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마을 만세] ‘빛의 혁명’과 마을의 귀환

윤석열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계엄령을 선포한 3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경찰병력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2024.12.3 ⓒ뉴스1

“나, 윤석열이 잡으러 서울 갈텡게 찾지 마!!”
“어르신, 거기가 어디라고 어떻게 가신다는 거예요? 경찰들이 잘 알아서 할거예요. 걱정마시고 여기 계셔요.”
“테레비 봉께 영 못쓰겄드만. 경찰들 싹 다 바보 멍충들이여. 그런 놈 하나를 못 잡고. 내가 가야써. 나한테 윤석열이 끄집어 낼 방법이 있대니껜!”

내란 수괴 윤석열에 대한 1차 체포영장 집행이 불발된 1월 3일, 매서운 추위속에서 무작정 서울로 가겠다는 A 어르신과 한참 실랑이를 벌였다. 늙어 쇠약해졌어도, 치매에 걸렸어도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을 단죄하겠다는 의지만큼은 결연했다. 이날의 일은 다행히 작은 소동으로 일단락되었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를 겪으며 어르신들의 분노와 스트레스도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 인용이 결정됐다. 주간보호센터에서 생중계를 지켜본 어르신들이 일제히 만세를 불렀다. 일제강점기로부터 한국전쟁, 군부독재로 이어지는 근현대사의 비극을 살아온 어르신들에게 ‘군사 쿠데타’는 사라진 줄 알았던 폭력과 야만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공포였다. 그런 만큼 광장의 시민들만큼이나 간절하게 내란수괴의 파면과 즉각적인 처벌을 염원했다. 이 날 어르신들은 “윤석열이가 파면되니 밥맛도 꿀맛”이라며 “답답한 체증이 내려간 것 같다”고 하셨다.

극우세력의 준동과 공동체의 위기

12.3 내란 사태는 윤석열이라는 ‘정치 괴물’을 앞세운 극우세력이 시민들의 합의로 유지해 온 민주공화정의 존립을 파괴하려는 극단적인 시도였다. 대형사고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 크고 작은 징후들이 수차례 반복되다가 임계점에 도달하면 터진다는 ‘하인리히의 법칙’은 이번 내란 사태에도 적용된다. 박근혜 탄핵 시기를 전후해 극우 개신교 세력이 주축으로 등장한 ‘아스팔트 극우’는 혐오와 가짜뉴스를 자양분으로 성장해왔으며 유튜브 등 온라인 미디어와 결합해 세 확산에 나섰다. ‘국민의 힘’은 이들의 논리를 수용하고 정치에 반영하면서 극우세력의 정치세력화에 영합했다. 반페미니즘, 반노조, 반동성애, 반이슬람 등의 논리를 앞세워 소수자의 인권을 공격하고 혐오를 조장했다. 반중, 혐중 선동은 국가의 외교와 경제 문제까지 악영향을 미쳤고, 사회적 혼란과 불신을 야기했다. 급기야 부정선거론 등 가짜뉴스에 경도되어 내란사태, 서부지법 폭동사태와 같은 극단적인 폭력도 불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들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와 가치를 왜곡하고 흔들면서 사회 전반을 퇴행시키는 광범위한 ‘백래시’(Backlash)를 감행했다.

처음 내란이 터지고 국민의 모든 기본권을 제약하는 ‘계엄 포고령’이 발표되었을 때 느꼈던 공포는 ‘실존의 위기’로부터 왔다. 나의 정체성이 송두리째 부정당하고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실존에 대한 ‘날 것 그대로’의 불안감이었다. 그렇다면 공동체는 무사할까. 실존의 위기가 높아지면 당연히 공동체는 약화된다. 개개인은 고립되고 연대는 끊어지며 공동체는 해체되고 권력에 의해 일방적이고 획일적으로 지배당하는 구조만 남는다. 이 섬뜩한 상황이 자칫하면 현실이 될 뻔한 사태가 윤석열이 일으킨 내란이었다. 내란은 실패했으나 그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내란 세력에 대한 남김 없는 사법적 처벌은 기본이거니와, 극우세력이 망가뜨려 놓은 민주공화정의 질서를 바로 세우고 훼손된 민주주의와 사회 공동체의 가치를 회복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빛의 혁명’은 마을로 이어져야

