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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삼산을 권하는 이유

자신의 방식으로 전통음악의 어법을 계승함으로써 전통음악가의 맥을 잇는다

국악 아티스트 삼산 ⓒ위아티스트

삼산의 음악을 처음 만난 건 2023년 11월 16일부터 17일까지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서울국악주간 때였다. 늦가을 궂은 비 내리는 날씨가 쌀쌀해서인지 관객들이 좀처럼 모이지 않은 축제 중에 삼산이 등장했다. 그날 삼산이 부르는 ‘모르겠어’를 듣자마자 반해버렸다. 솔직하고 기발하며 발랄한 노랫말 때문이었다. 노랫말의 정서를 발칙하게 담아낸 송라이팅 때문이었다. 세상에 노래는 많고, 노래 잘하는 사람도 많지만 이렇게 노래하는 이는 드물다. 이 노래를 들은 이들 중 누군가는 장기하 같다고 말했지만, 그런 식의 화법을 좋아하진 않는다. 장기하는 국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지 않고, 이렇게 구구절절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 편이 아니다.

공연을 보고 나서 ‘모르겠어’ 공연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했더니 반응이 꽤 뜨거웠다. 사람들의 귀는 비슷비슷한 모양이었다. 국악기를 연주하며 코믹하고 개성 넘치는 노래를 부른다는 사실은 수많은 한국 전통음악가들 사이에서 삼산을 구별짓기 충분했다. 고전음악이나 전통음악의 경우에는 고전이나 정전일 레퍼토리를 잘 연주하는 게 중요하다. 최근에는 현대 대중음악과 접합하는 시도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 같은 경우에도 친숙한 스타일을 반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동소이한 음악에서 벗어나는 일이 그렇게 어렵다.

모르겠어 - 삼산

그런데 삼산은 가창력을 뽐내며 노래하지 않았고, 전복적인 사운드를 창출하지도 않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것 같은 음악을 하고, 들으면 웃음이 나오지만 마냥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곡을 만드는 사람과 실연하는 사람 사이의 경계가 느껴지지 않는 음악이기도 했다. 음악가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하는 듯한 음악에는 쉽게 마음이 열리기 마련이다. 삼산은 천천히 이름을 알리더니, 급기야 올해 한국대중음악상 신인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되기까지 했다.

물론 아직은 삼산을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다. 삼산은 한 장의 EP와 몇 개의 싱글이 있을 뿐, 정규 음반 한 장 없는 음악가다. 한 시간 이상의 단독공연을 수없이 진행한 관록을 쌓지도 않았다. 2023년 가을에 데뷔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지금 삼산은 이런저런 경연대회에 도전하고, 새 음반을 만들면서 바쁘게 지내는 모양이다. 전업음악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투성이다. 앞으로 삼산이 어떤 음악을 선보일지, 앞으로 내놓을 음악이 지금까지 선보인 음악만큼 매혹적일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삼산은 일부의 기억 속에 잠시 머물렀던 기록을 남기고 멀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앞으로 삼산의 활동에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 그렇게 되기 위해 더 많은 이들이 삼산의 노래를 흥얼거렸으면 좋겠다. 좋은 음악은 좋은 재료를 가지고 있는 음악이자,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치는 음악이다. 삼산의 ‘모르겠어’, ‘알겠어요’, ‘아니, 그 돈을 벌써?’, ‘줄줄줄 팍팍팍’ 같은 노래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 예술가의 조건과 내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폼 잡고 예술에만 전념할 여유를 가진 이들도 적지 않지만, 안타깝게도 삼산은 그런 삶을 살 형편이 아니다. “월에 3백만 벌게 해주십사 4대보험 가입 좀 하게 해주십사”라고 비는 이유다. 이제 예술가는 열정으로 가난을 감당하는 차원을 뛰어넘어, 애초부터 가난하지 않은 집에서 태어나거나, 자신의 가난과 궁핍마저 예술로 드러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진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삼산 (Sam San) - 줄줄줄 팍팍팍 MUSE ON 2024

“이제 땅에 떨어진 돈을 주울래도 / 사람들이 카드를 쓰니까 / 바닥에 떨어져 주울 돈도 없단 소리야”라는 노랫말을 노래하는 이유는 누구도 자신의 처지를 감추거나 거짓말하기 어려운 시대인 탓이 크다. 환상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지만, 최저생계비로 겨우 살아가는 이들이 수두룩한 시대에는 환상에 몰입하느니 자신의 곤궁마저 희화화하는 게 훨씬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막다른 길까지 몰려버린 시대의 현주소다. 우아하게 예술을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닌 예술가의 생존방식이다. 웃픈 밈과 짤이 일상화된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정답을 찾기는 불가능하다. 정답을 알더라도 정답대로 살기 어려운 탓이다. 예술가가 정답을 말하는 대신 “사는 게 뭔지 진짜 모르겠어”라고 탄식하는 이유다.

이렇게 진솔하게 고백하고 온힘 다해 받아치는 삼산의 음악이 밈과 짤이 일상화된 시대의 청춘 음악가가 옛 노래의 해학을 부활시킨 결과물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삼산의 노래는 자신의 방식으로 전통음악의 어법을 계승함으로써 전통음악가의 맥을 잇는다. 삼산의 음악에는 어떻게든 답을 찾아내려는 의지가 있다. 쉽게 굴복하지 않으려는 자존심이 있다. 끈질기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태도는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틈을 만들어내고 활기를 찾아내며 전복의 가능성을 키운다. 이것이 예술의 힘이자 전통음악이 오래도록 담지했던 역할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게다가 삼산은 전통음악의 전형적인 어법에 붙잡히는 대신,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해내는 어법을 찾아 장르를 횡단하는 음악가다. 대단하거나 엄청나보이진 않지만 결코 흔했던 스타일이 아니다. 삼산의 음악을 가사만으로 호평하거나 폄하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어떤 길도 단번에 열리지 않고, 처음에는 보잘 것 없어 보이기도 한다. 눈 밝은 향유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삼산의 음악을 소개하는 진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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