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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전환을 한다고요?] 후퇴하는 ESG 규제, 흔들리는 기후 목표 – 유럽 시민사회는 왜 목소리를 높이는가

2025년 2월, 유럽연합(EU)이 채택한 '옴니버스 패키지(Omnibus Simplification Package)'1)는 국제사회에서 논란의 중심에 있다. 이 패키지는 기업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와 공급망 인권·환경 실사 등, 그간 EU가 선도해 온 지속가능성 규제의 핵심 내용을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시민사회와 NGO는 해당 제안이 EU의 기후중립 목표와 부합하는지 여부를 평가하지 않았으며, 이는 유럽 기후법(European Climate Law)에 따른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 비판하고 있다.2) 이들은 ESG 규제 완화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노력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듯하다. 본 고에서는 EU 옴니버스 패키지의 내용과 이에 대한 시민사회의 비판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프랑스 동부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 본부에 유럽연합(EU) 깃발과 회원국들의 국기가 나부끼고 있다. 2022.12.19. ⓒ뉴시스, AP통신

EU의 지속가능성 규제, 어떻게 퇴보하고 있나

지난 수년간 EU는 지속가능성 공시와 기업 실사 의무화를 통해 전 세계 기후·인권 규범을 이끌어 왔다. 대표적으로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Corporate Sustainability Reporting Directive, CSRD)은 기업들이 온실가스 배출량, 환경 영향, 인권 침해 가능성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의무화했다.3) 특히, CSRD에 따라 기업의 공시 범위에는 스코프 34)가 포함된다. 이는 기업의 직접적인 활동뿐 아니라, 제품의 생산부터 소비, 폐기까지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영향을 투명하게 공개하여 기후위기 대응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또한 EU는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Corporate Sustainability due diligence Directive, CSDDD)을 통해 기업들이 자사뿐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 전반에서 인권 침해와 환경 파괴를 예방하고 시정할 책임을 지도록 규정했다.5) 이러한 규제들은 기업의 기후 행동을 법적으로 강화하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ESG 공시 규제인 CSRD는 기업이 파리협정의 1.5°C 목표와 EU의 2050년 기후 중립 목표에 부합하도록 사업 모델과 전략을 조정하도록 요구한다는 점에서 기후 대응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6)

그러나 최근 EU 집행위원회(이하 ‘집행위’)가 발표한 옴니버스 패키지는 이러한 진전을 크게 후퇴시켰다. ESG 공시와 실사 의무 적용 대상을 1,000명 이상 대규모 기업으로 제한하여 기존 5만여 개 기업에서 1만여 개 기업만으로 대폭 축소했다.7) 기업의 공급망 책임도 직접 계약 관계가 있는 1차 협력업체로만 한정하여, 그 너머의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사실상 방치할 수 있게 되었다. 실사 주기도 연 1회에서 5년 주기로 크게 완화되었으며, 기업들이 구체적인 탄소중립 로드맵을 수립하고 이행해야 했던 의무사항이 사실상 선택사항으로 변질되었다.8) 환경·인권 관련 세부 규정과 보고 의무가 대폭 축소되거나 삭제되었으며, 산업별 맞춤 보고 기준도 폐지되었다. 중소기업은 사실상 자율 보고로 전환되었고, 아직 보고를 시작하지 않은 기업은 2년의 추가 유예기간을 얻게 되었다.9)

2024년 11월,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경쟁력 강화를 새로운 정책 우선순위로 제시하여 지속가능성 보고 및 실사 요건을 간소화하는 것을 제안했고, 2025년 이를 옴니버스 패키지로 구체화되었다.10) EU 집행위는 "기업의 행정 부담을 25% 줄이고, 규제 환경을 단순화하여 투자와 혁신을 촉진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11) 일부 기업들은 이러한 변화를 환영했지만, 시민사회와 환경단체들은 이러한 '간소화'가 실제로는 규제의 본질을 훼손하는 '후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시민사회의 반발: “EU 옴니버스 패키지는 유럽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

옴니버스 패키지 발표 직후, 유럽의 시민사회와 NGO들은 즉각적인 반대 운동에 나섰다. ClientEarth, Clean Clothes Campaign, Friends of the Earth Europe, Global Witness 등 8개 주요 환경·인권 단체는 옴니버스 패키지의 개발 과정이 비민주적이고 불투명했다며 유럽 옴부즈맨(European Ombudsman)12)에 공식 이의를 제기했다.13) 이들이 문제 삼은 것은 EU 집행위가 시민사회와의 공개 협의 없이, 일부 산업계(화석연료 기업 등) 중심의 비공개 회의에서 패키지를 졸속 추진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집행위가 환경·사회적 영향 평가도 생략한 채, 시민과 피해자, 노동자의 목소리가 배제된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고 주장한다.14) 프랑스 소재의 비영리 환경 단체인 ‘Reclaim Finance’에 따르면, 옴니버스 패키지는 유럽 연합의 거버넌스와 민주적 규칙을 무시한 불투명한 절차(opaque process that ignored the governance and democratic rules)로 설계되었으며, 수년간의 입법 성과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the project jeopardizes years of legislative work).15) 이는 EU 집행위의 의사결정 과정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로 보인다.

