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공원 앞에서 열린 5.10 공무원 기본권·생존권 쟁취 총력투쟁대회 ⓒ공무원노조 제공
대선을 4주가량 앞둔 10일 공무원 노동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정부와 국회를 향해 “공무원의 정치기본권과 노동3권을 보장하라”고 목 놓아 외쳤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을 비롯한 공무원, 교원노동조합으로 구성된 공무원·교원 생존권 쟁취 공동투쟁위원회(공투위)는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 앞에서 ‘5.10 공무원 기본권·생존권 쟁취 총력투쟁대회’를 열었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전국에서 모인 3만여명(주최 측 추산)의 공무원·교원 노동자들은 여의도 환승센터 앞부터 마포대교 남단 인근까지 편도 4개 차선을 가득 메웠다. 참가자들의 손에는 ‘우리도 정치’, ‘생존권 보장’이라고 적힌 피켓이 들려 있었다.
공투위는 6개 노조 위원장의 공동 대회사를 통해 정부와 국회에 공무원의 정치 기본권 보장과 함께 ▲노동기본권 보장 ▲노후 소득공백 해소 ▲임금인상 ▲주 4일제 시행 ▲인력확충 등 6대 요구사항 보장을 촉구했다.
먼저 공투위는 “공무원 교원도 국민이다. 우리에게도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 있다. 정치표현의 자유와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하고 글을 쓸 자유가 있다”면서 “그러나 현행법은 정치행위 금지, 정당 가입금지, 댓글만 써도 처벌, ‘좋아요’만 눌러도 징계를 하고 있다. 새 시대에는 이런 낡은 제도를 갈아엎어 버리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무원 노동3권 보장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공투위는 “세금으로 임금을 받으니 무조건 참고 차별받아도 받아들이라는 노예계약이 우리를 칭칭 감고 있다”면서 “우리도 임금교섭하고 단체행동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단체교섭권이 만들어진다. 노동3권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손피켓을 들고 있는 공무원 교원 노동자들 ⓒ공무원노조 제공
공무원 임금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점도 짚었다. 공투위는 “공무원 보수의 민간 임금 접근율은 2020년 90%까지 올라갔다가 계속 낮아져 2023년에는 역대 최저인 83%까지 떨어졌다”면서 “공무원 초과근무수당은 정규 근무시간 단가보다 더 낮다. 20년 차 6급 공무원의 초과근무 수당은 1시간당 1만3,229원이다. 이 정도면 공짜노동 강요하는 악덕 사업주”라고 비판했다.
공무원 노후 소득 공백과 관련해선 “2015년 공무원연금법 개정시 정부와 국회가 약속한 ‘연금 수급시기와 정년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소득 공백을 해소하겠다’는 약속이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면서 “노후 소득 공백마저 나 몰라라 하는 정부와 국회에 분노를 금치 못한다. 우리는 약속을 저버린 그들에게 투쟁을 선언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주 4일제 도입과 인력 확충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냈다. 공투위는 “주 4일제를 도입하고 인력을 확충해 국민의 안전·복지·보건 등을 제대로 책임지게 해야 한다”면서 “일률적인 공무원 감원 정책을 철회하고 OECD 국가 평균의 절반도 되지 않는 우리나라 정부 인력을 OECD 평균 수준으로 올리라”고 강조했다.
특히 현장에서는 공무원 교원의 정치기본권과 노동기본권 보장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김현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광주지부장은 “지난 12월 3일 계엄의 밤, 주저 없이 국회로 달려간 교사들이 있었다. 불법 계엄과 국가 내란 세력들로부터 국회를 지키겠다고,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한걸음에 달려갔다”면서도 “그러나 우리나라 민주주의에는 교사 공무원의 정치기본권이 없다”고 한탄했다.
김 지부장은 “우리가 지켜낸 국회, 지지하는 국회의원에게 후원금 한 푼을 낼 수 없는 나라에서 근무 시간 이후 정치 활동조차 보장받지 못한 나라에서 국민주권은 교사 공무원들에게 먼 이야기”라며 “국회를 지켜낸 교사 공무원, 시민들이 있어 국회가 불법 계엄을 해제할 수 있었듯이 이제 국회가 교사 공무원의 정치기본권의 제약을 해제할 때”라고 강조했다.
