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각) 플로리다주 웨스트 팜비치로 가는 미 대통령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그는 대부분의 미 무역 상대국에 대한 10% 관세에 일부 예외를 허용할 수 있지만, 무역 협상을 원하는 나라들에 있어 이 10%의 관세는 "하한선"에 꽤 가까운 것이라고 말했다고 말했다고 비즈니스 스탠다드가 1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사진=뉴시스
편집자주
미국이 무역전쟁을 벌이는 전략적 목표를 크게 두 가지로 보는 의견이 다수다. 미국의 무역 적자를 줄이고 미국 기업과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다. 중국과의 무역 적자가 워낙 심각하고 중국 노동력이 저렴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중국이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런 시각의 분석이다. 그게 아니라 미국이 중국 경제와의 연계를 끊어내면서 다른 국가에게도 이를 강요해 중국의 경제적 성장과 영향력 증대를 견제하기 위해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고, 이것이 오히려 미국에게 타격을 줄 것이라는 포린폴리시 기사를 소개한다.
미국이 무역에서 진짜로 뭘 원하는지, 아예 전략이 있기는 한지 아무도 모른다. 관세 정책은 갈팡질팡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도 하루가 다르게 바뀐다. 측근들조차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한 언행에 대해 그럴듯한 설명 하나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혼란 속에서, 미국의 의도를 간파한 듯한 나라가 하나 있다. 4월 21일, 중국 상무부는 다른 나라 정부에 “중국의 이익을 해치는 어떤 무역 협정도 미국과 체결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중국은 트럼프의 진짜 목표가 자국과 다른 나라들 사이를 갈라놓는 데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 가정이 맞다면, 미국은 최소 세 가지 측면에서 스스로에게 해가 되는 위험한 게임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가 중국과 다른 나라 간 경제적 연결고리를 끊으려 한다면, 현재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만 최대 145%의 관세를 부과하고,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는 '상호주의 관세'를 일시 중단하고 있는 것도 설명이 된다. 디커플링(탈동조화)이 목표라면, 미국은 실제로 90일 유예 기간이 끝난 뒤 중국에 고율의 관세를 매기겠다는 신호를 보내며 다른 나라들을 압박할 것이다. 미국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가 “동맹국과 협력해 중국에 집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말한 것만 봐도 미국이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글로벌 연대를 구축하려 한다는 해석이 그럴듯하다.
하지만 이는 위험천만한 전략이다. 첫째, 디커플링은 중국보다 미국에 더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 IMF는 미중 무역전쟁으로 올해 미국의 GDP 성장률이 0.9%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지만, 중국은 0.6%포인트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경제학의 기초만 알아도 납득이 가는 얘기다. 2024년 미국은 중국에서 4,390억 달러(약 600조 원)어치의 상품을 수입했는데, 이는 중국이 미국에서 수입한 양의 세 배가 넘는다. 중국 기업보다 미국 기업의 관세부담이 훨씬 클 것이라는 얘기다.
무역 구조의 차이도 미국에 불리하다. 미국은 스마트폰, 모니터처럼 대체가 어려운 첨단 전자제품의 약 75%를 중국에서 들여오고 있다. 생산을 자체적으로 늘릴 방법도 마땅치 않고, 새로운 공급처를 찾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미국 소비자들은 머지않아 전자제품 가격 급등을 겪게 될 것이다. 반면, 중국은 석유나 대두처럼 대체가 쉬운 저가 제품을 미국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타격이 훨씬 덜하다.
