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어느 작은 아파트에 불이 나, 자고 있던 어린 자매가 숨졌다는 기사를 보았다. 열 살 언니는 현장에서, 일곱 살 동생은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던 중에. 엄마 아빠는 새벽에 청소일을 나가고 없었다. 1990년 서울, 지하 단칸셋방 화재로 다섯 살, 세 살 남매가 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질식사한 일, 가슴 아픈 노래가 생각났다. 부모는 어린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밖으로 자물쇠를 걸고 일하러 갔다.
젊은 아버지는 새벽에 일 나가고/어머니도 돈 벌러 파출부 나가고/지하실 단칸방엔 어린 우리 둘이서/아침 햇살 드는 높은 창문 아래 앉아/방문은 밖으로 자물쇠 잠겨있고/윗목에는 싸늘한 밥상과 요강이/엄마, 아빠가 돌아올 밤까지/우린 심심해도 할 게 없었네/(중략)/그때, 엄마, 아빠가 거기에 함께만 있었다면/아니야, 우리가 어느 날 도망치듯 빠져나온 시골의 고향 마을에서도/우리 네 식구 단란하게 살아갈 수만 있었다면/아니, 여기가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축복을 내리는 그런 나라였다면/아니, 여기가 엄마, 아빠도 주인인 그런 세상이었다면…… -가수 정태춘이 기록한 노래 「우리들의 죽음」
20년 전 한국에 온 20대 태국인 여성 노동자 A씨는 돼지고기 가공공장에서 다짐육을 만들다가 고기 믹서기에 왼쪽 손목 아래가 절단되었다. 2년간 안전교육도, 안전 장비도 없었다. 산업안전보건규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포천의 어느 사출 공장에서 40대 필리핀 여성 노동자 마리씨의 손목과 팔꿈치 사이가 절단되었다. 일한 지 한 달만이었다. 위험한 작업이었지만, 안전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 이주노동자의 체류, 고용을 연장하는 권한은 전적으로 고용주에게 있다. 고용주는 그들의 목숨이다. 위험하고 부당한 지시를 그들은 거부할 수 없다.
2023년, 경기도 화성 어린이집에서 생후 9개월 된 아기가 질식사했다. 베트남에서 온 스물다섯 살 엄마 보티늉과 서른세 살 아빠 짠안동은 결혼해 아들을 낳았다. 한국에서 행복하게 잘살아보자고, 아기의 이름을 한국 이름 ‘동민’이라 지었다. 엄마 아빠가 생계를 위해 일하는 동안 아기는 어린이집에 맡겨졌다. 작고 작은 아기는 일주일 뒤에 질식사했다. ‘아이를 억지로 재우기 위해서 엎드린 자세로 눕힌 뒤 이불과 방석을…… 14분 동안 몸으로 눌러…… 숨지게 한…… 어린이집 원장 김모씨는……’
어린이집에 간 지 겨우 닷새째/이불을 씌우고 베개를 올린 거대한 그림자 아래/너의 발버둥과 파닥거림이 이어지던 14분/네 어미 보티늉은 네가 누운 작은 관에 털신과 장갑을 함께 넣었단다/(중략)/나는 어쩌자고 너의 뺨에 손을 댔을까/얼음장 같아 얼른 손을 뗐지만/손바닥엔 화인이 찍히고 말았구나 -시인 김선향이 기록한 시 「80cm」
2023년 여름, 오송 동양파라곤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베트남 이주노동자 두 명이 추락해 사망했다. 응웬 두안 썬, 응웬 응옥 꽝. 사고 후 사측은 사고 경위에 대한 설명도 사과도 없이 법률대리인을 앞세워 합의를 종용했다.
