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올해 경제(GDP, 국내총생산)성장률이 0.8%에 그칠 것이라는 국책연구기관의 전망이 나왔다. '트럼프발' 통상 환경 악화와 내수 부진의 영향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4일 발표한 '2025년 상반기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8%로 예상했다. 오는 2026년 경제성장률에 대해서는 내수 회복을 전제하고 1.6%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KDI가 지난 2월에 내놓은 기존 전망치 1.6%에서 무려 절반인 0.8%p(포인트)를 하향 조정했다. 정부 기관이 0%대 성장률을 전망한 것은 처음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달 말 밝힌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 1%보다도 0.2%p 낮은 수준이다.
0%대 성장은 코로나19 영향을 받은 2020년 -0.7%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마이너스 성장'을 한 이후 처음이다. 한국이 1% 미만의 경제성장률을 보인 것은 지난 1998년 IMF 외환위기(-4.9%),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0.8%) 등 경제 위기 상황에서다.
KDI는 최근 경제 상황에 대해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로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더딘 회복속도를 보이고 있는 내수에 대해서는 "정국 불안에 따른 심리 위축이 지속되고 대외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가시적인 회복세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봤다.
구체적으로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은 1.1%로 낮은 증가율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총소비 증가율도 1.4%로 지난해(1.3%) 대비 0.1%p 늘어나는 데 그칠 것으로 보인다.
설비투자 증가율의 경우, 대외 불확실성에도 반도체 산업 호조로 지난해(1.6%) 대비 0.1%p 증가한 1.7%로, 만한 증가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건설투자는 -4.2%로 지난해(-3.0%)보다 감소 폭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건설투자 증가율 전망치는 기존 전망(-1.2%) 대비 3%p 대폭 하향 조정했다.
수출의 경우, 미국 관세 인상에 따른 교역 위축으로 둔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상품수출 증가율은 -0.4%로 역성장할 것으로 봤다. 지난해 6.3% 증가율을 기록한 것에 비해 크게 줄어든 수준이다. 이에 따라 총수출 증가율도 0.3% 성장하는 데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경상수지 흑자 폭은 지난해 990억달러에서 올해 920억달러로 소폭 축소될 것으로 전망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7%로 지난해 2.3% 대비 0.6%p 낮아질 것으로 봤다. 취업자 수 증가 폭은 9만명으로 지난해 16만명 증가한 것에 비해 상당히 축소될 것으로 전망했다.
KDI는 이번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대폭 하향 조정한 배경에는 미국의 관세 인상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전망치 하향 배경 중 가장 영향이 큰 것은 미국의 관세 인상"이라며 "관세정책이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내수에도 부정적으로 파급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정국 불안도 하향 조정에 영향을 미쳤다. 정 실장은 "또 하나는 정국 불안 해소 지연과 관세인상으로 소비자 심리 회복이 생각보다 더딘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 실장은 "0.8%p의 전망치 하향에는 대외 충격 영향이 대략 0.5%p, 대내 충격이 0.3%p 정도로 산출됐다"고 덧붙였다.
KDI는 이번 전망에서 상호관세 유예가 지속되는 시나리오를 전제로 전망했다. 향후 관세 협상 여부에 따라 상호관세가 높게 책정될 경우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추가 하향될 가능성도 있다.
김지연 KDI 전망총괄은 "상호관세 유예가 종료되거나 우리의 주력 수출품인 전자제품에 높은 관세가 부과될 경우, 수출 부진이 심화할 수 있다"면서 반면 "협상이 원만히 타결되면서 수출 여건이 빠르게 개선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KDI는 올해 경기 둔화 위기에 대응해 통화정책에 대해서는 완화적인 기조로 운영할 것을 제안했다. 김 전망총괄은 "올해 경기를 고려했을 때 추가적인 금리인하가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내수 진작을 위한 재정지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김 전망총괄은 "최근 큰 폭의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지속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재정건전성 유지를 위해 추가적인 재정 지출에는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추가 추가경정(추경)예산에 대해서도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김 전망총괄은 "경기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에 더 안 좋은 방향으로 악화할 경우 추경이 필요할 수 있지만, 이미 추경을 1회 했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지켜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