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장정일 칼럼] 사이코패스의 광질(狂疾)을 지적하지 않았던 헌법재판관들

자신이 왕정 시대에 태어난 줄 아는 시대착오병 환자, 자신을 18세기의 계몽군주라고 착각한 윤석열이 벌인 12·3 불법 계엄, 내란 시도는 진압되었다. 미국의 제33대 대통령 해리 S. 트루먼은 대통령 재임 시절 자신의 집무실에 “모든 책임은 나로서 끝이다(The buck stops here)”라는 표어를 써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정에서 내란 수괴 윤석열이 보여준 작태는 이와 달랐다. 윤석열과 그를 변호하는 일당의 논리에 따르면, 윤은 국회를 보호하라고 군대를 보냈는데, 군 지휘자들이 명령을 잘못 알아듣고 그와 반대되는 작전을 벌였다는 것 아닌가. 이런 사이코패스를 군 통수권자로 둔 군 지휘관들만 ×된 거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자신의 잘못을 책임지지 않고 회피해온 역사를 물으려면, 제일 먼저 이승만을 불러와야 한다. 그는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불시에 남침을 하자 이틀만인 6월 27일 서울을 떠나 부산으로 도피했다. 이승만을 아버지로 떠받드는 이들은 군 통수권자이기도 한 대통령이 적군을 피해 탈출한 것이 무슨 잘못이냐고 묻는다. 맞는 말이다. 어떤 상황으로부터도 대통령은 안전해야 한다. 이승만의 자식들인 뉴라이트는 아버지가 ‘런승만’으로 오랫동안 조롱당해왔기 때문에, 이승만이 마치 서울에 있는 것처럼 국민을 속이고 대책 없이 부산으로 도망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목숨을 건다. 이게 우습다.

이승만 전 대통령 ⓒ뉴시스

‘런승만’의 잘못은 인민군이 거침없이 진격해오자 살며시 서울을 빠져나간 것에 있지 않다. 이승만이 런승만인 것은 서울 탈출 전후의 죄과 때문이다. 먼저, 그는 6·25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북진을 국시 삼아 외쳤는데, 그것을 성사시키려거든 포커페이스(평화를 위장하고)를 하고 내실(국방)을 키웠어야 했다. 그런 전략도 준비도 없이 북진을 외치다가 김일성에게 선제공격의 빌미를 주었으니 이것이 그의 첫 번째 죄과다. 그의 두 번째 죄과는 서울 수복 이후, 피난을 할 수 없었던 잔류파를 부역자로 도륙낸 것이다. 대통령이라는 신분으로 쉽게 피난을 할 수 있었던 자가, 이런저런 이유로 옴짝달싹할 수 없었던 시민을 부역자로 처단한 것이다(잔류하다보니 부역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윤석열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등으로 이어진 사이코패스의 적통이었다.

12월 3일 22시23분경, 대한민국을 일순에 3류 국가로 전락시켰던 윤석열 일당의 불법 계엄·내란 망동은 보기 좋게 진압됐다. 시간 순으로 그 과정은 ①윤의 망동 즉시,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달려간 시민과 계엄령 해제 요구 결의안을 상정하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모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②12월 4일,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안에 표를 보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결정과 거기에 따른 국민의힘 의원 18명, ③그 이후에, 윤의 파면을 촉구하기 위해 광장과 거리에 모였던 시민들, ④4월 4일, 전원일치로 탄핵을 결정한 여덟 명의 헌법재판관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문은 명문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파면 선고 이후, 내란 수괴 일당은 이 결정문에 나온 딱 한 대목을 오려내 12·3 불법 계엄·내란의 책임을 민주당과 이재명에게 전가한다. 바로 이 대목이다. “피청구인이 취임한 이래 야당이 주도하고 이례적으로 많은 탄핵소추로 인하여 여러 고위공직자의 권한행사가 탄핵심판 중 정지되었습니다. 피청구인이 수립한 주요 정책들은 야당의 반대로 시행될 수 없었고, 야당은 정부가 반대하는 법률안들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켜 피청구인의 재의 요구와 국회의 법률안 의결이 반복되기도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피청구인은 야당의 전횡으로 국정이 마비되고 국익이 현저히 저해되어 가고 있다고 인식하여 이를 어떻게든 타개하여야만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피청구인이 국회의 권한 행사가 권력 남용이라거나 국정마비를 초래하는 행위라고 판단한 것은 정치적으로 존중되어야 합니다.”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윤석열 일당은 이 대목을 ‘해님 달님 이야기’에 나오는 썩은 밧줄인 듯 부여잡는다. 실제로 윤석열의 결백을 주장하는 ‘윤 어게인’ 나부랭이들이 저 대목을 들어, 윤의 망동을 피치 못할 ‘계몽’의 일환이었다고 주장한다. 어느 ‘보수 스피커’의 일원이 모 일간지에 쓴 칼럼의 일절도 그러하다. “어느 한쪽이 헌법을 무너뜨렸는데 다른 한쪽은 유발의 책임이 없는가? 헌재의 경고는 그게 아니었다. 한국 정치를 이 지경으로 몰아간 죄과를 정치권 전체가 치러야 한다는 것이 헌재의 주문이었다. 죄의 경중은 있겠지만, 스스로 면책할 수 없다. 국민은 알고 있다. 왜 윤석열이 미친 짓을 했는지를. 헌재는 입법 남발과 탄핵 폭풍을 견딜 수 없었다는 ‘피청구인의 판단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과 이재명도 윤석열 일당의 불법 계엄·내란에 책임이 있는 ‘반쪽의 공범’이다? 심용환의『민주공화국의 적은 누구인가』(사계절,2025)의 일절은 썩은 밧줄을 부여잡은 윤석열 일당의 똥구멍을 찢는다. “입법독재? 국회에서 야당의 의석이 192석이 되더라도 대통령의 권한이 얼마나 제어되었던가. 윤석열은 대통령 취임 후 2년 6개월 동안 무려 25건의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 혼란스러웠던 노태우 정권기에도 일곱 번밖에 행사되지 않았던, 노무현 정권기에는 고작 네 번 행사되었던 거부권을 말이다. 참고로 김영삼, 김대중, 문재인 때는 한 번도 없었고 이명박과 박근혜 때는 각각 한 번, 두 번뿐이었다.”(30쪽)

윤석열 전 대통령이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 관저에서 나와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5.4.11 ⓒ뉴스1

대의민주주의와 국회는 다양한 국민적 요구를 받아들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윤석열은 무려 25건의 거부권 행사로 야당과 그들을 지지하는 국민의 요구를 묵살했다. 그래 놓고서도 ‘입법독재’라는 조지 오웰식의 신어(新語, Newspeak)를 만들어냈고, 그것도 모자라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았다. 헌법재판관들은 “대화와 타협”, “협치”가 이루어져야 하는 대의민주주의를 거슬렀던 윤석열의 전례 없는 거부권 횟수에 대해 모르지 않았다(그럴 리가 있나?). 헌법재판관들은 헌법재판소를 정쟁의 장으로 만들지 않고자 사이코패스의 광질(狂疾)을 지적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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