혐오와 불신을 조장하는 극우세력의 논리는 인권과 공동체 관련 정책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국민의 힘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서울시의회에서 학생인권조례안을 폐지시켰고, 보수 극우성향의 교육감이 있는 지역에서는 마을교육공동체 정책이 축소되거나 밀려났다. 일부 지자체는 마을 만들기 사업 관련 조례를 폐지하거나 예산을 축소함으로써 마을공동체 활동의 기반을 흔들고 주민 자치 역량을 약화시키며 역사를 퇴행시켰다. 윤석열 정권 3년 내내 ‘마을’은 몸살을 앓았고 주민 주도성은 무시당하기 일쑤였으며 마을활동가들은 위축됐다. 이제 내란의 종식과 함께 마을도 제자리를 찾을 때가 되었다.

시민들이 만든 ‘빛의 혁명’은 광장에서 공동체의 가치를 복원했다. 형형색색의 다양한 깃발들,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이들의 언어가 조화를 이루는 풍경, 동료 시민의 주장을 존중하고 경청하는 태도, 유머와 해악이 넘치는 즐겁고 재미있는 연대. 시민들은 자유롭게 정치적 열망을 표출하며 소수 엘리트에 의한 ‘과두 지배’를 종식하고 ‘정치로부터의 소외’를 극복하는 ‘주체성’을 스스로 획득했다. 나는 오색찬란하게 반짝이는 빛들이 상징하는 가치가 다양성, 포용성, 자주성, 공생성 등 마을의 가치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생각했다. 빛의 혁명은 주권자 시민의 삶이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장소인 ‘마을’로 이어져야 한다. 그 ‘마을’에는 아이도, 청년도, 외국인 노동자도, 성소수자도, (우리 주간보호센터 어르신처럼) 치매에 걸린 노인도 시민적 권리를 누리며 조화롭게 살 수 있어야 한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아이들, 학부모들, 주민들 어울려 마을의 ‘장암산’에 올랐다. 더 자주 모이고, 더 많이 작당해보자. 오늘이 즐겁고 재미있어야 미래도 기약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경험은 과거속에 박제되어 있지 않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원동력으로 현재에 살아있다. ⓒ필자 제공


"스스로 시대의 복판에 서기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만, 시대와 역사의 대하로 향하는 어느 가난한 골목에 서기를 주저해서도 안 되리라 믿습니다."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마을과 세상에 관해 고민할 때면 떠올리는 경구이다. 마을은 세상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세상이 엉망인데 마을만 천국일 수는 없다. 반대로 마을이 사라지고 지역이 무너지는 세상은 온전할 수 있을까. 마을은 시대의 복판에도 섰다가 가난한 골목길에도 서 있어야 한다. 시민들의 호혜와 협동으로 만들어가는 마을은 세상을 바꾸는 무기이자, 바뀌는 세상의 바로미터이다.

자, 그래서 질문은 이것이다. ‘빛의 혁명’ 이후의 마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예산을 권력인 양 착각하고 지원과 갑질의 경계를 모호하게 넘나들며 주민 주도성을 저해하는 행정의 관행적이고 일방적인 태도는 사라져야 한다. 마을에서부터 주권자가 주권자답게 대우받는 생활정치, 마을자치가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정비해야 할 것들, 새롭게 만들어야 할 것들을 정리하고 정책에 반영하는 현장중심적 접근이 필요하다. 6월 3일 이후 새롭게 등장할 ‘대한민국’에서 마을의 위대한 비상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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