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30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혐오 앞에 중립운운 안창호 국가인권위 규탄 및 공개질의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비주류사진관-전병철
“동성애는 죄악이다”, “학생인권조례, 차별금지법은 반민주적인 법이다”
도저히 21세기에 나올 수 있는 말인지 의심스러운 말이 서울 한복판에서 엄청난 음향을 타고 흘러나온다.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집회인 ‘거룩한방파제 통합국민대회’(이하 거룩한방파제)에서 나오는 말들이다. 수 많은 개신교 신자를 동원한 종교행사인 거룩한방파제는 그들이 자랑하듯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집회다. 2015년부터 해마다 그들은 퀴어축제가 열리는 곳마다 찾아가서 성소수자 혐오발언을 하며 퀴어축제를 방해했다. 서울만이 아니라 대구 등 지역마다 쫓아가서 방해한다.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혐오행동임에도 국가는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는다. 단지 차별금지법이 없다는 이유로 혐오를 방치해도 되는가!
국제인권기준에 따르면 소수자혐오는 표현의 자유가 될 수 없다. 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은 그렇지 않아도 주변으로 밀리고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당해서 숨도록 강요당하는 주류질서의 편견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소수자를 동등한 인격으로 보지 않고 그들의 존엄을 부정하는 것이 혐오발언이다.
한국은 국제자유권규약, 국제사회권규약, 국제여성차별철폐협약, 국제아동권리협약 등 각종 인권규약을 비준한 나라로서 형식적으로는 국제인권기준을 지키려는 나라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행사가 자유롭게 열리는 것에서 알 수 있다.
2017년부터 퀴어축제에 참여하던 인권위
그러하기에 2017년부터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퀴어문화축제에 부스를 신청해 홍보물을 나눠주며 성소수자차별 인식개선과 차별금지법 제정을 홍보했다. 그런데 안창호 씨가 위원장이 되자 사정이 달라졌다.
그는 검사 시절터 기사에 날 정도로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고, 이후 헌법재판관이 된 후에도 달라진 것은 없다. 그가 개신교 신자라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가 자신의 왜곡된 종교신념 때문에 동성애자 등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기반으로 인권위 정책과 결정을 내린다면 문제다. 그런데 그는 한번도 그런 왜곡된 신념을 공식적으로 포기하지 않았다. 인권위원장 국회 인사청문회에 제출한 답변서에도 “동성애가 사회주의 혁명의 수단이며, 에이즈가 확산 될 것이라거나 차별금지법이 공산주의 혁명에 이용된다”는 등의 반인권의식을 드러냈다. 이에 국회의원이 이러한 극단적인 주장을 철회할 의사가 있냐고 묻자 그는 철회 의사가 없다고 답변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지난해 12월 23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제24차 전원위원회에 자리하고 있다. 2024.12.23. ⓒ뉴스1
국제인권기준에 따르면,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낙인은 인권침해다. 국가와 사회는 성소수자혐오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각국에서는 차별금지법이나 평등법 제정한다. 인권위는 이러한 국제인권기준을 자국에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가기구다. 따라서 인권위원장이라면 개인적 편견으로 성소수자를 혐오하거나 차별금지법제정을 막아서는 안 된다.
’다른 입장‘이라는 말로 성소수자 혐오 인정한 안창호 인권위
그런데 안 위원장은 그 반대로 나아가고 있다. 언론보도로 ‘거룩한방파제’가 인권위원장의 참여를 요청한 것이 알려지자 바로 다음날인 4월 28일 인권위는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참여하지 않겠다고 설명자료를 배포했다. 심지어 그 이유는 “인권위는 입장이 다른 양측의 행사 중 어느 한쪽의 행사만 참여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보아 양측 모두의 행사에 불참하기로”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거룩한방파제는 퀴어축제를 방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혐오 행사다. 그런데 이를 동등한 입장으로 보고, ‘입장이 다른 행사’라고 표현한 것은 혐오도 표현이라고 인정한 것에 다름 아니다.
