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정부 출범을 불과 47일 앞둔 시점에서 최상목 경제부총리와 안덕근 산업통상부 장관이 관세 협상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다. 협상은 ‘2+2’ 고위급 회의 형태로 오는 24일 밤에 개최된다. 관세는 국내 산업 보호, 공급망 재편, 노동시장 구조와도 긴밀히 연관되는 전략적 수단으로, 이번 협상의 성격은 경제 안보, 통상, 한미 관계 등 대외 경제정책의 방향성과 깊숙이 맞물려 있다. 그런데 이런 중차대한 문제를 곧 퇴임할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짓는다고 하니 논란과 우려가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협상 결과는 차기 정부의 국정운영 구상과 충돌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아무리 외교와 통상이 단절이 아닌 연속성을 바탕으로 한다지만, 그 전제는 국민적 합의와 정권 간 인수 협의가 충분히 이루어진 경우에만 타당하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특히 협상 결과가 수년간 우리 산업과 노동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이는 향후 국회와 국민의 동의 없이 졸속 추진된 또 하나의 ‘외교 폭탄’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지난 2017년 황교안 권한대행이 대통령 선거를 불과 보름 앞두고 사드 배치를 발표했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당시 차기 정부였던 문재인 정부는 중국의 경제보복은 물론 미국과도 동맹·신뢰 관계에 있어 어려움을 겪었다.
이번 협상은 설령 미국의 요청이 있었다 하더라도 얼마 후 차기 정부가 들어선다는 점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행’에 불과하다는 명분이라면 충분히 차기 정권으로 미룰 수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럼에도 한 대행은 마치 자기 치적인 양 자평하며 협상을 밀어붙였다. 한 대행의 ‘출마용 외교 폭주’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지는 것도 당연하다.
최근 한 외신과 인터뷰에서도 한 대행은 한미 간에 이미 마무리된 방위비 협상을 재개할 수도 있음을 시사해 논란을 자초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와 안보를 아우르는 포괄적 협상, 즉 원스톱 쇼핑을 하겠다며 방위비 재협상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굳이 먼저 방위비 분담금 얘기를 꺼내는 것은 매우 적절치 못하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에 저항하지 않을 것’, ‘한국의 부는 미국 덕분’이라는 말도 덧붙였는데, 이 역시 우리의 협상력을 상당히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대체 그 의도가 무엇인지 의심케 한다.
정권 말기에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가 달린 관세 협상에 무리하게 뛰어드는 것은 차기 정부에 족쇄를 채우기 위한 의도된 정치 행위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이는 국가의 미래를 인질 삼는 위험한 도박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윤석열에 대한 내란 재판이 진행될수록 윤 정권 인사들에 대한 사법적 책임은 불가피해질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중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권한을 남용한다면, 그 결과는 단지 정치적 비난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불법적 국정 개입에 대한 책임은 언젠가 반드시 지게 될 것이며, 그날은 그리 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