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정훈의 학교 밖 세상]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착각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 지명을 두고 교육계가 시끌시끌합니다. 무엇보다 이진숙 후보가 총장으로 재직했던 충남대 교수들과 민주동문회로부터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충남대 총장 재직 시절 한밭대와 통합을 추진하면서 소통과 리더십의 부족으로 실패한 점, 충남대에 설치된 소녀상 철거를 지시한 역사관과 철학, 국민의힘과 가까운 정치적 성향과 행보 등 이재명 정부의 첫 교육부 장관으로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선 기간에 이재명 후보를 지지했던 80개의 교육시민단체가 모인 ‘교육대개혁국민운동본부’는 지난 1일 ‘이재명 대통령은 교육대개혁을 위해 결단하라’는 성명을 통해 “이진숙 교육부장관 후보자 지명을 보면서 우리는 이재명 정부가 ‘진짜 교육개혁’에 관심이라도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조만간 대학교수 단체들도 이진숙 후보자의 자진사퇴와 이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하는 성명을 낸다고 합니다.

이진숙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던 중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06.30. ⓒ뉴시스

대통령실은 6월 30일 이진숙 후보를 지명한 이유를 “이 후보자는 충남대 공과대학장, 대통령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지난 대선 공약인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직접 추진했다”며 “미래인재 육성과 국가교육 균형발전을 이끌 적임자”라고 밝혔습니다. 이재명 정부가 교육 정책의 핵심 과제를 ‘서울대 10개 만들기’로 삼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이진숙 후보의 말을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이진숙 후보는 사교육 문제 해결 방안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입시 경쟁을 약화하기 위한 전략이 바로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며 “공교육을 강화해서 신뢰도를 높이는 것도 사교육(열풍)을 낮추는 방법론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교육계 밖에 있는 분들은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무엇이고, 그게 입시 경쟁 약화, 사교육 감소와 무슨 연관이 있다는 것인지 잘 모를 것입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2021년 김종영 경희대 교수가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출간하면서 대학 서열 체제 해체 방도로 이름 붙인 것입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김종영 교수가 처음 제안한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이전의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붙인 이름입니다.

1996년 전북대 강준만 교수가 출간한 『서울대의 나라』는 대한민국의 학벌주의를 최초로 공론화한 저서로 꼽힙니다. 강준만 교수는 대통령 후보, 장·차관, 국회의원, 고위공무원, 판검사, 대기업 임원, 언론사 간부 중 서울대 출신이 몇 퍼센트를 차지하는지 다양한 자료와 통계수치를 제시하며 대한민국을 ‘서울대의 식민지’라고 규정하고 서울대 패권주의 타파를 주장했습니다.

2004년에는 경상대학교 정진상 교수가 이끄는 사회과학연구원이 출간한 『대학 서열 체제 연구: 진단과 대안』에서 대학 서열화 체제를 대체할 ‘국립대통합네트워크’를 제안했습니다.

‘국립대통합네트워크’란 학벌주의의 근본 문제를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대학 서열화 체제에 있다고 보고, 프랑스의 파리1~13대학 체제를 모델로 하여 대학을 ‘평준화’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장기적 과제가 될 것이기 때문에 서울대와 지방 거점 국립대(강원대, 충남대, 충북대, 전북대, 전남대, 경북대, 부산대, 경상대, 제주대)를 묶어 공동의 졸업장을 수여하는 체제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것입니다.

‘국립대통합네트워크’는 빠른 속도로 정치권에 수용되었습니다. 민주노동당이 2007년 대선에서 처음으로 ‘국립대통합네트워크’를 공약으로 채택했습니다. 2012년에는 제1야당인 민주당이 대선 공약으로 수용했고, 2017년 대선에서도 문재인 후보의 공약에 포함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집권 이후 구체적 일정을 갖고 추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공약 파기에 대한 비판이 크게 일어나지도 않았습니다. 국민 대부분이 잘 모르기 때문에 추진 동력도 별로 없었다고 봐야겠죠. 그러다 이번 이재명 정부에서는 교육개혁의 핵심 정책으로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추진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수도권으로 모든 인적·물적 자원이 몰리고 지방이 소멸하는 상황에서 거점 국립대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것은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 정책입니다. 문제는 예산인데, 우리나라는 공교육비 중 정부 지원 예산 비율이 OECD 평균에 비해 매우 적기 때문에 대학 지원 예산을 더 늘리는 것도 타당합니다. 그러나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이름의 정책은 실효성 없는 정책이 될 것입니다.

‘국립대통합네트워크’가 파리의 1~13대학 체제를 벤치마킹한 것이라면,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대학 체제를 벤치마킹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대학의 서열은 연구중심 대학-교육중심 대학-직업중심 대학 순입니다. 캘리포니아주의 대학들은 10개의 연구중심 대학-23개의 교육중심 대학-116개의 직업중심 대학 구조로 되어있는데, 10개의 연구중심 대학을 묶는 방식으로 서울대와 지방의 거점대학을 묶어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통해 대학 서열 체제를 개혁하자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현재 서울대 입학 정원이 3,500명 정도인데, 이를 3만 명 수준으로 넓히자는 것이죠. 길을 넓히면 교통 체증이 완화되듯이 서울대를 10개로 만들면 입시 경쟁이 완화될 수 있다는 생각인데, 이렇게 해서 입시 경쟁이 완화될 수 있을까요?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 의과대학과 치과대학, 한의대, 약대, 수의대 준비반 관련 홍보 문구가 게시돼 있다.2024.9.22 ⓒ뉴스1

서울에 명문 사립대들이 몰려있는 조건에서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설계하는 것부터 어렵겠지만, 설사 설계해서 강행한다고 해도 지금 학생들이 겪고 있는 교육 경쟁, 사교육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지금 치열한 입시 경쟁은 서울대를 향한 경쟁이 아니라 ‘의치한약수’ 경쟁이기 때문입니다.

‘의치한약수’는 고3 담임들이 즐겨 쓰는 은어인데요, 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의 머리글자입니다. 외환위기 이후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고용이 불안정해지면서 대학 선택의 기준이 달라졌습니다. 대기업에 취직해서 이사까지 올라가더라도 50대면 옷 벗고 나와야 하는 현실에서 70대까지 일할 수 있는 전문직 자영업이 최고로 선망하는 대학이 되었습니다. 전국의 40개 의대를 다 채운 후 서울대 공대 지원이 시작됩니다.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된 7세 고시, 4세 고시, 모두 서울대가 아니라 의대가 목표입니다.

또 하나 살펴볼 문제는 지방의 거점 국립대의 위상이 왜 낮아졌는가 하는 것입니다. 1990년대까지 거점 국립대의 위상이 매우 높았습니다. 서울로 유학 올 형편이 되지 않는 학생은 거점 국립대를 나와 그 지역에서 잘 살았습니다. 지금 거점 국립대의 위상이 떨어진 것은 그 대학들이 뭘 잘못해서가 아닙니다. 지방이 소멸했기에 대학의 위상도 낮아진 것입니다. 지방에 좋은 직장이 부족하니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몰려가고, 지방에 청년들이 없으니 거점 국립대학도 인기가 없어진 것이지요. 지방 거점 국립대를 아무리 강화해도 지방의 일자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거점 국립대의 위상이 높아지기 어렵습니다.

이재명 정부는 교육개혁의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같습니다. 이재명 정부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에 교육 정책의 방향을 다시 잡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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