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8일은 1993년 5월 태국의 한 인형공장에서 노동자 188명이 숨진 화재 사고를 계기로 지정된 '세계 산재노동자의 날'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20년간 국가기념일 지정이 추진돼오다, 지난해 10월 산재보상보험법의 개정으로 올해 첫 법정기념일로 맞았다. 민주노총 등 노동조합과 산재피해자 유가족 등 시민사회단체에서 전국적으로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사진전 등 행사를 개최했다. 반면 법정기념일 지정에도 불구하고 관련 예산과 사업 범위가 지나치게 작아 산재노동자의 날 지정에 대한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나기 어렵다는 주장과 형식적인 정부 행사로 전락할 우려도 제기됐다. 타당한 의견이다. 달력에 갇힌 기념일이 아니라 산재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산재노동자의 날'을 계기로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우선 위험한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법은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지난해 10월 울산의 한 공장에서 이산화탄소가 누출돼 1명이 죽고 4명이 다쳤는데, 위험해서 작업할 수 없다는 노동자들의 주장은 묵살됐다. 지난해 민주노동연구원에서 조사한 '노동자 작업중지권 사용 실태'에 따르면 위험 현장에서 일하는 하청, 비정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작업중지권 사용은 거의 봉쇄돼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노동자의 작업중지권 사용을 사업주가 보복할 경우, 산업안전청과 전미노동관계위원회가 조사를 통해 처벌하는데 우리도 관련 법 개정으로 작업중지권이 차별 없이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 출범 초부터 기업 경영에 족쇄를 채운다며 무력화 해온 중대재해처벌법의 엄정 집행도 필요하다. 산재노동자 유가족의 투쟁으로 어렵게 국회 문턱을 넘었지만, 시행 3년 동안 경영 책임자가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것은 15명에 불과하고 게다가 실형은 1건뿐이다. 이러니 기업에서 안전한 작업환경을 만드는 것이 아직 뒷전일 수밖에 없다.
산재보험 제도개선도 빠뜨릴 수 없다. 산재보험은 일하다 다치거나 병들면 신속한 치료와 보상을 받고, 재활 및 사회 복귀를 촉진하기 위해 도입된 보험이지만 현실에선 취지와 상반되게 운영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2024년 업무상 질병 산재 처리 기간은 평균 214.5일로, 질병으로 산재를 신청한 노동자가 산재승인 여부 확인까지 7개월 이상 소요된다. 제대로 된 치료와 생계 보상 없이 장기간 극심한 고통을 노동자가 감당해야 하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구호를 넘어 산재 처리 선보장 제도 도입 등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안이 마련돼야 한다.
4.28 산재노동자의 날이 으레 돌아오는 기념일로 희생 노동자를 추모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하다 죽지 않도록 위험한 작업은 멈출 수 있도록 실질적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차기 정부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을 우선 과제로 삼고 제도개선과 실질적 집행으로 국가의 기본 책임을 다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