 만난 것은 2015년 소극장 판에서였다. 국립극단 청소년극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딸과 딸의 친구를 공연장에 데리고 갔다. 지금도 그렇지만 청소년극이라고 할 만한 공연이 거의 없던 때였다. 다시 2017년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록산느를 만났다. 이번에는 리뷰를 쓰기 위해서였다. 2025년 세 번째로 만나게 된 록산느는 10년만큼 성장해 있었다.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는 1897년 발표된 에드몽 로스탕의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가 원작이다. 원작은 17세기 프랑스의 검객이자 문인이었던 ‘시라노’가 평생을 짝사랑했던 ‘록산느’의 곁을 죽는 순간까지 지켰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국내에서도 영화 ‘시라노;연애 조작단’(2010), 뮤지컬 ‘시라노’(2017, 2019, 2024)로 제작되어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국립극단에서 청소년극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2015, 2017, 2025)를 무대에 올리며 원 소스 멀티 유즈(OSMU, One Source Multi Use)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10년 만큼 성장한 록산느, 다시 만나다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의 각색을 맡은 김태형 작가는 원작의 주인공인 ‘시라노’가 아닌 ‘록산느’를 주체적인 인물로 재해석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이 작품을 국립극단 청소년극 대표 레퍼토리 작품으로 완성시킨 서충식 연출은, 지난 4월 13일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 작품을 통해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제 초연 이후 10년의 시간만큼 성장한 록산느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아이돌 같은 외모의 세 사람이 객석 앞으로 등장하자 객석이 들썩인다. 이들은 신이 축복을 한몸에 받은 아름다운 외모의 ‘크리스티앙’과 귀족 가문의 젊은 장교 ‘드 기슈’, 그리고 당대 최고의 시인이자 검객 ‘시라노’이다. 시선을 한몸에 받는 이 세 사람 중 주인공은 시라노다. 원작이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진짜 주인공은 달빛처럼 환한 얼굴에 밝고 열정적인 ‘록산느’다.

시라노는 자신의 거대한 코 때문에 록산느에게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고 짝사랑을 한다. 귀족 가문의 젊은 장교 드 기슈는 재력을 내세워 록산느에게 구애를 하지만 매번 거절당한다. 어느 날 록산느는 시라노가 있는 부대에 새로 온 군인 크리스티앙에게 한눈에 반하고 만다. 설상가상 크리스티앙도 록산느에게 빠지고 만다.

그럼에도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유


크리스티앙의 부탁으로 사랑의 편지를 대신 쓰게 되는 시라노는 짝사랑하는 록산느와 크리스티앙의 달빛 아래 키스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라노는 크리스티앙 대신 자신의 사랑을 담아 계속 편지를 쓴다. 한편 드 기슈는 록산느에게 거절당한 복수로 시라노가 속한 부대를 전방으로 보내고 만다. 시라노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록산느는 시라노에게 크리스티앙을 지켜줄 것을 부탁한다.

국립극단 청소년극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 공연 사진 ⓒ국립극단

무대는 죽음이 드리워진 전쟁터로 옮겨간다.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 위태로운 세 사람, 아니 네 사람의 어긋난 사랑으로 이어진다. 관객들의 시선이 시라노의 비극적인 사랑에 쏠릴 즈음 주인공 록산느는 이야기의 중심으로 등장한다. 록산느는 사랑하는 크리스티앙을 찾아 전장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용감하고 무모하게.

록산느, 시라노, 크리스티앙, 드 기슈의 재치 있는 대사와 시적인 대사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현대적인 감성을 만들어 낸다. 무대 가운데를 시원하게 가르며 펼쳐지는 검술 장면은 낭만 활극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대극장 무대로 옮겨지며 등장인물도 늘었다. 록산느와 같이 일하는 뱅상과 세실이, 록산느가 전장을 향하는 여정 속에 만나는 스페인 난민 여인이 새롭게 등장한다. 이들은 새로운 사건의 주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록산느에게 박수를!


다시 록산느에게 돌아가 보자. 록산느와 크리스티앙의 사랑은 이루어졌을까? 비극의 인물 시라노는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도 경험으로 알고 있지만 청춘의 사랑은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10년이란 긴 시간이 지나고 록산느는 자신이 받았던 편지의 주인이 시라노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시라노는 록산느 곁에서 죽고 만다. 이 사랑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모두 청춘을 다해 사랑했고, 사랑했던 시간만큼 성장했다.

자유롭게 유영하는 ‘나’라는 깃털이고 싶었던 시라노 대신, 연극은 록산느를 새로운 세계로 유영하게 만들었다. 록산느는 21세기에 맞게 우주복을 입고 나타난다. 10년 전 그들의 사랑을 비추던 그 달로 떠날 수도 있다. 록산느 자신으로 살아갈 미래의 시간일 수도 있겠다. 록산느의 선택이 무엇이건 록산느는 떠난다. 환한 얼굴로 아주 씩씩하게.

이 장면은 빛의 광장에 쏟아져 나왔던 청년들의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그들도 록산느처럼 환한 얼굴로 씩씩하게 등장했다. 각자 자신이 그리는 세상을 향해, 서로에 대한 사랑을 가슴에 담고서. 우리의 록산느가 10년만큼 성장했다고 느끼는 이유는 바로 이 마지막 장면 때문이었다. 다시 10년 뒤, 록산느가 살아낸 세상은 더 많이 사랑하는 세상이길 바라본다. 올해 10주년을 맞은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는 4월 27일까지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연극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

공연 날짜 : 2025년 4월 10일 (목) ~ 4월 27일 (일)
공연 장소 :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
공연 시간 : 평일 19시 30분/토, 일요일 15시/화요일 공연 없음/4월 23일 (수) 16시 유스데이
러닝 타임 : 105분(인터미션 없음)
관람 연령 : 11세 이상 관람가(2014년 12월 31일 출생자까지)
원작 : 에드몽 로스탕
창작진 : 김태형 각색/서충식 연출/무대·소품 신승렬/조명 이현지/드라마투르기 김옥란/의상 임예진/분장 이지연/작곡·음악 조용경/음향 안창용/움직임 남긍호/피아노 김하정/첼로 최서희, 이현지/바이올린 권오현
출연진 : 도준영, 안창현, 원빈, 이정희, 장석환, 최하윤
공연 예매 : 국립극단 홈페이지, 인터파크 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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