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11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와 회담하고 있다. 시 주석은 미국과의 관세전쟁에 대해 "두렵지 않다"라고 자신감을 피력하면서 미국을 겨냥해 "스스로를 고립시킬 것"이라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사진=뉴시스
현집자주
내일이면 취임 100일을 맞이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당일부터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2월 1일부터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한 25% 관세를 예고하면서 무역 전쟁을 시작했다. 이후 트럼프는 오락가락하는 모습이기도 했지만 여전히 관세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물론 그 주된 표적은 중국이었다. 그 와중에 트럼프가 23일 향후 2~3주 내에 중국에 대한 관세 수준을 결정할 수도 있다며 관세율 조정을 시사해 관심을 집중시켰다. 미국은 현재 중국산 수입 제품에 대해 145%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전날 '매우 높은 수치'라고 말한 것에서 더 나아가 “향후 2~3주”라는 구체적인 시점까지 거론한 것이다. 또 '시진핑 주석과 특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이제는 중국과 협력해 나갈 것'이라 말해 중국을 의식한 유화 제스처를 보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아직 적극적인 반응이 없다. 중국의 입장을 살펴본 알자지라 기사를 소개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과의 무역 협상 전망을 강조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중국이 먼저 움직이지 않을 것이며, 협상 전에 미국 측에 전제 조건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는 중국에 대한 145% 관세가 '상당히 낮아질 것'으로 예상하지만, 구체적인 세율은 중국 측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지난 23일 기자들에게 '미국은 중국과 공정한 거래를 할 것'이라고 말해 양국 간 긴장 완화에 대한 희망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러나 국제위기그룹의 동북아시아 선임 분석가 윌리엄 양은 알 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대치 중인 미국에게 양보할 경우 치러야 할 대가가 큰 중국은 트럼프 정부의 압박에 굴복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어 먼저 손을 내밀 입장이 아니라고 밝혔다. 양 분석가는 "중국은 미국이 먼저 신뢰할 만한 양보안을 내놓아 베이징이 협상장에 나와도 승리를 선언할 수 있을 때까지 현 입장을 고수할 것“이라며 "중국 입장에서는 트럼프의 낙관적 발언이 오히려 중국의 강경 노선이 효과를 내고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직은 미·중 양국 관리들이 공식적인 무역 협상 개시를 발표하지 않은 상태다. 트럼프가 23일 자국 정부가 중국과 ‘적극적’으로 협상 중이라고 언급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이튿날 중국 상무부는 트럼프의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허야동 상무부 대변인은 "미중 경제·무역 협상 진전에 관한 어떤 주장도 사실무근"이라고 기자회견에서 잘라 말했다. 중국은 대화의 문이 ‘활짝 열려 있다’는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필요하다면 미국과의 정면 대결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관세 완화 가능성에 대해 즉흥적인 발언을 계속 하며 오락가락하는 트럼프와는 달리 중국의 입장은 상무부와 외교부를 통해 일관되고 체계적으로 전달되고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중국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홍콩대 경영대학 첸치우 금융학 교수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중국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 중국이 상황을 통제하는 반면, 트럼프 대통령과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오히려 스스로 입지를 약화시키는 발언과 행동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의 관세 인하 언급은 그가 초조해하며 당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면, 중국은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첸 교수는 덧붙였다.
중국은 트럼프의 무역 공세에 맞서 미국산 제품에 125% 관세를 부과하고 희토류 수출 제한과 할리우드 영화 중국 내 상영 제한 등 다양한 맞대응 조치를 내놓았다.
긴장이 더 고조될 경우 중국은 펜타닐 수출 통제 같은 협력 사안에서 발을 뺄 가능성도 있다. 이론적으로는 7,600억 달러 규모의 미 국채를 대량 매도해 미국 경제에 타격을 줄 수도 있지만, 경제학자들은 이 같은 조치가 중국 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어 실현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트리비움차이나의 톰 눈리스트 기술·데이터 정책 부국장은 세계 지도자들과 직접 협상하기를 선호하는 트럼프와 달리 중국은 시진핑 주석과 트럼프의 만남 전에 실무급 예비회담을 원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눈리스트 부국장은 "중국은 정상회담 전에 먼저 협상안을 확보하려 할 것이다. 시진핑이 트럼프에게 직접 접근할 경우 미국의 압박에 굴복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고 실패 위험도 크다. 전반적으로 미국이 공세를 취하는 쪽이고, 중국은 강력하되 확전을 피하는 방어적 대응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트럼프가 대치 국면에서 먼저 물러난 듯한 지금, 협상은 관세만이 아닌 더 폭넓은 의제를 다룰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다. 션딩리 상하이 국제관계학자는 잠재적 양보 영역으로 ‘기술 수출 통제와 대만 문제’를 꼽았다.
시드니공대 호주-중국관계연구소 마리나 장 교수는 "중국이 세계 질서 속에서 받는 대우에 대한 오랜 불만을 논의 테이블에 올릴 수도 있다. 중국이 원하는 것은 공개적 굴욕 없는 대화, 일방적 최후통첩 배제, 그리고 네 가지 핵심 '레드라인', 즉 대만 문제, 민주주의와 인권, 중국의 정치체제, 자국의 경제발전 방식 선택권에 대해 타협하지 않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 교수는 미국의 첨단기술 수출 규제와 화웨이, SMIC 같은 중국 기술기업 제재도 의제가 될 수 있다며 "중국은 반도체, 청정에너지, 첨단제조업 같은 민감 분야의 투자 심사 완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대만 관련 긴장 완화도 중요한 요구사항이 될 것이다. 베이징은 완전한 양보보다는 고위급 인사 교류나 무기 판매 같은 영역에서 워싱턴의 도발적 행보 자제를 기대할 것"이라고 했다.
국제위기그룹의 양 분석가는 "중국 입장에서는 서둘러 미국과 협상하기보다 당분간 상황을 지켜보며 인내하는 전략이 더 유리할 수 있다. 중국에게 이번 대치는 단순한 무역 협상을 넘어선다. 중국은 관세 공방을 앞으로 4년간 미중 관계의 방향을 가늠하는 시금석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트럼프 정권이 먼저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낮추는 조치를 취하길 기다릴 것이며, 그 폭에 따라 고위급 무역협상 개시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