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광개토대왕부터 12.3 계엄군까지 군대 이야기

연극 ‘국산 군인’··· 동시대 문제를 날카로운 시선과 통쾌한 해학으로 풀어내다

연극 '국산군인' 공식포스터 ⓒ프로젝트W

살면서 무장한 군인을 만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군부대가 있었던 지역에 살 때는 군부대 훈련을 더러 보기는 했다. 훈련이기는 해도 둔탁한 굉음을 내는 군용 차량과 무장 군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쫄리고 움츠러든다. 그런 경우도 아닌데 서울 한복판에서 무장한 군인을 맞닥뜨리게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하지만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12월 3일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말 모임 따위를 고민하던 그런 평범한 날이었다. 그런데 국회의사당에 헬기가 내려앉았고 영화처럼 중무장한 군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군인과 시민들이 온몸으로 부딪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살 떨리게 무섭고 비현실적인 밤이었다.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 무대 위 어둠 속에서 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군인 병욱의 모습은 그날의 장면과 오버랩되었다.

지옥으로 떨어진 참 군인들의 탈출 소동


프로젝트W의 신진 연출가 전웅과,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질문을 통쾌한 해학으로 풀어내는 극단 신세계의 배우들이 뭉쳤다.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서는 우리 역사 속 참 군인들이 벌이는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벌어진다. 공연장을 통째로 무대로 만들어버리는 알뜰살뜰 연출력은 소극장 무대의 진짜 재미를 보여준다. 이제 무대 위로 뚝 떨어진 군인 병욱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아보자.

이곳은 천당이다. 아니 천당 문 앞이다. 천당 문을 온몸으로 두드리던 병욱은, 천당에 가기 위해 지옥에서 탈출한 ‘탈옥단’ 사람들에게 발견된다. 그런데 이 탈옥단 사람들이 너무 수상하다. 자신을 광개토 대왕, 선덕여왕, 이순신 장군, 독립군이라고 소개하는 것이다. 이들은 병욱이 지옥을 탈출해서 천당 문 앞에서 소란을 피워 천사들에게 쫓기고 있음을 알려준다.

연극 '국산군인' 컨셉 사진 ⓒ프로젝트W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뿐더러 왜 죽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병욱은 탈옥단을 믿지 않는다. 게다가 천사들에게 잡히면 다시 지옥으로 가게 된다는 탈옥단의 경고에도 천당으로 들어가려 한다. 천사들의 추격이 점점 거리를 좁혀오는 가운데 병욱은 자신이 계엄군으로 12월 3일 시민들을 향해 총을 들다 죽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병욱은 왜 비상계엄의 한가운데 있었던 것일까? 병욱은 진짜 사람들을 향해 총을 겨누었을까? 또 역사 속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탈옥단 위인들은 왜 지옥으로 가게 된 걸까? 천당 문 앞에서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의 끝자락에 다다르면 관객은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이자 답을 얻게 된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지키고 있습니까?


탈옥단은 천당 문 앞을 지키는 천사들에게 천국은 어떤 곳인지를 묻는다. 하지만 천사들은 모른다. 왜냐하면 천사들은 천당의 문만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탈옥단은 묻는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지키고 있는 건가요?”라고. 천사들은 한 번도 자신들이 왜,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는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지키고 있는 것의 실체 조자 알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시되고 명령된 일을 아무런 생각 없이 효과적으로 수행한다는 것은 얼핏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한나 아렌트는 ‘악은 사고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평범하다. 사고할 능력이 없음이 악을 불러온다’고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했다. 이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군대가 지키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머무르지 않는다. ‘개인’에게 돌아와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하며 산다는 것이 어떻게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올 수 있는지를 곱씹게 한다.

연극 '국산군인' 컨셉 사진 ⓒ프로젝트W

동시대의 문제를 가장 빨리, 가장 솔직하게, 가장 명확한 언어로 관객과 만나고 있는 연극 ‘국산 군인’은 그래서 ‘핫’하다. 고민지, 김보경, 박미르, 이강호, 이명열, 이시래, 장우영, 하민욱, 한지혜, 황예원 배우가 펼치는 역동적인 무대는 잠시도 눈을 떼기 힘들다. 귀에 쏙쏙 박히는 찰진 대사는 극의 흐름을 이해하기 편하게 해준다. 2023년 연극 ‘국산 예수’로 데뷔한 연출가 전웅의 두 번째 ‘국산’시리즈 <국산 군인>은 5월 11일까지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서 공연된다.

연극 ‘국산 군인’

공연 날짜 : 2025년 5월 2일(금) ~ 5월 11일(일)
공연 장소 :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
공연 시간 : 평일·공휴일 19시 30분 / 주말 15시 / 월요일 공연 없음
러닝 타임 : 80분
관람 연령 : 만 13세(중학생)이상
창작진 : 작·연출 전웅/드라마터그 박성원/무대감독 윤정식/무대디자인 Shine-Od/조명디자인 김주슬기/의상·소품디자인 김우유/그래픽디자인 김낙수장/영상 박영민/사진 IRO COMPANY/접근성매니저 김혜린 이강호/예술감독 김수정
출연진 : 고민지, 김보경, 박미르, 이강호, 이명열, 이시래, 장우영, 하민욱, 한지혜, 황예원
공연 문의 : 0502-1939-2023
접근성 문의 : 050-6738-2031 (문자, 전화 가능)
공연 예매 : 인터파크 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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