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부활절 다음 날인 21일 선종했다. 최초의 라틴아메리카 출신 교황이자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으로 12년간 재임했다. 재임 기간 전 세계 구석구석을 직접 찾아 빈곤과 평화,
환경 등 인류가 직면한 문제의 해결을
호소하며 행동에 나선 그를 전세계가 추모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름은 청빈의 삶을 실천한 프란치스코 성인(1181~1226)에게서 따왔다. 가난한 자를 위해 평생을 바쳤으며, 수도회를 결성해 공공의 선을 위해 애쓴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을 따라 프란치스코 교황도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이들을 돌봤다. 여러 갈등과 폭력의 현장을 찾아 평화를 호소했다.
아울러 과감하게 가톨릭교회의 변화와 개혁을 이끌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과거 인터뷰에서 “세상으로부터 격리돼 자신의 안위에만 매달리느라 병든 교회보다는 거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느라 멍들고, 상처 나고, 더러워진 교회가 낫다. 자기가 중심이 되려고 하다 수많은 절차와 집착에 사로잡힌 교회는 싫다”고 말했다.
이런 다짐을 바탕으로 과거 가톨릭교회가 라틴아메리카 등에서 원주민을 학살하는 등의 잘못을 저질렀음을 시인하고 사죄했다. 가톨릭 사제들이 동성 커플을 축복하는 것을 공식 승인하는 혁명적 변화도 이끌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은 우리 각자가 자신의 존엄성을 위해 싸울 수 있는 힘과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동성애는 범죄가 아닙니다”라고 이야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었다. 지난 2023년 7월 27일 한국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저는 정전협정 기념이 적대 행위의 중단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는 물론 참으로 더 넓은 세상을 향하여 화해, 형제애, 항구한 화합의 밝은 미래까지도 제시할 것이라고 믿습니다”라며 한반도는 물론 전 세계의 평화를 호소했다.
지난 2014년 한국을 방문해선 세월호 유가족의 슬픔을 위로했다.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 방문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가던 비행기 안에서 열린 언론들과의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추모 행동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세월호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인 지난 20일 발표한 부활절 메시지에서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나는 우리가 ‘평화는 가능한 일’이라는 희망을 새로이 했으면 좋겠다”며 평화를 위한 적극적인 행동을 호소했다. 평화를 위해 평생을 노력해온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을 추모하며, 교황의 뜻이 이뤄질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