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폭염 속 노동자 쓰러져도, 20분 휴식이 과도한 규제라니

지난해 한 건설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무더위 속에서 일하고 있다. (자료사진) ⓒ뉴스1

2~3년 전 여름, 무덥고 습한 날씨가 연일 뉴스의 메인을 장식하던 이맘때. 작은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지인의 목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무슨 일인지 물으니, 일하는 곳이 너무 더워 체온을 일시적으로 낮춰주는 넥쿨러를 사용하다가 터지면서 화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당시 지인이 일한 곳에는 에어컨이 없고 대형 선풍기만 몇 대 있었는데, 숨 막히는 더위를 임시방편으로 해결하려다 생긴 재해였다. 다행히 이듬해 에어컨이 일부 설치됐다지만, 넓디 넓은 물류센터의 찜통 같은 열기를 낮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루 전 서울에서 올해 첫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는 속보에 그의 화상 입은 목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매해 여름마다 정치권에서는 폭염 취약 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보호할 대책을 논의한다. 7~8월 반짝 주목받다가, 무더위가 가시면 또 수면 아래로 가라앉기를 반복한 게 수년째다. 그 사이 대형마트에서 카트 정리를 하던 노동자가, 에어컨을 설치 공사를 하던 노동자가 폭염 속에서 목숨을 잃는 일이 반복됐지만, 정부와 정치권의 대책 마련은 더디기만 했다.

다행히 지난해 10월 국회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상 사업주의 보호조치 의무에 ‘폭염·한파에 장시간 작업함에 따라 발생하는 건강 장해’를 명시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그동안 정부 대책이 권고 사항에 불과해 실효성이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법 개정이었다.

사업주가 해야 할 구체적인 조치는 고용노동부령(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안전보건규칙)으로 규정하기로 했지만, 여기서 제동이 걸렸다. 당초 정부가 입법 예고한 안전보건규칙 개정안에 담긴 ‘체감 온도 33℃ 이상(폭염 특보 발령 기준) 작업 장소에서 폭염 작업을 할 경우 매 2시간 이내 20분 이상의 휴게시간을 부여하도록 한다’는 의무 조항에 대해, 규제개혁위원회가 “영세 사업장 등에 과도한 부담”을 이유로 철회를 권고하면서다. 당초 국회는 폭염 대책으로 작업중지권 보장 등 보다 강화된 대책을 논의했지만, 윤석열 정부의 반대로 휴식 시간 규정을 강화하는 것으로 조정한 것이었다. 그런데 규제개혁위는 이마저도 무산시킨 것이다.

두 차례 진행된 규제개혁위 회의에서는 노동자의 안전보다는 기업의 부담에 공감하는 위원들의 주장이 이어졌다. 노동부가 “1년 내내 있는 상시적인 부담이 아닌 8월 한 달간의 문제”, “50인 미만 사업장은 1년간 계도기간을 운영할 것”이라고 설득해 봤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규제개혁위는 ▲온도계 비치 ▲온열질환 증상 및 예방방법, 응급조치 요령에 대해 노동자에 고지 ▲체감온도 및 조치 사항 기록 ▲온열질환 발생 의심 시 지체없이 신고 ▲냉방 또는 통풍을 위한 장치 설치 ▲작업 시간대 조정 또는 이에 준하는 조치 ▲적절한 휴식시간의 부여 등 최소한의 의무에 대해서도 “사업장별로 단계적 적용 방안을 검토해 올 연말까지 보고하라”고 권고했다. 당초 안전보건규칙은 개정 산안법 시행에 맞춰 지난달 1일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노동부가 규제개혁위 철회 권고 조항을 재검토하고 재입법예고하기로 하면서 시간만 흐르고 있다.

폭염이 극심해 지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지만, 노동부는 여전히 규칙 개정에 나서지 않고 있다. 대신 노동부는 온열질환 예방 기본 수칙에 ‘20분 휴식’ 내용을 담아 지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강제력이 없어 실제 현장에서 이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제도를 통한 구체적인 예방 조치들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법 개정의 의미는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마침 이재명 대통령도 “생명, 안전을 지키는 규제야말로 당연히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고용노동부 장관 역시 첫 현장 노동자 출신이 임명되면서 노동부가 어느 때보다 노동자 권리 보호라는 제 역할을 다할 수 있을지 주목을 받는 시점이다. 더 이상 폭염이라는 재난 앞에 노동자들이 쓰러지지 않도록 노동부가 전향적인 제도 개선책을 내놓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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