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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가장 먼저 뽑은 올해의 음반, 밴드 반(baan) [neumann]

지루함도 상투성도 없이, 록의 새로운 가능성을 펼치다

밴드 반(baan) (neumann) ⓒ밴드 반

해마다 올해의 음반을 뽑아보는 습관이 있다. 연말에만 하는 건 아니다. 썩 괜찮은 음반이 나오면 혼자 정하는 버릇 같은 거다. 이 음반은 올해의 음반이라고 쓰기도 하고, 동료 평론가들의 의견을 물어보기도 한다. 지금껏 내가 뽑은 올해의 음반은 대부분 평론가들의 의견과 다르지 않아 이런저런 연말 결산에서 대동소이한 결과를 만들곤 했다.

2025년이 절반쯤 지난 지금, 내가 올해의 음반으로 꼽은 음반은 아직 단 한 장. 밴드 반(baan)의 [neumann]이다. 젊은 기타리스트 반재현이 결성한 밴드 반은 2022년 정규 1집 [to telescope]를 발표하며 데뷔했다. 반재현에 대해서나 밴드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다. 반재현은 2023년부터 밴드 미역수염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는 정보 정도가 고작이다. 밴드 캠프에 올려둔 “Doom but not boring. Screamo but not crying. Hardcore but not macho. Shoegaze but not sucks.” (지루하지 않은 둠, 울부짖지 않는 스크리모, 마초적이지 않은 하드코어, ‘구리지’ 않은 슈게이즈)라는 밴드 소개가 그나마 도움이 된다.

baan - Reversal of a Man

[neumann]은 반이 올해 5월 15일 발표한 두 번째 정규 음반이다. 수록곡은 총 9곡에 전체 길이는 59분. 먼저 곡들의 길이가 만만치 않게 길다는 사실에서 반이 지향하는 장르와 스타일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실제로 헤비메탈이며 장엄할 거라는 예측을 배반하지 않는 음악의 연속이다. 시종일관 지글거리는 기타 사운드를 바탕으로 둠 메탈에 가까운 음악이 장엄하게 펼쳐지는데, 최근의 음악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반 역시 한 장르에만 헌신하지 않는다. 이들의 음악에는 슈게이징과 포스트 하드코어를 비롯한 기존 록 장르들이 제시한 사운드의 방법론이 다채롭게 녹아들어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고 있다. 기존 장르의 음악들이 보여준 전형적인 사운드와 구조에서 벗어나 개성 있는 소리와 드라마를 선보인다는 점이 이 음반의 가장 큰 성취이다.

명쾌한 리프를 먼저 제시하고 내달리며 간명한 후렴을 반복하는 음악이 아니다. 탑을 쌓듯 사운드의 성채를 구축했다가 폭발시키고 쓸쓸하게 소멸하는 음악도 아니다. 첫 곡 ‘Birdperson 새사람’의 경우 리프를 반복하지만, 반의 음악은 리프를 불현듯 출몰시키면서 계속 밀려오고 밀려가는 방식으로 길게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연주는 시작부터 거칠고 묵직한데 길들지 않은 야생의 질감을 놓치지 않는다. 전체적인 사운드를 부풀려 발산하는 투박한 공간감, 일렉트릭 기타 연주를 연결하거나 충돌시키고 병렬하는 의외의 방식, 그리고 드라마틱한 드럼 연주가 밴드의 개성과 매력을 만드는 주역이다.

Birdperson 새사람

음반을 들으면 우선 일렉트릭 기타 연주의 거침없는 톤과 스케일에 압도되고, 자유분방한 흐름에 사로잡힌다. 보통 6분이 넘는 길이의 곡임에도 전혀 지루하거나 뻔하지 않게 만들어내는 작법은 밴드의 역량이 가장 돋보이는 지점이다. 꼼꼼하게 연결하고 단단하게 묶은 음악이라기보다는 얼기설기 풀어놓은 음악처럼 느껴지도록 여러 장르의 어법을 활용한 감각이 밴드의 음악을 싱싱하게 한다. 거칠고 강력하기만 한 게 아니라 끊임없는 변화와 역동으로 다채로운데, 휘몰아치는 순간마저 전형적이거나 상투적인 순간이 드물어 음반의 처음부터 끝까지 놀라며 듣게 만드는 음악이다. 그만큼 보컬, 연주, 노이즈는 의외의 순간에 돌출하면서 자유로움을 발산한다.

음반의 매력은 이것만이 아니다. 난폭하게 들리거나 비관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장르임에도 음악의 정조는 팽팽한 결의를 가리킨다. 상투적인 절망의 디스토피아를 재현하지 않는 음악은 거친 사운드의 연속임에도 사운드로 압박하지 않고 흘러간다. 간명한 리프의 멜로디가 있고, 잘 뽑아낸 리프는 순간순간 빨아들이는 힘이 충분하다. 노래의 분량이 많지 않아도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록과 헤비메탈, 하드코어 장르의 음악을 꾸준히 들어왔다면 더 많은 매력을 발견할 음악이다. 소리의 질감과 멜로디, 부피, 구조, 정서 어느 측면을 따져보아도 탁월한 음반이다.

대중적으로 인기를 끄는 밴드들이 아주 조금 늘어나고, 페스티벌에 젊은 관객들이 몰려드는 요즘, 아직 눈에 띄지 않은 음반 한 장이 밴드 신의 오늘을 말없이 뒷받침하고 있다. 각자의 역할이 있겠지만 이렇게 튼실한 음반이 뒤를 받치지 않는다면 인기는 말짱 도루묵이다. 록이 여전히 록다운 순간을 만나고 싶다면 이 음반을 듣기를. 새로운 음악을 계속 찾아들어야 할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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