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의 많은 논쟁 중의 하나가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행동주의자는 환경이라고 하고, 정신역동주의자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라고 하며, 특질론자는 개인 성격의 고유성에서 그 의미를 찾는다. 과연 어느 이론이 맞는 것일까? 각각 일리가 있지만, 사회심리학의 창시자 레빈(Lewin)은 ‘개인과 환경의 상호작용’의 장이론을 주장하면서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었다. 개인의 성격과 환경이 상호작용을 이루며 집단에 모인 사람들의 성격과 환경이 조화를 이룰 때 집단역동을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개인의 특성이 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환경 또한 개인의 특성에 영향을 미치는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사람의 행동은 고정된 게 아니라 시간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에, 개인의 특성과 환경도 변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변화는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갑작스러운 내란 사태 이후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직 파면으로 새로운 대선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치 역동이 또 다른 시험대를 맞이하는 셈이다. 새로운 대통령은 지난 3년간의 파행과 왜곡, 퇴행의 역사를 정리하고 토대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 역사적 사명을 운명으로 갖게 되었다. 이 시기를 어떤 역량으로 헤쳐 나갈 것이며 변화를 끌어낼 준비를 갖췄는지가 이번 대선의 또 다른 의미가 될 것이다.
레빈은 조직의 역동과 변화는 과거와의 작별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조직변화모델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조직의 변화와 혁신은 해동기, 혼란기, 재동결기로 설명된다. 해동(unfreezing)기는 지난 사고방식이나 행동 방식을 바꾸는 시기로, 변화된 현실을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과정으로 지금까지의 방식을 끝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해동이란 말 속에는 ‘끝낸다’라는 의미가 있기에 이전의 행동 방식과 사고에 ‘종지부를 찍는 일’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우리는 변화를 모색할 때 새로운 비전과 꿈을 강조하지만, 예전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끝내지 않고서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다. ‘지금까지의 방식이 지금의 문제를 만들어냈다’라는 인식을 갖지 않고 변화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혼란(moving)기에는 이전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 기존의 제도와 프로세스가 불필요해지면서 혼란과 갈등이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대개 우리는 일주일 후나 한 달 후조차 내다보는 것이 쉽지 않기에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식으로 변화의 흐름에 저항하기도 한다. 혼란스러운 고뇌의 시간을 견디며 온갖 저항에 맞설 수 있는 인내력을 갖지 않고서는 이 시기를 뚫고 나가기 어렵다. 하지만 새로운 변화에 대한 신념을 갖고 잘 견디면 새로운 결실을 맺는 시기로 이동한다.
재동결(refreezing)기는 새로운 관점과 사고가 결실을 맺는 시기로 구시대를 넘어 새로운 시대의 성과를 온몸으로 느끼는 긍정적 모멘텀이 만들어진다. 이제야 비로소 새로운 출발이 시작되는 것이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본투표날인 10일 오전 광주 서구 상무고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고 있다. 2024.4.10 ⓒ뉴스1
지금 우리는 새로운 대선의 시기를 맞이하면서 지금까지의 모든 것들을 다시한번 숙고해야 하는 전환기에 들어섰다. 지난 정책과 정치권력의 문제로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양극화가 심화되었고, 자신들의 정치적 야욕을 위해서라면 헌정질서를 파괴해도 된다는 극우집단의 난동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해야만 했다. 내란 세력에 복무했던 내란 종사자들이 여전히 각계각처에서 활동하고 있기에, 이후의 과제는 1차적으로 내란 종식과 헌정질서의 복구이다. 하지만 그에 저항하는 세력이 일정하게 포션을 점유하고 있기에 쉽지 않은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과제를 대충 덮어둔다면 변화와 혁신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대선 시기가 끝나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것이다. 새로운 정부는 비전과 꿈을 통한 ‘새로운 시작’을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지금 무엇을 끝내고, 향후 무엇을 끝내야 할 것인지’를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다. 시작은 이전의 것을 끝내지 않고서는 출발할 수 없기때문이다. 지난 정부에서도 수많은 비전과 혁신과제를 제시했지만, 어정쩡한 상태에서 흐지부지 좌절하게 된 것은 충분한 해동기를 갖지 못하고 혼란기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혼란기의 갈등이 언론과 수많은 이권 세력의 준동으로 증폭되면서 ‘역시나 정권’이 되었다. 이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지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지난 시절에 대한 향수를 끝내는 것부터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