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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깐족 선생 한동훈, 깐족 프레임에 허우적거렸다

자, 일단 정리부터 하자. 어떤 언론에서는 ‘깐족’이라고 쓰고 어떤 언론에서는 ‘깐죽’이라고 쓴다. 그래서 찾아봤다. 뭐가 맞는지. 둘 다 표준어다. 나는 이 칼럼에서 ‘깐족’이라고 쓰겠다.

역대 어느 주요 정당 대선후보 경선 토론에서 ‘깐족’이 기사 제목으로 뽑힐 정도로 주요 의제가 됐던 적이 있었나? 어떤 면에서 보면 진짜 역대급 토론이었다. 그 장면을 잠시 복기해보자. 25일 벌어졌던 홍준표-한동훈 맞수 토론 때의 모습이다.

홍준표 : 대통령한테 깐족대고 조롱한 일 없습니까?
한동훈 : 깐족댄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계속 쓰시던데 일상생활에서 주변인들에게 깐족댄다는 표현 쓰세요?
홍준표 : 씁니다.
한동훈 : 그런 표현 쓰시면 안 돼요. 그런 표현은 폄하하는 표현이잖아요. 굳이 따진다면 홍 후보님이 페북에 쓰셨던 여러 가지 폄하하는 막말들, 그게 깐족대는 겁니다.
홍준표 : 깐족댄다는 말뜻을 모르고 저래쌌네.

누가 토론 승자인가?

여러 차례 벌어진 맞수 토론과 26일 벌어진 4자 토론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품평을 한다. 토론 승자가 누구였냐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이 한동훈의 압승이었다고 평가한다. 내가 보기에도 말싸움 분야에서는 김문수, 홍준표, 안철수 모두 한동훈에게 심하게 처발렸다.

그래서 토론의 승자가 한동훈인가?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한동훈이 말싸움은 이겼는데 그의 정치 인생에서 심한 빨간 줄을 하나 그었다. 바로 깐족 이미지다.

정치에서 이미지는 매우 중요하다. 이 칼럼에서 한 번 다룬 이야기지만 마케팅 용어 중 PI(President Identity)라는 것이 있다. 조직의 수장(President)이 보여주는 정체성(Identity)을 뜻한다. 그 조직의 리더가 어떤 이미지로 대중 앞에 서느냐가 그 조직의 성패를 가른다는 뜻이다.

윤석열은 숨 쉬는 것 빼고 모두 잘못한 엉망진창 대통령이었지만 그가 특히 잘못한 것이 음주에 대한 PI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계엄 내란을 벌였는데 “술 처먹고 저 지랄 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정치인의 이미지라는 것은 이처럼 한번 머리에 박히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저 토론에서 홍준표가 아무리 “깐족댄다”는 표현을 써도 한동훈은 대꾸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천성이 말싸움에서 지면 견디지 못하는 한동훈은 “내가 뭘 깐족댔냐? 오히려 네가 깐족대고 있다”면서 깐족댔다.

이러면 어떤 일이 생기느냐? 깐족이라는 프레임이 사람들 머릿속에 확 박힌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강요하면 코끼리 생각이 더 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유명한 프레임 이론이다. 한동훈이 “나는 깐족대는 게 아니야!”라고 주장할수록 깐족이라는 이미지는 한동훈과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가 없다.

한동훈은 깐족대기를 멈추지 못한다

내가 보기에도 한동훈은 진짜로 잘 깐족댄다. 질문에 답을 안하고 깐족대는 스킬로 대응하니 상대 후보가 다 말린다. 그래서 당장의 말싸움은 이긴다. 문제는 그럴수록 상대 후보가 “한동훈 너는 왜 그렇게 깐족대냐?”라는 공격을 멈출 수 없다는 점이다. 말싸움으로 못 이기니 그거라도 해야 하는 거다.

이 과정이 증폭되면 한동훈의 깐족 이미지는 더 깊은 수렁에 빠질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큰 문제가 하나 있다. 한동훈이 저 이미지를 고칠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는 점이다. 한동훈이 국민의힘 당대표가 됐을 때 왜 많은 의원들이 그를 싫어했겠나? 그가 워낙 깐족댔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깐족 분야 최고봉에 오른 3인으로 한동훈, 진중권, 이준석을 꼽는다. 깐족의 삼두마차인 셈인데 진심으로 명단을 보니 가슴이 웅장해진다. 그런데 진중권은 정치를 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논객이니 말싸움만 이기면 그만인 사람이다.

25일 오후 종로 동아미디어센터 채널A 오픈스튜디오에서 국민의힘 대선 2차 경선 진출자인 한동훈, 홍준표 후보가 토론장에서 방송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2025.04.25. ⓒ뉴시스

하지만 한동훈, 이준석은 다르다. 깐족거려서 말싸움 이기는 것은 절대 대중에게 사랑받는 PI가 아니다. 그러면 바보가 아닌 한 이걸 고쳐야 한다. 그런데 이게 생물학적으로 잘 안된다. 왜냐? 그렇게 깐족대는 게 중독성 쾌감을 주기 때문이다.

2008년 미국 밴더빌트대 연구팀이 미국 정신약리학저널에 ‘공격성과 쾌감’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연구팀에 따르면 남을 공격하고 짓밟을 때 우리의 뇌는 성관계를 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혹은 약물을 복용할 때와 비슷한 수준의 쾌감을 느낀다는 연구를 내놓았다.

이때 쾌감의 핵심은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다. 깐족대서 남이 쩔쩔매는 모습을 보면 그게 한동훈이나 이준석에게 잊을 수 없는 쾌감을 준다. 문제는 이 도파민이 중독성이 강하다는 점이다. 담배를 피워도 도파민이 분비된다. 담배를 끊기가 매우 어려운 이유가 바로 도파민 중독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한동훈과 이준석 류의 깐족거림은 그들에게 거의 마약 같은 존재다. 한동훈이 올해 2월 책을 썼다. 제목은 기억이 잘 안 난다. 아무튼 그 책에서 한동훈은 지난해 12월 14일 국회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직후 의원총회를 회고했다.

의원들의 질타에 한동훈은 “반말하지 마시고요” “비상계엄을 제가 했어요?”라고 깐족댔다. 한동훈은 책에서 “그 일을 후회한다”고 고백했다. 의원들로부터 험한 말을 들어도 참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올해 2월에 나온 한동훈 책 내용이다.

지도 저런 깐족댐이 자기 정치 인생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아는 거다. 한동훈이 빠가사리가 아닌 한 저걸 아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토론이 열리니 다시 깐족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깐족댔다.

이게 무슨 뜻이겠나? 머리로는 반성이 되는데 도파민의 유혹을 못 참는다는 뜻이다. 이 정도 사태를 겪고도 한동훈의 깐족이 계속된다면 내가 보기에는 중증 중독 상태다. 저 깐족댐을 치유할 방법이 거의 없을 것이다.

제2당 대선 후보를 뽑는 경선에서 깐족이라는 말이 키워드가 됐다. 지금쯤 한동훈은 ‘말싸움은 내가 짱이지’ 흐뭇해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실로 멍청한 수를 뒀다. 도파민에 절어 깐족이라는 늪에 자신을 빠트린 것이다.

깐족 선생 한동훈, 그를 영원히 따라다닐 이 프레임에서 그가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절대 못 벗어난다에 내 지갑 안에 있는 3,000원을 과감히 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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