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집단 광기가 만들어낸 마녀사냥과 한 사회의 파국

아서 밀러의 연극 ‘시련’··· 17세기 미국 세일럼 마을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 배경

연극 '시련' 공연 사진 ⓒ(주)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광기, 집단 광기라는 말밖에는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없었다. 거리의 광기를 목도한 우리가 다시 무대 위에 광기를 보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커튼콜 박수 소리를 듣고서야 온몸을 조여오는 긴장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서 밀러의 연극 ‘시련’은 그렇게 180분을 휘몰아쳤다.

연극 ‘시련’은 1692년 2월부터 1693년 5월까지 미국 메사추세츠주 세일럼 마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마녀사냥 및 재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아서 밀러는 작품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냉혹함을 드러내고 사회적 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발한 극작가였다. 미국 연극의 거장으로 불리는 아서 밀러는 연극 ‘시련’을 빌어 1950년대 미국 사회에 휘몰아쳤던 ‘매카시즘(McCarthyism, 1950년대 미국에서 벌어진 극단적인 반공주의 운동)’의 문제를 정면으로 지적했다.

마녀사냥을 통해 매카시즘의 광기를 고발하다


2025년 4월 대한민국의 연극 무대에 올라온 연극 ‘시련’ 역시, 시대와 무관하게 읽히기 힘들다. 180분 동안 숨가쁘게 벌어지는 집단 광기의 이야기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들여다보게 하기 때문이다. 연극 ‘햄릿’, ‘엔젤스 인 아메리카’ 등에서 탁월한 연출력을 선보인 신유청 연출, 연극 ‘햄릿’,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등에서 무대 미술의 미학을 보여준 무대 디자이너 이태섭, 대학로 흥행 마술사 김수로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창작진들이 만들어낸 ‘시련’의 시련 속으로 들어가 보자.

연극 '시련' 공연 사진 ⓒ(주)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1692년 세일럼 마을의 목사관, 목사 패리스의 딸 베티가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밤 마을의 소녀들은 숲속에 모여 춤을 추며 혼령을 불러오는 놀이를 했다. 우연히 이것을 보게 된 목사 패리스는 조카 에비게일을 추궁한다. 소녀들은 금기시된 놀이를 한 것이 탄로날까봐 겁에 질려 있었다.

청교도를 믿는 독실한 마을 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목사관으로 모여든다. 설상가상 소녀들에게 보이는 이상 행동이 악마의 저주일거라는 의심이 확신으로 커져갔다.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해일 목사가 도착하지만, 소녀들은 마녀의 영혼이 자신들을 공격했다고 거짓 증언을 하기 시작한다.

집단적 광기 뒤에 숨겨진 이기심과 욕망의 실체


세일럼 마을에 불어닥친 마녀사냥은 브레이크가 없이 질주한다. 수백 명이 마녀재판을 받게 되고 감금되고 사형된다. 증거도 없고 진실도 아무 소용이 없다. 마녀사냥의 첫 희생자는 패리스 목사의 노예, 티투바다. 또 다른 사회적 약자가 줄을 이어 다음 대상이 된다. 소녀들을 이끄는 에비게일은 자신과 간음을 저지른 존 프록터를 차지하기 위해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를 마녀로 거짓 증언을 한다.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레베카도, 이 광기의 바람을 비켜가지 못한다. 

권력 있는 이들은 합법을 가장해 마녀사냥을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한다. 마녀재판을 기회 삼아 출세를 하려는 이들이 등장하고 자신의 재산을 늘리는 기회로 삼으려는 이도 등장한다. 시기와 질투의 대상을 마녀로 몰고,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거짓 증언을 한다. 이 집단 광기는 어떤 결말에 다다르게 될까?  

연극 '시련' 공연 사진 ⓒ(주)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연극 ‘시련’은 한 사회에 몰아치는 집단적 광기 뒤에 숨겨진 이기심과 욕망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시대의 소명인 양 마녀를 재판하던 이들은 극의 말미에 다다르자 비루하고 비겁한 본모습을 드러내고 만다. 반면 존 프록터는 거짓을 서약하는 대신 자신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사형을 선택한다. 연극은 프록터의 시련을 개인의 시련에 머무르지 않게 함으로써 집단적 광기에 맞서는 용기와 양심을 부각시켰다. 

연출, 연기, 무대의 완벽한 조화


6년 만에 재연으로 돌아온 연극 ‘시련’의 무대는 담백하고 절제되어 있다. 무대 양옆으로 커다랗게 뚫린 창문을 제외하고 무대는 온통 회색이다. ‘백색 큐브’라는 무대 콘셉트는 욕망으로 뒤엉킨 인간들의 추함을 더 극대화해 보여준다. 바닥을 긁어대는 쇠사슬의 파찰음, 춤을 닮은 소녀들의 광기 어린 움직임, 전자음과 일렉트로-어쿠스틱 재료들이 만들어 내는 불규칙한 선율. 이 모든 것들은 연극 ‘시련’의 섬세한 장치들로 극의 긴장감을 더한다.

존 프록터 역에 배우 엄기준과 강필석이, 사무엘 패리스 역에 박은석, 존 헤일 역에 박정복, 댄포스 역에 남명렬, 애비게일 윌리엄즈 역에 류인아, 엘리자베스 프록터 역에 여승희, 메어리 워렌 역의 진지희, 토마스 푸트넘 역에 김수로와 권해성이 무대에 오른다. 총 28명의 배우들이 180분 동안 만들어 내는 연극 <시련>은 4월 27일까지 예술의전당 CJ 토월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연극 ‘시련’

공연 날짜 : 2025년 4월 9일(수) ~ 4월 27일(일)
공연 장소 : 예술의전당 CJ 토월 극장
공연 시간 : 화~금 19시 30분/토, 일, 공휴일 14시, 19시 30분/월요일 공연 없음
러닝 타임 : 180분 (인터미션 20분 포함)
관람 연령 : 중학생 이상 관람가
작 : 아서 밀러(Arthur Miller)
번역 : 김진숙
창작진 : 연출 신유청/번역 김진숙/윤색 윤성호/안무 이소영/무대디자인 이태섭/조명디자인 강지혜/음악, 음향디자인 지미 세르/의상디자인 홍문기/소품디자인 노주연/분장디자인 장유영/제작무대감독 정휘경/무대감독 이뮥수/제작PD 조기쁨 김재은
출연진 : 엄기준, 강필석, 박은석, 박정복, 남명렬, 류인아, 여승희, 진지희, 주호성, 김곽경희, 김수로 권해성, 김도희, 하준호, 신혜옥, 오종우, 우범진, 김예지, 박인선, 송민, 박세동, 맹시현, 류한나
공연 문의 : 1577-3363 클립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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