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조희대와 9인의 대법관은 무엇을 잃기 싫어 이런 짓까지 하는가?

대법원장 조희대가 판결문을 읽어나가는 동안 나는 진짜 망치로 머리를 난타당한 기분이었다. 이걸 진짜 이렇게까지 한다고? 대법원이 대선을 한 달 앞두고 정치를 이렇게 난도질한다고?

이 판결이 얼마나 어이없는 것인지는 수많은 전문가들이 분석을 했으니 여기서는 생략하자. 판결 이후 나는 한동안 도대체 저 사람들이 왜 이런 짓까지 벌이는지 그들의 경제학적 동기가 궁금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저건 경제학에도 맞지 않는 행동처럼 보였다. 주류경제학적 해석으로도, 행동경제학적 해석으로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주말쯤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치는 해석 하나가 떠올랐다. 이 칼럼은 저들이 왜 저런 짓까지 벌였는지에 대한 나 나름의 경제학적 해석이다.

계산이 안 맞는 행동

주류경제학은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할 때 얻을 이익과 잃을 손실을 비교한 뒤 그 행동 여부를 결정한다고 말한다. 이런 행동을 해서 얻을 이익이 10, 잃을 손실이 5라면 인간은 그 행동을 한다. 더하기 빼기 해보면 5가 이익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기대이익이 5, 기대손실이 10이면 그 행동을 하지 않는다. 더하기 빼기 해보면 5가 손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주류 경제학의 계산이 엉터리라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이 생각이 맞다고 치자. 그래도 조희대 등 10인 대법관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다. 저렇게 대선에 직접적으로 개입해 특정 유력 후보의 피선거권을 박탈하려는 만행으로 그들이 얻는 이익이 뭔가? “우리 대법관들의 파워가 이 정도여요”라는 과시 더하기 내란을 옹호하는 꼴통 보수들에게 받는 지지 정도 아닌가?

반면 상식적으로 잃는 손해는 훨씬 더 크다. 법원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 대법원이 정치에 이런 강도로 개입할 수 있다는 최악의 선례를 남겼다. 사법 엘리트들이 민주주의를 얼마나 엿밥으로 생각하는지도 확인했다. 조희대 이름은 역사에 박제됐다. 아무리 주류경제학적으로 비교해 봐도 이건 이익보다 손실이 훨씬 크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를 준비하고 있다. 2025.05.01. ⓒ뉴시스

행동경제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더 그렇다. 행동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에게는 손실 회피 성향이 있다”는 사실을 여러 실험을 통해 밝혔다. 인간은 이익과 손실의 크기를 정교하게 비교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익보다 손실을 훨씬 크게 생각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주류경제학에 따르면 도박판에서 1만 원 따는 것과 1만 원 잃는 것은 이익과 손실의 감정이 같아야 한다. 그런데 실험을 해보면 그렇지 않다. 대부분은 1만 원을 땄을 때 기쁨보다 1만 원을 잃었을 때 슬픔을 훨씬 크게 느낀다.

카너먼에 따르면 이익의 기쁨을 1이라고 가정할 때 손실의 슬픔은 2~2.5 정도로 측정이 된다. 행동경제학에 따르더라도 조희대 등 10인의 대법관들은 저 짓을 해서는 안 됐다. 정확히 계산해도 이익보다 손실이 큰데 감정적으로 계산하면 그들이 느낄 손실이 훨씬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기득권의 손실이 두려웠던 거다

그런데 이쯤 생각을 하다가 내가 행동경제학을 잘못 해석하고 있구나 싶은 기분이 들었다. 손실회피 성향은 행동경제학 이론 중 소유효과라는 것과 연결된다. 소유효과란 사람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무엇에 대해 실제 가치보다 훨씬 높은 가치를 평가하는 경향을 말한다.

예를 들어 정확한 사람이라면, 혹은 챗GPT라면 1만 원짜리를 가지고 있을 때 그 물건의 가치를 1만 원으로 측정할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이걸 1만 원보다 높게 평가한다. 단지 내가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말이다. 1억 원 주고 집을 한 채 샀으면 그 집의 가치는 1억 원이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이게 언젠가 올라서 반드시 5억 원이 될 거야’라는 이상한 애정을 부여한다.

이까지 확인하고 손실회피 성향을 다시 살펴보자. 친구들과 고스톱을 쳤다. A는 원금이 10만 원이었는데 판 중반까지 고도리도 잘 붙고 광도 잘 붙어서 자산이 20만 원까지 불었다. 그러다가 판 후반에 피박도 쓰고 광박도 써서 A의 자산은 다시 원금인 10만 원으로 돌아왔다.

B도 원금이 10만 원이었는데 초반에 죽을 쒀서 5만 원까지 자산이 줄었다. 그러다가 후반에 만회해서 결국 자산은 원금인 10만 원으로 돌아왔다. 지금 A와 B는 모두 본전(10만 원)이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 중 누가 더 행복할까?

주류경제학에 따르면 둘의 행복은 같아야 한다. 둘 다 본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 조사해 보면 B가 A보다 훨씬 행복하다. 왜냐하면 A는 한때 자산이 20만 원까지 불었고 그 20만 원을 자기 돈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행복했는데(소유효과) 그게 날아가버려 상실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손실회피가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는 순간은 ‘줬다 빼앗을 때’다. 원래 없었으면 그러려니 하는데 줬다가 빼앗아가면 소유효과와 맞물려 손실의 감정이 갑절로 커진다.

내가 곰곰 생각해 본 결과 조희대 등 10인이 저 미친 짓을 한 이유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지금 이 자들은 자기들이 한 저 뻘짓거리가 가져다줄 이익과 손실은 비교한 게 아니다. 그걸 비교했다면, 그리고 10인의 대가리 안에 뉴런이라는 게 한 스푼이라도 있었다면 절대 저짓을 할 수 없다.

그런데 왜 했느냐? 서울 법대 출신 윤석열의 내란이 실패로 돌아가고 엘리트주의에 대한 민중들의 반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대선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이재명 후보는 사법고시 출신이지만 소년공 출신이기도 하다. 그는 명문대 출신들의 기득권에 아예 관심이 없는 정치인이다.

대법관들은 지금 서울 법대 출신의 기득권이 무너질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원래 없는 거였으면 상관 없는데 이들은 이 기득권을 평생 누려본 사람들이다. 손실회피 성향은 줬다 빼앗을 때 극대화된다고 했다. 대선 이후 자기들의 기득권이 사라졌을 때의 상실감이 이들에게 어마어마하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몰라도 이 해석 외에 어떤 경제학 이론으로도 조희대 등 10인의 이 미친 짓들을 설명하지 못했다. 이 해석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모르겠는데 맞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다.

사회 곳곳에서 기득권들의 추가 준동이 예고되기 때문이다. 최고 기득권이라는 대법원이 태연히 저짓을 했는데 다른 기득권들이라고 이와 비슷한 짓을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진짜 위기감을 느낀다. 이 땅의 민주주의가 기득권 엘리트들의 손에 난도질을 당하고 있다.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