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 보일 감독이 영화 '28년 후'를 들고 왔다. '달리는' 좀비로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영화 '28일 후' 개봉 이후 22년 만이다. '28일 후'는 좀비가 달린다는 설정으로 좀비물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 버렸다.
이번에 개봉한 영화 '28년 후'는 그 기대감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 이번엔 그가 어떤 세계관을 확장시켰을지 궁금증을 모았다.
눈여겨 볼 점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좀비를 죽은 존재가 아니라 인간처럼 살아 있는 존재로 본다는 점이다. 28년간 좀비들도 생존을 위해서 다양한 형태로 진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좀비들은 땅에서 느리게 기어 다니며 벌레를 잡아먹기도 하고, 사냥을 위해 무리 생활을 하고, 리더를 만들기도 한다.
또 다른 점은 10대 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이다. 영화 초반, 아버지 제이미와 아들 스파이크가 좀비 사냥을 나서면서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선사했던 것과 달리, 중반부턴 스파이크가 아픈 엄마를 구하기 위해 의사 켈슨을 찾아 나서는 모습이 본격적으로 그려진다.
영화 '28년 후' ⓒ영화 '28년 후' 스틸컷
아직 경험이 적은 스파이크는 아슬아슬하게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게 된다. 일각에선 스파이크의 본격적인 행보가 시작되는 지점부터 '김이 빠진다'는 평가도 있다. 영화 초반과 달리 소년의 성장담에 집중하다 보니, 좀비 영화의 특유의 긴장감과 빠른 화면 구성이 줄어든 느낌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28년 후'라는 영화가 '28일 후'를 잇는 속편이자 새로운 3부작의 시작이 되는 영화라는 점에서 스파이크의 성장담은 눈여겨 볼 만한다. 오히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좀비 영화의 경로대로 갔다면, '28년 후'는 뻔한 좀비 영화가 됐을 것 같다. 좀비 세계 속에서 소년의 성장이라는 눈부시고 새로운 경로를 만나는 경험을 영화는 제공했다.
영화 후반을 향할 수록 스파이크에게 변화가 감지된다. 스파이크는 아버지의 세계이자 고립된 섬 홀리 아일랜드에서 벗어나 진정한 죽음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죽은 자들이 이룬 뼈의 사원을 배경으로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와 '메멘토 아모리스(사랑을 기억하라)는 메시지를 가슴에 새긴다. 이러한 장면들이 느리고 고고하게, 대자연과 뼈의 사원을 중심으로 아름답게 그려진다. 대니 보일의 '28년 후'엔 기괴함과 고고한 아름다움이 치열하게 공존한다.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느끼는 것 같지만, 다양한 형태로 기괴하게 변해버린 감염자들 사이에서 만나는 미래 세대의 생명력은 또 다른 아슬아슬함과 긴장감을 안겨준다. 스파이크와 엄마 아일린이 구한 새 생명도 그렇고, 스파이크가 만나게 될 사람들의 정체도 긴장감을 유발한다. 속편이 기대되는 이유다.
지난 18일 진행된 화상 기자간담회에서 대니 보일 감독은 각본을 쓴 알렉스 가랜드에게 자신이 했던 질문을 기자들에게 이야기 해줬다. 그는 "가랜드에게 첫 번째 영화가 무엇에 관한 영화냐 정의 해달라고 하니까 가족의 본질에 대한 영화라고 했다"면서 "두 번째 영화는 악의 본질이라고 했다. 첫 번째 영화와 두 번째 영화를 비교했을 때 아주 다른 영화가 될 것이다. 훨씬 위험한 영화가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28년 후'는 무시무시하고 위험한 영화의 서막에 불과하다는 점을 언급한 것이다. 두 번째 영화 마지막과 세 번째 영화에선 '28일 후'에서 주연을 맡았던 킬리언 머피가 등장한다고 하니 더욱 기대를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