이뿐 아니라, Clean Clothes Campaign, European Coalition for Corporate Justice, Transport & Environment 등 362개 이상의 시민단체는 유럽의회와 이사회에 옴니버스 패키지 거부를 촉구하는 공동 성명을 제출했다.16) 이들은 해당 개정안이 ‘기업의 책임에 대한 약속을 훼손하고, 인권 및 환경 보호를 약화한다(erode corporate accountability commitments and diminish human rights and environmental protections)’고 지적했다. 지속가능성 규정이 약화되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기업의 범위를 넘어 전 지구라고 선언한 것이다. 이처럼 시민사회가 ESG 공시와 실사 규제의 후퇴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건, 기후위기와 인권침해는 단순한 '규제 이슈'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 세대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는 인식에 바탕한다.

ESG 공시와 지속가능성 실사의 실질적 의미: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다

ESG 공시와 지속가능성 실사는 단순 행정 부담을 넘어선, 기업 활동이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예방하고 최소화하기 위한 필수적 안전망이다. 이를 완화하는 것은 마치 건물 안전점검을 완화해 시간과 비용을 줄이자는 주장과 다르지 않으며, 그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재난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가정해 보자. 유럽의 한 대형 식품기업이 팜유를 조달할 때, 기존 규제하에서는 공급망 전체에서 발생하는 산림파괴와 원주민 토지권 침해를 점검하고 시정해야 한다. 그러나 옴니버스 패키지 적용 시, 이 기업은 중간 거래상(1차 공급자)만 점검하면 되고, 실제 생산지에서 벌어지는 환경파괴에 대해선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이처럼 식품·농업 등 글로벌 공급망이 복잡한 산업에서는 영세농이나 취약 계층의 인권·환경 보호가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 네덜란드 소재 시민단체인 Solidaridad는 "공급망 전체에 대한 책임이 사라지면, 소규모 농민과 노동자 등 가장 약한 고리가 피해를 입게 된다"고 경고한다.17)

탄소 배출 공장 ⓒpixabay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규제, 왜 지켜야 하는가

EU와 같은 기후대응과 지속가능성 제도 마련의 선두주자에서조차 이러한 원칙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경고를 던진다. 앞서 살펴봤듯이 ESG 공시와 기업 실사 기준이 후퇴한다면, 전 세계적으로 기후위기 대응과 인권 보호의 연대가 무너질 수 있다. 옴니버스 패키지는 단지 한 권역의 규제 개편이 아니라, 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위한 노력에 보내는 부정적 신호다. 기업들이 단기적 부담을 피하기 위해 환경과 인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도록 허용한다면, 그 대가는 결국 우리 모두가 치를 수 있다.

우리는 다시금 물어야 한다. ESG 공시와 지속가능성 실사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규제 대상 범위가 기업이라는 것에 매몰되지 않고 생각한다면, 이는 바로 우리 모두, 그리고 다음 세대가 살아갈 지구를 위한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공동 목표는 결코 간소화될 수 없으며, 유럽 시민사회가 목소리를 낮추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더 이상 뒤로 물러설 여유가 없으며, 지금 필요한 것은 규제 완화가 아니라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한 약속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필자주
1)
https://finance.ec.europa.eu/news/omnibus-package-2025-04-01_en
2)https://corporatejustice.org/news/joint-press-release-ngos-challenge-european-commissions-undemocratic-omnibus-process/
3)https://finance.ec.europa.eu/capital-markets-union-and-financial-markets/company-reporting-and-auditing/company-reporting/corporate-sustainability-reporting_en
4)기업 자체 활동뿐 아니라(Scope 1, 2), 공급망 전체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
5)https://www.lawtimes.co.kr/LawFirm-NewsLetter/200445
6)https://theclimatechoice.com/resources/magazine/update-on-new-eu-supply-chain-law-csddd-what-does-it-mean-for-climate-transformation-in-your-company
7)https://www.brusselstimes.com/1544181/european-commission-plans-major-rollback-of-green-deal-rules
8)https://www.pwc.com/kr/ko/services/sustainability-platform/insights/eu-omnibus-package.html
9)위와 동일함
10)https://bhr.ioe-emp.org/bhr/default-title/news/article/the-omnibus-proposal-future-of-eu-sustainability-regulations
11)https://ec.europa.eu/commission/presscorner/detail/en/qanda_25_615
12)EU 시민, 거주자, 그리고 EU 내 기업이나 단체가 EU 기관(예: 유럽집행위원회, 유럽의회, EU 산하기관 등)에서 겪는 &잘못된 행정(부당한 행정 처리, 불투명, 차별, 권한 남용, 불필요한 지연, 정보 비공개 등)&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면 이를 독립적으로 조사하는 기관. (https://european-union.europa.eu/institutions-law-budget/institutions-and-bodies/search-all-eu-institutions-and-bodies/european-ombudsman_en)
13)https://www.just-style.com/news/eu-commission-omnibus-ngo/?cf-view
14)https://reclaimfinance.org/site/en/2025/03/06/eu-omnibus-a-playground-for-industry-lobbies/
15)원문: &Designed by the European Commission through an opaque process that ignored the governance and democratic rules of the Union, the project jeopardizes years of legislative work.&(출처: https://reclaimfinance.org/site/en/2025/03/06/eu-omnibus-a-playground-for-industry-lobbies/)
16)https://corporatejustice.org/news/joint-press-release-ngos-challenge-european-commissions-undemocratic-omnibus-process/
17)https://www.solidaridadnetwork.org/news/omnibus-package-risks-livelihoods-of-millions-of-smallholders-worldw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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