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고위급 회담을 갖고 상대국에 부과한 관세를 90일간 각각 115%포인트 내리기로 합의했다. 미국이 중국에 부과한 145%의 관세율을 30%로 내리고, 중국이 이에 호응해 125%에서 10%로 내린 결과다. 물론 조정된 관세도 작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양국이 상호 무역을 사실상 중단하는 수준으로 관세를 부과했다가 이를 내렸으니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발 관세전쟁은 미국에 이익만 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 중국과의 협상을 개시한 것은 자국의 마트가 텅텅 빌 정도로 중국산 상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역을 금지하는 건 미국 시민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로 돌아온다. 다만 이번에 한발 물러섰다고 해서 트럼프의 전략이 바뀌었다고 보긴 힘들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미중협상을 '제네바 메커니즘'이라고 부르면서 "크고, 아름다운 경제 리밸런싱(rebalancing)"을 거론했다. 미국내 제조업 생산력을 복구하겠다는 목표는 여전하다는 의미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중국 협상과는 별도로 한국과 일본, EU 등 자신의 영향력 하에 있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더욱 가혹하게 나올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미국이 자국의 제조업 역량을 강화하자면 경쟁적 위치에 있는 중국을 직접 압박하는 것보다 안보적 이익을 제공해왔던 '동맹'의 손목을 비트는 게 더 쉬울 수 있다. 베선트 장관은 반도체와 의약품을 예로 들면서 "미국은 이러한 산업들을 본국으로 데려올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급하게 주고받기식 거래를 추구하는 건 패착이 될 수 있다. 이번 주에 예정된 한미간 2차 통상협상에서 특정 품목을 내주고, 특정 산업을 보호하는 식으로 대응한다면 실익은 실익대로 놓치고, 국내 이해관계자간 갈등도 높이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미 미국은 "한국은 정부 교체기에 있으나 선거가 본격화되기 전에 매우 좋은 제안을 갖고 왔다"고 자신감을 보인다.
기왕에 대선을 앞두고 있으니 우리 정부는 최대한 협상을 늦출 명분이 있다. 다른 주요국의 협상 결과를 지켜보면서 그 중 가장 나은 결과를 원용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세계 경제의 다극화라는 거대한 흐름에 맞게 경제 체질을 바꾸겠다는 구상 하에 미국과의 협상을 조절하는 시야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