더구나 2024년부터 거룩한방파제는 국내외 인권기구가 제정을 촉구하고 있는 각종 인권법을 동성애악법이라며 반대하고 나섰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반대,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반대, 학생인권조례 반대,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반대, 생활동반자법 반대 등을 내걸고 있다. 한마디로 반인권세력이다. 특히 차별금지법이 표현의 자유를 막는다면서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런 입장을 가진 사람이, 인권위원장으로 있을 수 없다. 왜 안창호 씨는 인권위원장직에 아직도 있는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2015년 11월 유엔자유권위원회가 한국정부에 권고했듯이, 국가기관은 혐오발언 또는 폭력을 포함하여 성적지향 또는 성정체성에 근거한 어떠한 형태의 사회적 낙인과 차별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하고 공식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그런데 안 위원장은 거룩한 방파제에 대해 성소수자혐오는 안된다고 입장을 전달하기는커녕 그나마 하고 있던 퀴어축제조차 불참을 결정했다.
동성애혐오만이 아니라 극우정치의 기반이 되고 있는 개신교극우세력
거룩한방파제 등 개신교극우세력은 동성애혐오만을 하지 않는다. 지난 윤석열의 12.3비상계엄사태에서 드러났듯이, 정광훈 등 극우세력의 상당수가 일부 개신교 집단이었다. 실제 여러 나라에서도 극우세력의 가치지향은 정상가족주의에 기반한 사회, 국가와 가정을 동일시하고 기업의 이익이 나라의 이익이라고 본다. 신자유주의 체제와 정상가족주의 존속을 지향한다. 실제 거룩한방파제의 집회에서는 기업이 잘돼야 국가가 잘된다며, 노동자나 서민의 권리를 배제한 발언이 넘쳐난다.
지난 2023년 7월 1일 오후 서울 중구 삼일대로 일대에서 열린 '제24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참가자들로 붐비고 있다. 2023.7.1 ⓒ뉴스1
실제 안창호 인권위도 내란세력과 윤석열의 반헌법적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의견을 인권위 전원위원회에서 의결한 바 있다. 인권침해적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의결로 시민들로부터 인권위가 아니라 내란위원회라고 비판받던 인권위는 이제 성소수자혐오위원회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그리고 정상가족주의는 ‘주의’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정상가족은 환상임에도 현실과 다른 정상가족이라는 환상을 사람들에게 강제하려는 의지다. 많은 비혼들과 성소수자, 이혼가정 등에서 보이듯 정상가족이란 환상은 현실과 동떨어져있다. 여성과 남성, 그리고 자녀라는 정상가족 규범은 현대사회에서 소수에 지나지 않는 강제된 규범일 뿐이다. 이성애자의 결혼만이 생애의 유일한 선택지라는 것은 허상이고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목도하고 있음에도 이를 부정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생활동반자법 등 개인 간의 다양한 결합과 비혼 등의 다양한 삶을 인정하는 일임에도 이를 ‘성서의 왜곡된 해석’으로 부정하고 있다.
극우개신교세력은 거룩한방파제 같은 대대적인 성소수자혐오 행사를 하면서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이 정상가족을 해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질서와 가정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서라며, 성소수자혐오가 공개적인 장소에서 대대적으로 발화되는 것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성소수자들은 발 디딜 곳은 더욱 없어진다. 극우혐오세력의 확장을 막기 위해서라도 차별금지법을 빨리 제정돼야 한다. 불행하게도 성소수자인권개선과 차별금지법 제정에 앞장서야 할 인권위원장이 오히려 성소수자혐오를 인정하고 있으니 민주주의와 인권의 길은 멀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인권위의 서울퀴어 축제 공식 참여가 무산되자, 인권위 직원들이 ‘국가인권위원회 앨라이모임’을 만들어 자발적으로 서울퀴어문화축제에 함께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인권위원장이 아무리 혐오를 선동하고 인권위를 추락시키려 해도 추락시킬 수 없는 이유는 이렇게 인권위 안팎에 인권위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쉽게 혐오세력에게 인권위를 넘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란청산과 사회개혁 과제에 인권위 개혁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