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이 7일 페이스북에 올린 대통령 한남동 관저 내부 사진. 정자와 수영장이 있다. ⓒ박홍근 의원 페이스북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이틀차인 5일부터 윤석열 전 대통령이 사용했던 '한남동 관저'에 머물고 있다. 이 관저는 윤 전 대통령 부부가 사용할 때부터 논란이 끊이질 않았지만, 보안 및 경호 문제로 외부에 노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정권교체로 인해 상황이 달라졌다. 의문투성이었던 관저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처음 접한 한남동 관저는 대통령실 못지 않게 무덤같은 곳이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지난 6일 기자들과 만나 "베개조차 없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윤석열 정부가 새로 취임하는 대통령에 대한 배려도 없이 아무런 준비도 해놓지 않고 퇴장해버린 셈이다. 대통령실 역시 컴퓨터는커녕 종이와 펜조차도 없고 인수인계를 해줄 직원도 남아있지 않아, 이 대통령은 "꼭 무덤같다"고 비판한 바 있다.
마치 범죄의 증거를 인멸하는 듯 모든 것을 싹 치우고 나간 윤석열 정부이지만, 한남동 관저에는 미처 치우지 못한 게 남아있었다. 그동안 논란이 됐던 '정자'와 '수영장' 등이다.
이 대통령은 7일 저녁 민주당 지도부를 한남동 관저로 초청해 만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선 해결해야 될 민생 현안 과제들에 관한 진지한 대화가 오고간 가운데,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 당시 야당이었던 시절 집중적으로 다룬 관저에 관한 여러가지 의혹도 화두로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가 됐던 관저의 모습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이다.
한남동 관저는 윤 전 대통령이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를 용산 국방부 건물로 이전하면서 인근에 새롭게 마련한 거처다. 이곳은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사용되고 있던 건물인데, 윤 전 대통령 취임 후 리모델링 과정을 거쳐 대통령 관저로 사용됐다. 보안과 경호 등의 우려가 제기됐지만 밀어붙인 것이었다. 게다가 예산이 모두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사에 착수하면서 거액의 예비비를 끌어다가 사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윤 전 대통령 부부가 입주한 이후로 추가적인 비용이 계속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관저 내 정자도 그중 하나이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 의원들이 만찬 후 공개한 사진 속에는 정자 하나가 보인다. 이는 2023년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에 출품됐던 미술작품인데, 윤 전 대통령 부인인 김건희 여사의 호평 이후 일부 보완 공사를 거쳐 한옥 정자 형태로 한남동 관저에 설치됐다. 이 과정에서 총 8천만 원이 소요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정자는 등기부등본에는 기재돼 있지 않은 미등기 상태라 향후 소유권 분쟁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게다가 정자를 시공한 업체가 이후 법무부가 발주한 254억 원 규모의 서울출입국 외국인청 신축공사를 따내면서 특혜 의혹이 일기도 했다. 당시 법무부는 "어떠한 특혜도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이 7일 서울 한남동 관저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를 초청해 만찬을 가졌다. 이들 뒤로 문제의 정자가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 페이스북
'개 수영장' 의혹이 제기됐던 관저 내 수영장의 모습도 대중에 공개됐다. 만찬 후 박홍근 의원이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하면서다. 사진을 보면 수영장은 파란색 타일로 마감된 직사각형 시설물로, 단차를 두어 점차 깊어지는 구조로 돼있다. 여기에는 물이 가득 채워져 있어 한 눈에 봐도 수영장처럼 보인다. 하지만 크기는 가로 5m가량으로 수영을 하기에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물 높이도 가장 깊은 곳이 성인 무릎 높이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파면 선고 후 일주일간 200t이 넘는 물을 사용해 논란이 인 가운데 윤건영 민주당 의원이 '관저 내 수영장'을 원인으로 지목한 바 있다. 앞서 윤 의원은 지난 4월 YTN라디오에 출연해 "수영장은 윤석열 정부가 관저 이전을 하면서 새로 설치했다고 한다"며 "들리는 말로는 수영장이 관상용 등 다른 용도로 사용됐다고 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수영장의 크기와 모양 등으로 미루어 개를 위한 수영장일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실제 윤 전 대통령과 김 여사는 개 6마리, 고양이 5마리를 키우고 있다. 앞서 이들은 나랏돈으로 수백만원짜리 캣타워(고양이 놀이시설)를 구입한 사실도 드러나 횡령 의혹에 휩싸인 바 있다.
이밖에도 관저를 둘러싼 여러 의혹의 실체가 앞으로 밝혀질지 주목된다. 최근 감사원도 윤석열 정부 당시 한 번도 하지 못했던 '관저 현장 조사'를 벌이는 등 고강도 감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감사원이 한남동 관저와 관련한 각종 의혹들에 대해 감사 결과를 내놨지만, 국회가 부실 감사라며 재감사를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감사원이 조사를 벌이는 사안 중 하나는 관저 리모델링 과정에서 나온 특혜 의혹이다. 김 여사가 대표로 있던 코바나컨텐츠의 전시 후원 업체들이 수의계약으로 관저 공사를 수주하면서 불거진 의혹이다. 한남동 관저는 리모델링 과정에서 증축됐는데, 인테리어업체인 '21그램'이 규정상 증축 공사에 참여할 수 없는데도 사실상 공사 책임업체로 선정되면서 의구심이 커졌다. 관저 내 '스크린 골프장' 설치 의혹도 있다. 당시 공사에 참여한 현대건설 측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도 이미 이뤄진 걸로 알려졌다.
한편 이 대통령은 한남동 관저를 청와대 보수가 끝날 때까지만 임시로 사용할 예정이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지난 5일 브리핑에서 "한남동 관저는 청와대 보수를 신속히 마무리하고 대통령실 이전까지 사용한다"며 "한남동 관저가 아닌 제3의 공간을 사용하게 될 경우 해당 기관에 미치는 영향과 이사에 따른 세금 낭비를 감안한 결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