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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삶으로 안내하는 재즈, 김민주 작가의 ‘재즈가 너에게’

“우리는 모두 삶이라는 무대 위의 즉흥연주자”

김민주 작가의 ‘재즈가 너에게’ ⓒ김민주 작가 인스타그램

음악을 듣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이어폰으로 듣기도 하고, 근사한 오디오 시스템으로 들을 수도 있다. 오래 좋아해 온 음악을 반복해서 듣거나,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듣고, 라이브 콘서트에 가서 듣는 방법도 있다. 음악을 들을 때 가사에 집중하는 이가 있고, 멜로디에 귀를 기울이거나 보컬리스트와 연주자의 음색에 빠져드는 경우도 흔하다. 음악 마니아들은 사운드에 천착하기도 한다. 뮤직비디오를 즐길 수도 있다.

작가인 김민주는 다른 방법을 제안한다. 음반의 사연을 알고 듣는 것이다. 삶을 되새기며 듣는 것이다. 재즈 전문가로 2022년 ‘재즈의 계절’을 펴낸 김민주는 최근 두 번째 책 ‘재즈가 너에게’를 내놓았다. 이 책은 김민주가 띄운 12편의 편지로 채워져 있다. 김민주는 일 년 12달의 흐름에 맞춰 독자들에게 편지를 쓴다. 한 해의 흐름과 계절을 따라 쓴 편지는 읽는 이의 삶을 응원하며 재즈 음반을 권한다. 그 유명한 키스 자렛의 [더 쾰른 콘서트] 음반으로 시작한 편지는 엘라 피츠제럴드, 스탄 게츠와 케니 베런, 메리 루 윌리엄스와 세실 테일러, 더 퀸텟, 빌 에반스 트리오의 음반과 버트 스턴의 영화를 거친다. 그리곤 칼라 블레이를 호출한 다음,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을 위한 상파울루 트리뷰트 콘서트로 나아간다. 브랜포드 마살리스의 샌프란시스코 콘서트, 델로니어스 몽크와 존 콜트레인의 뉴욕 콘서트, 마일스 데이브스 퀸텟의 시카고 클럽 공연 실황 음반으로 마침표를 찍는 긴 여정이다.

재즈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이들 모두 재즈의 거장이며, 대부분 그들의 대표작을 엄선했다는 사실을 금세 알아차릴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분명 들어보았거나 반드시 들어봐야 할 명반들이 대부분이다. 김민주는 이 음반들을 추천하면서 이 음반들이 재즈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하고, 어떤 가치가 있는지만 해설하거나 비평하지 않는다. 음악에 대한 해설과 비평을 생략하진 않지만, 김민주는 그보다 당시 음반을 만든 음악가가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 그가 어떤 고민과 노력을 해서 음반을 만들어냈는지를 담백하게 소개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 장의 명반은 멀리서 빛나는 북극성이 아니라 내 삶으로 밀려오는 물결이 된다. 예술 작품은 예술가가 살아온 과정의 연속이며, 그가 쏟아부은 피땀 눈물의 결정체임을 알고 있는 작가 김민주는 거장이나 명반이라는 이름으로 독자를 주눅 들게 할 생각이 없다. 누구나 애쓰고 있는 세상에서, 김민주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우리는 모두 삶이라는 무대 위의 즉흥연주자”임을 존중하는 김민주는 한 장의 재즈 음반이 ‘너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김민주는 음반마다 깃들어 있는 사연들을 소개하며 음악이 끝난 뒤에도 되새겨볼 이야기를 짧게만 남겨둔다. 가령 이런 문장들이다. “우리는 앞에 놓인 불리한 조건들을 너무 많이 의식하는 건 아닐까요. 도구가 완벽하지 않아서, 몸이 피곤해서, 상황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하지만 비 내리는 겨울밤, 키스 자렛이 쾰른에서 들려준 연주와 그 뒷이야기는 우리에게 다른 진실을 가르쳐 준다고 생각해요. 진짜 문제는 우리가 의식하는 그 대상에 있지 않다고. 오히려 그 제약들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자세만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이에요.”

열두 편의 이야기가 울림을 만들어내는 이유는 작가 김민주가 훈계하거나 충고하려 하지 않고 다정하게 말을 건네기 때문이다. 한 인간인 음악가의 삶을 통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음악을 빌려 속삭이기 때문이다. 김민주는 매번 성공할 리 없고, 늘 영광뿐일 리 없는 삶을 따스하게 보듬으며 그 가운데에서 삶의 진실을 찾아낸다. 어떤 순간도 헛되지 않고, 어떤 삶도 무의미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음악가의 삶과 작품은 이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 작품이 빛나는 것은 그 작품이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혼자 만드는 삶이 아니듯 혼자 완성하는 음악이 아니다.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으며 삶을 채워간다.

미리 말하자면 ‘재즈가 너에게’를 읽는다고 호사가의 호기심이 채워지진 않는다. 그보다는 사건 사고 속에서 전진하는 음악가를 응원하게 되고, 그들의 음악을 더 귀 기울여 듣게 된다. 그 음악을 듣는 순간을 더 소중하게 대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재즈가 좀 더 가까워진다. 김민주는 즉흥연주와 스윙, 혹은 비밥과 쿨 재즈, 퓨전재즈를 빌어 재즈를 알려주지 않는다. 그보다는 재즈 거장들이 남겨둔 수많은 음반과 이야기 가운데 일부를 찾아내 들려준다. 재즈에 대한 경계심을 허물면서 그들의 질문과 성취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디딤돌을 만드는 방식이다. 재즈를 설명하고 안내하는 책은 이 밖에도 많지만 ‘재즈가 너에게’로 재즈 여행을 시작해도 좋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에서 건네는 이야기가 재즈의 전부는 아니지만 재즈 음악가와 전문가가 깨달은 통찰을 따라가면 길 잃을 일이 줄어든다. 이 봄 ‘재즈가 너에게’를 읽어야 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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