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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고교학점제, ‘선택권’ 뒤에 가려진 교육 불평등

올해부터 전국의 모든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됐다. 학생이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해 이수하는 ‘맞춤형 교육’이라는 제도 취지 자체는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시행 초기부터 현장은 혼란과 피로에 빠져 있다. 제도 설계 당시부터 준비 부족에 대한 우려가 컸고, 교육 현장의 경고는 지속돼왔다. 결국 현실은 ‘선택권’이라는 이름 아래 또 다른 교육 불평등을 키우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고교학점제의 가장 큰 문제는 선택권의 실질적 보장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도시 대규모 학교와 달리 농어촌·소규모 학교는 수강 인원 부족으로 인해 다양한 과목 개설이 불가능하다.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할 수 있다’는 원칙은 결국 일부 학생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 됐다. 이는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제도적으로 고착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교사 인력 부족과 과중한 행정 부담도 고교학점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다. 다양한 과목 개설은 곧 다양한 교원 확보를 필요로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여러 교과목을 떠맡는 것은 기본이고, 수업 준비 외에도 공강시간에 대한 관리 책임, 1학년 학생들의 출결 처리 등 새로운 업무가 쏟아지고 있다. 기존 수업 체계에서는 없던 학생 개별 수업 시간표와 생활기록부 기재 방식의 복잡성 또한 교사들에게 큰 부담이다. 여기에 성취도가 낮은 학생을 별도로 관리하는 최소성취수준보장제도까지 겹치면서, 교사 1명이 수업·상담·기록·관리까지 전방위적 업무를 떠안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행정과 평가, 생활지도 전반에 걸친 과중한 부담은 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지며, 결국 피해는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학생들에게 충분한 진로 탐색 기회를 제공하지 못한 채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진로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과목을 선택하라는 건 결국 대학 입시 유불리에 따라 과목을 결정하게 만든다. 진정한 의미의 ‘맞춤형 교육’이 아니라 ‘등급 따기’ 위한 전략적 선택만 남게 되는 것이다. 이 제도가 또다시 성적이 좋은 학생들만 유리한 구조로 굳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제도 시행 이전부터 제기돼 왔다. 특히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는 고교학점제 도입 전부터 전면 철회를 요구했고, 현재는 제도 자체의 폐지까지 주장하고 있다. 단순한 일부 반대 목소리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고교학점제는 교사에게는 과도한 행정과 수업 부담을, 학생에게는 선택의 부담과 성적 압박을 안겨주고 있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제도는 ‘선택’이라는 허울 아래 경쟁과 불평등을 확대하는 교육실험으로 남게 될 것이다.

고교학점제 안착을 위해 공동 교육과정, 교원 연수, 학점제형 교실 등 다양한 대책이 나오고는 있지만, 이는 본질적 대안이 되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현장과의 간극’을 인정하고, 폐지를 포함한 전면 재검토에 나서는 것이다. 교사와 학생 모두가 감당할 수 없는 제도라면, 그것은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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