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파면 결정 후 일주일 만인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를 떠나기 앞서 정문 앞에서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공동취재) 2025.4.11 ⓒ뉴시스
저는 매월 초 교육계의 사안을 소재로 칼럼을 써왔습니다. 이번 달에도 쓰려고 준비했던 사안이 있었는데 차마 쓸 수 없었습니다. 지난 1일 발생한 대법원의 사법 쿠데타 때문입니다. 한 달도 남지 않은 대선이 제대로 진행될지 어떨지 알 수 없는 정국에서 한가하게 교육계 사안을 다룰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현 시국에 대해 한마디 보태고자 합니다.
작년 12월부터 우리는 소설보다 더 소설 같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윤석열이 민주당과 진보 세력을 향해 ‘반국가 세력’이니 ‘공산 전체주의 세력’이니 하는 말들을 떠들어댔을 때 그저 막 나가는 정치적 수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북한을 자극하여 전시 상황을 만들고 계엄을 선포한 후 민주 인사들을 ‘수거’하여 백령도로 이송하다 폭사시킨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막후에서 계엄을 설계한 노상원의 수첩에 적힌 내용은 소설가들도 상상하지 못할 내용이었습니다.
4표 차이로 간신히 윤석열을 탄핵하고 한숨 돌리는가 했더니, 법을 집행하며 평생을 먹고 살아온 대통령이라는 자가 사법부가 발부한 구속영장을 거부하는 초유의 사태를 보았습니다. 수많은 시민이 용산 관저 앞에서 밤새 눈을 맞아가며 내란 수괴를 구속해 놨더니 ‘지귀연’이라는 자가 풀어주었습니다. 사법부 70년 역사상 딱 한 사람에게만 ‘일수’가 아니라 ‘시간’으로 계산하여 풀어주고, 검찰총장이 ‘즉시 항고’를 가로막는 방식은 기상천외하기만 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시간을 질질 끌어서 온 국민의 화를 돋우었지만 그래도 8:0으로 판결해서 용서했는데, 이번에는 대법원이 보란 듯이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그 방식 또한 기상천외합니다. 원래 대법원은 소부(小部)에서 만장일치로 판결하고 소부에서 대법관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전원합의체로 넘겨 판결하는데 조희대는 바로 전원합의체로 이관하여 제대로 심의도 하지 않고 9일 만에 파기환송을 감행했습니다. 최소한의 형식적 절차도 무시하고, 정치적 중립을 가장하지 않은 조희대의 작전도 엽기적이지만, 대법관 12명 중 10명이 함께 작당했다는 것은 너무나 충격입니다.
판사라는 직업이 낡은 법조문에 얽매여 고리타분하게 사는 사람들인 줄 알았더니 조희대의 대법관들은 지금까지 본 어떤 법정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상상력을 지닌 자들이었습니다. 윤석열이 4월 14일 대통령 관저에서 나와 아크로비스타로 가면서 “다 이기고 돌아왔다”는 헛소리를 했는데 다 계획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대선은 이재명과 김문수(또는 한덕수)의 대결이 아니라 사법부와 국민의 대결이 되었습니다. 장 자크 루소는 영국의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며 “영국인은 선거 때만 자유인이 되고 끝나면 다시 노예로 돌아간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18세기 영국인만 그런 게 아니라 21세기 대한민국 국민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평범한 국민이 가진 권력이란 게 투표용지 한 장 말고 뭐가 있습니까. 투표 날 만큼은 재산이 수조 원인 이재용이나 저나 모두 한 표씩만 권리를 가집니다.
그런데 지금 조희대의 대법원은 국민이 가진 그 알량한 투표용지 한 장마저 빼앗겠다고 나섰습니다.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입니다. 공화국이란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나라를 말합니다. 역사적으로 통치 체제는 왕정, 귀족정, 공화정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조희대 일당은 공화정을 부정하고 사법 귀족들이 다스리는 귀족정을 선포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사법부 귀족들의 반란입니다.
지난 연휴 기간 내내 방송과 유튜브에 국회의원, 로스쿨 교수, 변호사 등이 나와 이 사태를 해설하고 해결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조희대 일당이 어떤 꼼수를 쓸 수 있는지 분석하고, 이를 제압하기 위해 언제 서울고법 재판부와 대법관들을 탄핵해야 하는지 계략을 내놓았습니다. 그런 비책들을 내놓으면 또 질문이 이어집니다. 만약 대법관들을 탄핵했는데 탄핵 인용 중지 가처분 신청을 하면 어떻게 할 거냐, 헌법재판소가 속전속결 심리로 탄핵을 기각하면 어떻게 할 거냐, 심지어 서울고법이 무죄를 선고한 후 대법원에서 파기자판으로 유죄를 선고하면 어떻게 하느냐 등등 질문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헌법재판소 때문에 헌법을 공부했고, 지귀연 때문에 형사소송법을 공부했는데, 이제는 공직선거법부터 온갖 법을 다 알아야 이 나라 국민 노릇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무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들, 상상 불가능한 일들이 벌어지니 법에 대해 알면 알수록 머리만 아픕니다. 윤석열, 지귀연, 조희대 모두 기존의 법을 뛰어넘는 일들을 해왔는데 법적으로 해법을 찾으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모든 경우의 수 중에 대답하지 못하는 게 있습니다. 온갖 노력을 했는데도 대법원이 6월 3일 전에 유죄 판결을 확정하면 어떻게 할 거냐? 지금은 그런 상황을 가정할 때가 아니라고 하겠지만,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은 모두 소설가와 극작가들도 상상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저들이 상상 못 할 일을 벌이니 우리도 저들이 상상하고 싶지 않은 답을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내란 세력들은 ‘윤 어게인’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사법 쿠데타로 이재명을 투표용지에서 제거한 후, 김문수나 한덕수를 대통령으로 만들고, 윤석열의 내란에 무죄를 주어 천년만년 귀족들의 나라를 만들어보자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6월 항쟁 어게인’입니다. 6월 항쟁의 핵심 요구는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였습니다. 너희들끼리 체육관에서 뽑지 말고 국민이 대통령을 뽑자는 것이었죠.
조희대 대법원장이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를 준비하며 생각에 잠겨 있다. 2025.5.1 ⓒ뉴스1
내란 세력들의 집요하고도 상상 불가능한 행태에 맞서 아주 단순하게 답을 주어야 합니다. 아무리 잔머리 써봐도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것, 절대로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는 것을 명확히 선언해야 합니다. 87년 6월에는 6.29 선언에 속아 불철저한 항쟁을 했지만, ‘어게인 6월 항쟁’에는 친일파 청산, 군부독재 잔재 청산, 사법 카르텔까지 철저히 손보겠다는 것을 알려줘야 합니다.
복잡한 이론보다 짧은 시 한 구절로 머리를 맑게 할 필요가 있는 시국입니다. 그래서 유신독재에 온몸으로 맞섰던 김남주 시인이 쓴 ‘종과 주인’이라는 시를 함께 읽어보는 것으로 칼럼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