귀 회사에서 일할 기회를 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중략)/50cm 높이에서 추락하는 찰나의 시간을 저는 헤아릴 수 없었어요/저는 혼자 추락하지 않았어요/동료인 응웬 응옥 꽝과 같이/대형 거푸집과 같이 떨어졌죠/(중략)/오늘 죽은 우리 두 사람이 한국 사람이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일까요/보상금이 몇 배가 적게 들겠죠/가족이 없으니 성가신 일도 없겠죠/제 목숨 값이 얼마나 될지 저도 너무너무 궁금해요/과연 건장한 30대 베트남 사내의 몸값은 얼마일까요 -김선향 시인이 기록한 시, 「나는 얼마입니까」
동민이 엄마 보티늉과 동양파라곤 이주노동자 응웬 두안 썬은 고양시 국제법률경영대학원, 김선향 시인의 제자였다. 동민이가 세상을 떴을 때, 응웬 두안 썬이 추락해 사망했을 때, 시인은 빈소라도 마련하기 위해 화성시 공무원, 동양 건설 사측과 싸웠다. 싸울 줄도 모르는 가녀린 시인이 싸워야 했고, 이주노동자들과 변호사와 시민들이 연대했다.
아이고, 우린 동네 할매들여/(중략)/사연인즉 숙곡리는 함백산 추모공원이 있는/화성시의 한 마을/뉴스를 보시다가 아기 잃은 부부가 너무 가엾어서/달려오셨다고 한다/생면부지의 베트남 부부에게/빳빳하고 깨끗한 오만 원권 세 장을 주신다/나는 흰 봉투에/숙곡리 할머님들 세 분이라고/처음 글을 배우는 사람처럼/또박또박 쓴다 -김선향 시인의 시 「숙곡리 할매들」
하루를 꼬박, 밥 먹는 일도 잊고 시인의 시집을 읽는다. 시에 얽힌 기사를 찾아본다. 슬픔을 마주한다. ‘붙잡히지는 마! 죽지도 마! 어서 도망쳐! -시, 「후문들」’ 그가 기록한 것들. 화성 함백산 추모공원, 80cm 관 속의 아기, 흰 포대기로 싼 주검을 부둥켜안고 서 있는 젊은 아버지, 피에타, 시인 선생님의 마지막 문자메시지를 읽지 못하고 추락한 베트남 학생 응웬 두안 썬, 인도 불가촉천민, 낙살 게릴라, 강간당한 만신창이 몸으로 적의 앞으로 걸어간 드라우파티, 돕디 메즈헨, 사랑을 노래하는 시를 썼다고 남편과 가족에게 맞아 죽은 아프간 시인 나디아 안주만.
금은방 계단참에 종일 앉아 있는 금촌역 여자. 바지락조개 자루를 밀물에 떠내려 보내고 하루를 허탕 친 당진 언니. 때 밀어 ‘때돈’ 버는 언니들. 더러운 외투를 입고 구걸하는 사람, 앞을 볼 수 없는, 라일락 아래 홈리스 사내, 엄마 잃은 새끼 멧돼지, 새끼들을 높은 곳에 물어 옮기는 갸륵한 것들…… 구명조끼를 벗어 준 언니 같은 선생님……
먼저 나가!/빨리!/따라서 갈게/(중략)/제 이름은 선별이에요, 먼저 뜬 별이래요/그럼 초원에 가장 먼저 뜬 별이겠네?/(중략)/저는 선생님의 시간까지 살아낼게요/언니 같은 나의 선생님,/안녕! -시, 「김초원 선생님」
어쩌자고 그들의 뺨에 손을 댔을까, 시인은.
그러나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앞에서 만난 응웬 항씨, 남편이 아파트 신축공사장에서 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애당초 만날 일이 없었던 그녀는 휴대폰 번역기를 돌려 내민다. “너의 손은 매우 부드럽고 따뜻하다. 선생님 대신 언니라고 불러도 되나요?” 손바닥에 화인이 찍힌 시인은 눈 오는 밤, 서서 자는 늙은 말, 죽음에 임박한 갈색 말을 부둥켜안고 온몸으로 함께 눈을 맞는다.
‘우리는 무릎을 꿇을 수도 누울 수도 없다 휩쓸리지 않도록 서로 부둥켜안는다 온몸으로 눈을 맞는다’ -시집 『어쩌자고 너의 뺨에 손을 댔을까』 수록작, 「말과 함께 눈을」
김선향 시인
2005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여자의 정면』, 『F등급 영화』, 『어쩌다가 너의 뺨에 손을 댔을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