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가 ‘트럼프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다. 트럼프가 소신대로 뭔가를 하려 하면 경제 지표가 나빠진다. 반대로 트럼프가 자신의 소신을 보류하면 경제 지표가 되레 반등한다.
트럼프 취임 후 반년 동안 미국 경제가 받은 성적표는 낙제점에 가깝다. 26일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5%였다. 이는 지난달 발표된 1분기 성장률 잠정치(-0.2%)보다 0.3%포인트나 떨어진 수치다. 미국 경제가 분기 기준으로 역성장을 기록한 것은 2022년 1분기(-1.0%) 이후 3년 만의 일이다.
달러 가치가 급락하면서 기축통화로서의 권위도 떨어지고 있다. 미국 국채를 팔려는 나라들이 늘어나면서 채권값은 떨어지고 금리가 오른다. 약달러와 고금리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미국 경제에 대한 국제 사회의 신뢰도가 추락 중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트럼프 집권 이후 미국 경제의 위상이 말이 아니다.
흥미로운 점은 트럼프가 자기 고집을 버리면 그나마 경제 지표가 좀 나아진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관세 인상과 무역 보복 등 특유의 정책을 고집할 때 미국 증시는 급락했다. 트럼프가 취임한 지 100일 동안 S&P500지수는 7% 넘게 폭락하며 역대 대통령 취임 초반 기록으로는 41년 만에 최악의 수치를 보였다.
그런데 이후 트럼프가 관세를 유예하는 등 자기 고집을 버리면서 증시가 다시 반등을 시작했다. 지난주 목요일과 금요일 미국 증시는 이틀 동안 상승세를 보였는데 그 이유가 백악관이 다음 달 8일 만료되는 상호 관세 유예 시한을 더 연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었다. 트럼프가 고집을 부리면 경제가 나빠지고 트럼프가 고집을 꺾으면 시장이 반색한다.
트럼프는 약달러를 바탕으로 무역수지를 개선하면서, 동시에 미국의 국제적 위상은 더 높이겠다는 허황된 꿈을 꾸고 있다. ‘약한 달러를 가진 위대한 미국’은 네모난 동그라미처럼 애초부터 성립될 수 없는 명제다.
트럼프가 후보 시절 인기를 위해 아무 말이나 내뱉은 다음 지금 수습을 못 하는 형국인데 이것은 그가 얼마나 형편없는 지도자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트럼프가 정책 실패를 인정하거나 전환할 지도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 난국이 쉽게 풀리기 어려워 보인다. 지도자를 뽑는 일의 무게가 이처럼 무거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