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화력서 홀로 일하다 숨진 하청노동자, 사실상 안전 관리 감독자도 없었다”

대책위 “고인이 임의 작업? 대부분의 작업이 작업오더 없이 관행적으로 진행돼”

5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충현 사망사고 1차조사발표 기자간담회에서 고인의 유족이 조사 자료를 보고 있다. 2025.06.05 ⓒ민중의소리

지난 2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일하다 기계에 끼어 숨진 고 김충현 씨가 실질적인 안전 관리 책임자도 없이 일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조직도상 소장과 과장이 있었지만 고인의 업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했고, 작업 전 안전회의(TBM) 역시 고인에게만 맡겨져 형식적인 결재만 이뤄졌던 것으로 보인다. 사망 원인을 조사한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대책위원회(대책위)’는 이번 사고의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외주화와 안전 시스템 공백이 만든 사고”라고 진단했다.

대책위는 이날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까지 파악한 김 씨의 사고 원인에 대해 발표했다.

대책위 최진일 상황실장은 김 씨의 작업 환경과 관련해 “누구도 안전 관리는 하지 않았다는 게 정답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 씨는 태안화력발전소의 하청업체인 한전KPS가 재하청을 준 외주업체(한국파워O&M)에 소속된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2016년부터 태안화력 내에 있는 한전KPS 정비동 공작실에서 공작기계 담당자로 근무했는데, 발전소 내에 필요한 부품들을 공작기계로 가공해 만드는 일을 담당했다. 사고 당일에도 공작물을 가공하기 위해 기계를 작동시키자마자 왼손이 빨려 들어가 결국 목숨을 잃었다.

대책위가 확보한 한국파워O&M 조직도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대책위

대책위가 확보한 한국파워O&M의 조직도를 보면, 김 씨는 1과 ‘선반’ 담당으로 소속돼 있지만, 공작실에서 홀로 일했다고 한다. 1과에는 10명의 김 씨를 비롯해 10명의 노동자가 소속돼 있는데, 대부분이 김 씨의 업무와는 무관한 ‘기계’ 담당이며, ‘선반’ 담당은 김 씨 혼자였다.

최 실장은 “관리감독자로 지정된 1과 과장 역시 이분의 작업에 대해 알지 못했고, 관리도 전혀 하지 못했다. 만날 일도 없고, 올라오는 서류에 사인하는 정도”라며 “실질적으로 재해자의 관리는 (업체의 가장 윗선인) 소장이 하게 돼 있는데, 소장 역시 기계와 관련된 전문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고, 작업장이 어떻게 운영되고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최 실장은 “2인 1조가 원칙이 아닌가 생각하겠지만, 이 작업 자체가 TO가 1명이다. 작업자도 한 명이고, 실질적인 관리 감독자도 없는 상태”라며 “(사측에서는) 일을 던져주고 중간에 와서 관리하는 건 전혀 없다는 게 현장의 증언”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현장에서 안전 사항 등을 논의하는 ‘TBM’ 역시 제 기능을 할 수 없었다. 혼자 작업하기 때문에 회의 역시 홀로 진행해 서류를 작성했고, 결재를 받아야 할 책임자들은 현장 안전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서명만 하고 넘어간 것으로 대책위는 보고 있다. TBM 문서 상단에 관리자가 서명하는 곳에는 해당 작업을 의뢰한 한전KPS 담당자가 서명했다고 한다.

사고 직후 한전KPS는 김 씨의 작업이 “당일 작업 계획에 포함돼 있지 않은 업무를 하던 중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김 씨에게 사고의 책임을 떠넘겼지만, 사실상 한전KPS 담당자가 사고가 발생한 작업의 TBM 문서에 서명했기 때문에 책임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게 대책위의 지적이다. 실제 해당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 역시 ‘김 씨가 한전KPS 측의 요청을 받고 해당 부품을 만들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씨의 업무에 대한 안전 관리가 사각지대에 놓인 사이, 원청인 한국KPS의 부당한 작업 의뢰는 계속 이어졌다고 한다. 한국KPS는 정비 작업 중 일부를 김 씨의 업체에 도급을 줬지만, 한국KPS가 담당하는 작업도 김 씨에게 무분별하게 내려왔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계약상 매뉴얼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 반복됐다.

대책위에 따르면, 계약상 절차는 한전KPS가 기계가공에 대한 작업 의뢰를 하면, 한국파워O&M이 작업의뢰를 접수하고 이를 검토 및 조정한 뒤, 김 씨가 작업을 수행하는 식이다. 다만, 긴급 작업일 경우 한전KPS가 직접 김 씨에게 작업 의뢰를 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이 같은 긴급 작업이 빈번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최 실장은 “김용균 때와 똑같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했다, 시키지 않은 일을 했다는 게 것”이라며 “현장 노동자가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나. 작업 오더가 없었다는 것으로 임의 작업이라고 주장하지만, 대부분의 작업이 작업 오더와 서류가 없이 진행됐다. 실제로 정상적인 작업 절차를 지키지 않았던 게 이미 관행이 됐고, 이 책임을 재해자에게 떠넘기려 했다”고 지적했다.

5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충현 사망사고 1차조사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최진일 대책위 상황실장이 사고조사 발표를 하고 있다.. 2025.06.05 ⓒ민중의소리

김 씨의 형도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해 사고 조사 발표를 확인했다. 김 씨의 유가족은 ▲회사(한국서부발전, 한전KPS, 한국파워O&M)의 책임 인정과 사과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위한 유족, 대책위, 노조가 참여한 진상조사위 구성 ▲실질적인 책임자 처벌 ▲정당한 배·보상을 요구했다. 대책위 역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 ▲현장 인력 확충 및 안전 대책 ▲발전소 폐쇄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대책위는 오는 6일 오후 3시 서울역 인근에서 고인을 추모하는 추모제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후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대책 수립 등을 요구하며 대통령실까지 행진할 예정이다.

김 씨의 사무실 책상 위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주장하던 기본소득을 다룬 책 ‘이재명과 기본소득’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당원으로 알려진 김 씨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된 지난해 12월 14일 당원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국회 앞에서 열린 ‘탄핵 집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탄핵 가결 후 오랜 여정의 고개 하나를 넘었다”는 소회를 적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기계에 끼어 숨진 고 김충현 씨.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지난해 12월 14일, 민주당 당원들과 함께 국회 앞에서 열린 탄핵 집회에 참여했다. ⓒ고 김충현 씨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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