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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재명에 민원 쏟아낸 경제5단체장, 리더십은 어디 갔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경제5단체장이 8일 마주 앉았다. 위기의 한국 경제를 혁신할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신성장 동력 발굴, 제조업 혁신, 규제 완화 등 반복되는 선언적 수사를 걷어내면 경제단체장들이 내놓은 제안은 '낯부끄러운 민원'만 남았다.

최진식 중견기업연합회 회장이 강조한 상속·증여세 완화 주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상속·증여세 완화를 '기업의 지속 가능성'으로 포장했다. 미국의 관세 부과가 부담스럽다며 "기업이 속한 국가가 조세권을 가지고 거기서 일자리도 창출되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상속·증여세를 낮춰주지 않으면 해외 이전을 하겠다는 사실상의 협박이다. 부의 집중을 완화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조절하는 핵심 조세 정책을 볼모로 대선 후보를 협박하는 것이 한국중견기업 대표자라는 사실이 씁쓸하다. 참석자들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수를 치며 동의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정년 연장에 반대하며, '인건비 부담'을 앞세웠다. 그의 말에서는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한국 사회에 대한 고민이나 그에 따른 노년층 복지에 대한 고민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생산성 향상, 일자리 나누기 차원의 주 4.5일제를 비판하고 연장 근로시간 확대 요구를 내놨다. "변화하는 수주 상황에 대응하기 쉽지 않다 "연구개발·첨단 산업에 적용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사회적 과제를 무작정 기업의 비용 문제로 단편화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 강화, 정책 자금 지원 등을 요구한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은 대기업들이 이미 법인세 인하, 연구개발(R&D) 세액공제, 투자 촉진 세제 등 다층적인 지원을 받는 현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한일 경제 공동체' 구상을 재차 강조했으나 일본과의 경제 연대를 마치 성장의 필수 조건처럼 제시하는 것은 현실을 도외시한 접근이라 우려된다. 미·중 패권전쟁의 향방, 그에 따른 외교·통상 전략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없는 상황에서 시장 규모와 경제성장률만으로 한일 경제 공동체를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갈등만 증폭시킬 우려가 크다.

1시간 넘게 진행된 경제5단체장 간담회는 결국, 재계의 자기중심적 민원 성토장 수준으로 격하됐다. 간담회는 정부에 '청구서'를 내미는 자리가 아니다. 구조적 전환기에 서 있는 한국 경제에 대한 경제 리더십이 절실한 때다.

이야기를 들은 이재명 후보의 답변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상속세 완화 주장엔 "거대한 사회적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선을 그었고 정년 연장이나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서는 "깊은 대화가 필요한 문제"라고 했다.

다만, 이 후보는 "공공서비스의 공급자 관점이 아니라 수요자 중심으로 행정을 혁신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행정의 패러다임 전환을 강조한 발언이지만, 자칫 재계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반영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향후 기업계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행정으로 귀결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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