중국은 필수 공급품을 무기화할 카드도 몇 가지 쥐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의약품과 희토류다. 중국 기업들은 항생제 전구체 성분의 세계 공급량 절반가량을 생산하고 있으며, 희토류는 말할 것도 없다. 희토류는 친환경 기술, 디지털 장비, 군사 장비에 필수적인 17개 금속 원소로, 4월 7일 중국은 이 중 7종의 대미 수출 시 허가를 받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이 세계 희토류 가공 능력의 약 9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 조치 하나로 글로벌 공급망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특히 디스프로슘과 테르븀은 전기차와 제트엔진 생산에 반드시 필요한 원소로, 대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둘째 문제는 정말로 편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누가 미국 편에 설 것인지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유럽은 이 점에서 가장 큰 수혜자다. 미국의 최근 조치들로 유럽의 관심이 중국 리스크보다 트럼프 리스크에 더 쏠리게 됐다. 유럽연합(EU)과 중국의 관계는 미국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가까워질 수도 있다. 예컨대 4월 EU 집행위원회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 문제로 중국과 대화를 재개하기로 했다. 이 사안은 EU-중국 관계의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였다.
베센트 미 재무장관이 ‘중국에 접근하는 건 목을 스스로 치는 일’이라고 경고했지만,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4월 초 중국 리창 총리와 직접 만났고 7월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열기로 했다. 이 회담에서 중국이 EU 전기차 시장에 더 많은 투자를 약속하고 EU는 일부 관세를 완화하는 식의 거래가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 유럽 내부에도 이런 합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베이징 방문 직전, EU와 중국 관계를 재검토하자고 제안했는데, 이는 사실상 미국을 향한 공개적인 반박이었다. 중국 역시 움직이고 있다. 중국은 중국에 비판적이었던 유럽의회 의원 다섯 명에 대한 2021년 제재를 풀 준비를 하는 등 EU와의 합의에 장애물을 제거하고 있다.
미국의 탈동조화 구상이 다른 지역에서 통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중국은 다수 국가의 최대 교역 파트너이며, 대부분의 나라는 중국과 관계를 끊기 전에 신중히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영향력은 무역을 넘어선다. 미국이 여전히 해외직접투자 1위(2023년 4,040억 달러)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중국 기업도 1,480억 달러를 투자하며 일본, EU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래서 다수 국가가 택할 전략은 간단하다. 미국과 중국 양쪽 모두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트럼프가 좋아할 만한 명목상의 양보를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은 트럼프가 오랫동안 시비 걸어온 자동차 안전 규정을 약간 손봐주는 식으로 EU와의 규정을 조정하는 척하며 달래고 있다.
이 점은 탈동조화 전략의 세 번째 결함을 보여준다. 미국이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중국을 버리라는 요구는 지나치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큰 위협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특히 트럼프의 ‘EU는 미국을 골탕먹이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식의 발언, 나토 동맹국인 덴마크령 그린란드 점령 위협,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최악의 백악관 회담 등은 미국에 대한 여러 국가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많은 동맹국은 트럼프의 변덕에 따라 무효화될 수 있는 어떤 거래에도 회의적이다.
과거처럼 미국이 유일무이한 글로벌 패권국이라면, ‘미국 편을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중국이 점점 더 ‘방 안의 어른’처럼 보이며, 불안정한 워싱턴에 대한 믿을 만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4월 2일 트럼프가 소위 '해방의 날' 직후 상호주의 관세를 발표한 날, 중국 외교부는 미국의 관세를 비판하는 동영상을 공개하며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이런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까?”
권위주의 국가가 던진 질문치고는 역설적이지만, 이 메시지는 전 세계에서 빠르게 지지를 얻고 있다. 이달 초 동남아를 순방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두고 한 캄보디아 고위관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늘 미국에 의해 벌을 받아온 작은 나라다. 그런데 이제 세계 2위 경제대국의 지도자가 우리를 찾아온다. 그것만으로도 자부심이 생긴다. 정말 감동적인 일이다”.
카를로 치폴라는 1976년 저서 『인간 어리석음의 기본법칙』에서 몇 가지 규칙으로 어리석음을 정의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아무런 이익도 되지 않으면서 타인에게 해를 끼친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무역정책을 통해 세계적인 중국으로부터의 탈동조화를 추진하려 했는데 이것이 의도와 달리 중국을 강화시킨다면, 이 역시 치폴라의 규칙에 딱 들어맞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