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민중의소리를 떠납니다,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이완배입니다. 11년 동안 “민중의소리 이완배입니다”라고 저를 소개했는데, 앞으로는 그럴 수 없게 됐습니다. 제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칼럼을 존댓말로 씁니다. 오늘은 왠지 정말로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제가 이 칼럼을 읽어주신 독자분들에게 얼마나 감사했는지는 글로 다 설명이 어려울 정도입니다.

2020년 7월 19일 이 칼럼을 시작했으니 5년 동안 이곳에서 독자분들을 만났습니다. 민중의소리가 설립된 이후 처음으로 기자 이름을 타이틀에 넣은 기명 칼럼이었습니다. 더없는 영광이었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첫 기명 칼럼의 공간을 내어준 민중의소리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말보다 글이 더 편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칼럼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아주 편하게(?), 혹은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실제 성격과는 달리 저는 글로 누군가를 비판할 때 칼을 잔뜩 벼리고 비판을 합니다. 상대가 내 글을 안 읽을 수는 있어도, ‘읽었다면 반드시 “이완배 저 새끼는 내가 언제 한 번 족친다”라는 심정이 들 정도로 쓴다’는 게 제 결심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 비판 칼럼을 읽은 단국대 기생충 서민 교수가 블로그에 저를 잔뜩 비아냥거리는 반론을 쓴 적이 있었는데, 고백하자면 저는 그때 참 행복했습니다. ‘그래, 내가 너를 비판했는데 네가 그 글을 읽고 밤에 잠이 잘 오면 내가 글을 잘 못 쓴 거겠지. 니가 지금처럼 발끈해야 내가 글을 잘 쓴 거지!’라고 흐뭇해했습니다.

“참 인간이 못됐다”고 하실 수도 있는데,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게 글을 쓰는 사람의 소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 사회에 해악이 되는 무도한 자들에게 대충 뭉개면서 글을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비록 제 칼의 크기는 매우 작지만, 적어도 제 칼의 예리함만은 항상 날이 서 있고자 했습니다.

이 칼럼을 통해 제가 비판했던 수많은 인물들, 예를 들면 윤석열, 한동훈, 김문수, 김건희, 홍준표, 박근혜, 이명박, 진중권, 서민, 재벌들, 아 몰라, 너무 많아. 아무튼 이들에게는 엿도 미안한 마음 없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매우 작은 스피커로서 살겠지만 이런 인간들을 논리적으로 모욕(?)하는 데 남은 생을 바칠 생각입니다.

마치 땡볕 길거리 한복판에 내팽개쳐진 기분입니다. 오해는 없으셨으면 합니다. 누가 떠민 길이 아니라 제가 선택한 길입니다. 그렇다고 두렵지 않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당연히 겁이 납니다. 하지만 지난 11년 동안 저는 민중들께서 보여주신 뜨거운 연대의 힘을 보았고, 그 경험을 가슴속에 새기며 용기를 내어 길거리 한복판으로 나아가 보겠습니다.

민중의소리, 특히 후배들에게 많은 감사를 전합니다. 선배가 든든한 버팀목이 돼야 했었는데 제가 많이 부족해서 그러지 못했습니다. 아끼는 후배들 이름 한 명씩 다 불러보고 싶은데 지면에 옮기기는 적절치 않아 속으로 부르겠습니다. 보잘것없고 부족한 선배를 따뜻하게 맞아준 후배들, 정말 고맙습니다.

유튜버로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처음 민중의소리에 입사해서 연대니 협동이니 공동체니 하는 말을 시작했을 때, 저는 꽤 비관적이었습니다. ‘혁명을 하자는 말도 아니고, 박근혜를 때려 부수자는 이야기도 아니고, 고작 연대니 협동이니 하는 말들에 누가 관심을 기울여줄까?’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런 두려움은 없습니다. 너무나 많은 분들이 민중의 삶 속에서 뜨거운 연대의 모습을 보여주셨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제 인생에서 민중의소리 11년은 가장 멋진 변화를 겪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이제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당연히 연대, 존중, 협동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를 꿈꿉니다. 사회과학을 공부했다는 인간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당연히 “쟤는 뭘 공부한 거야? 왜 저렇게 이상적인 말만 늘어놓고 있어?”라는 반론이 나옵니다.

7일 국회 앞에서 열린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대개혁! 국민촛불대행진'에서 시민들이 국민의힘 의원들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에 대한 투표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시도조차 하지 못할 정도라면 저는 연대니 협동이니 공동체니 하는 말을 그렇게 많이 하고 다녀서는 안 됐습니다. 그 시도를 늦은 나이에 시작하려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저자 찰스 아이젠스타인은 이런 말을 하더군요.

“비웃는 사람도, 좌절감을 느끼는 사람도, 가망 없는 이상주의라고 일축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실 나 자신도 책을 쓰면서 좀 더 그럴싸하게, 좀 더 책임 있게, 사람들이 이 세계와 삶에 거는 낮은 기대 수준에 맞춰 쓰고픈 유혹을 느꼈지만, 그것은 진실이 될 수 없었다. 나는 머리라는 도구를 이용해 가슴이 하는 말을 하려고 한다. 내 가슴은 우리가 그처럼 멋진 경제와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그보다 못한 것은 이룰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감히 신성한 경제를 열망할 수도 없을 만큼 망가진 상태는 아니지 않는가?”

네, 저도 딱 이 심정입니다. 머리라는 도구를 이용해 가슴이 하고 싶은 말을 하겠습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망가진 사회에서 살고 있지 않으니까요. 우리는 평화적 혁명으로 독재자를 두 번이나 끌어내린 민족입니다. 더 나은 사회를 꿈꾼다는 것, 그게 무모해 보여도 꿈을 꾸지 않는 것보다는 분명 나은 일이라 확신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칼럼을 읽어주신 모든 독자분들에게 뜨거운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민중들의 축복이 가득한 세상에서 다시 만나 뵐 날을 소망합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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