유아 전국민주우체국본부 수석부위원장은 “노동3권은 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기본권이지만 공무원들에게는 이를 제한하고 있다”며 “우정단체협약에는 강제노동을 금하는 내용이 있었지만, 우정사업본부는 이를 무시하고 공무원이자 집배 노동자가 강제노동을 거부했다는 사유로 징계처분을 했다”고 꼬집었다.
유 수석위원장은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서 법리 판단을 받고 있다”면서 “관서장의 판단에 따라 공무원 노동자들의 기본권이 완전히 박탈되는 것은 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을 예전 권위주의 시대로 회귀하려는 시도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여의도 공원 앞에서 열린 5.10 공무원 기본권·생존권 쟁취 총력투쟁대회 ⓒ공무원노조 제공
정치권도 “공무원 정치기본권·노동기본권 보장돼야”
이날 공무원 기본권·생존권 쟁취 총력투쟁대회는 정치권에서도 지지의 뜻을 밝혔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은 “윤석열 3년 동안 공직 사회가 무너져 내렸다. 일반 공무원의 정치 기본권은 법으로 꽁꽁 묶어 놓은 채 일부 고위 공직자들은 자신들의 출세를 위해서 권력에 줄을 서고 있다”며 “이것이 윤석열 정권의 민낯이자 불공정의 끝판왕”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공무원도 시민적 권리를 가진 엄연한 국민 아닌가”라며 “업무 수행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면 우리 공무원도 헌법적 권리인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춘생 조국혁신당 국회의원은 “12.3 내란 이후 윤석열 파면과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노동 현장에서 그리고 광장에서 함께 싸워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윤석열은 내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서 “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르는 이런 일들에 대해 국민 누구나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정치적 비판이 보장돼야 한다. 그런데 우리 공무원과 교원들에게는 비판할 수 있는 권리조차 보장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의원은 “공무원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헌법에 명시된 정치의 기본권이 보장돼야 한다. 정치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면서 “6월 4일 새롭게 출범하는 새 정부에서는 반드시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우리 조국혁신당이 맨 앞에서 함께 하겠다”고 했다.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는 “왜 이 나라에서 공무원만은 그 흔한 댓글의 ‘좋아요’조차 누르지 못한단 말인가. 유엔과 국제기구, 그리고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왜 박탈당한 채 살아야 하느냐”며 “공무원의 노동 기본권은 또 어떤가. 가입 대상은 제한되고 단체 교섭권은 형식적이며, 단체 행동권은 원천 차단되어 있어 ILO가 수차례 시정을 권고했지만 무엇 하나 바뀌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김 상임대표는 “공무원 교원도 헌법이 보장한 모든 민주적 권리를 보장받아야 마땅하지 않겠냐”며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우리 손으로 낡은 모든 것들을 집어던지고, 우리 손으로 당당한 민주공화국의 국민이자 노동자로서 다시 일어서자”고 제안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는 “내란 정권의 지자체장들은 내란을 옹호하는 망언을 서슴없이 내놓고 심지어 헌정 질서를 부정하는 극우 집회에 참석해서 발언까지 하는데, 일선 공무원들이 비상계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수사하고 감찰하고 입을 막는다”며 “공무원들의 중립 의무는 오로지 공직 수행에 국한되어야 한다.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정치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낼 권리는 그 누구도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용 대표는 “노동기본권 역시 마찬가지다. 공무원 노조법이 단체 행동권을 원천적으로 틀어막고 있어서 우리나라에서는 연가 투쟁이라고 하는 상식적으로는 선진국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 쓰이고 있다”면서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공무원 노동자들이 ILO 협약에 따라 당당히 자유롭게 노동 3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공투위는 이날 투쟁대회 말미에 ‘정치기본권 쟁취!’라는 문구가 적힌 70m 길이의 초대형 현수막을 펼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리고 참가자들을 두 방향으로 나누어 국회 앞까지 행진을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