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다시 생각나는 ‘우리들의 죽음’

"젊은 아버지는 새벽에 일 나가고, 어머니도 돈 벌러 파출부 나가고. 지하실 단칸방엔 어린 우리 둘이서 아침 햇살 드는 높은 창문 아래 앉아..."

가수 정태춘이 부른 '우리들의 죽음' 가사 도입부다. 이 노래가 발표되었을 때 사회적 파장은 매우 컸다. 실제로 일어난 비극적 사건을 다룬 문제작이었기 때문이다. 망원동에서 어린 남매 두 명이 불에 타 죽었다. 맞벌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을 비워야 했던 부모는 그 어여뻤을 5살 딸과 3살 아들을 홀로 남겨두어야 했다. 그러나 밖으로 잠긴 방에서 놀 게 없었던 아이들이 집어든 것은 그만 성냥불이었다. 불의의 화재가 일어나면서 어린 생명들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들을 돌보지 못한 부모의 사정을 그저 개인의 문제로만 두고볼 수 없었다. 날로 커지는 빈부격차와 함께 턱없이 부족한 사회안전망 문제가 입에 오르내렸다. 그래서 이 노래는 당시 사회적 약자의 생존과 돌봄 문제를 우리 안팎에서 깊이 성찰하게 만들게 된다. 이 노래가 발표된 해가 1990년이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의 사회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최근 비슷한 사건이 연달아 터지면서 우리를 매우 슬프게 하고 있다. 지난 6월 24일 일어난 부산 진구의 화재 사건도 비슷했다. 새벽 4시경 부모가 청소 일을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불이 나 어린 자매가 목숨을 잃었다. 지난 2일 부산의 기장에서도 어린 자매가 화마로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이때 역시 부모가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고 한다. 이 두 아파트의 공통점은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되기 전인 2005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이란 사실이다. 화재 예방 설비가 부족한 주거지에서 취약 시간에 홀로 지내는 아이들이 있는 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사고라는 말이다.

심야나 새벽 시간에 화재가 발생하면 어린이들이 스스로 대피하기란 매우 힘든 일인데, 이런 상황일수록 화재 예방 기구가 제때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정부 조사에 따르면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주거지가 전국적으로 2만 4천여 개 단지에 이른다고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안전을 강조하는 새 정부가 이를 지나치지 않고 예방대책을 꼼꼼히 세우겠다고 나선 점이다. 지난 4일 정부는 관계부처회의를 열어 화재예방 지원 대책만이 아니라 긴급 돌봄서비스체계에 대해서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 실질 임금의 하락으로 저소득 부모세대의 불안정노동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런 결과는 자녀의 보육과 돌봄에만 집중할 수 없는 세대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양상으로 번져간다. 단기적 안전 대책과 함께 장기적으로는 격차 해소라는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는 것을 재차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배경이다.

어린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이 무겁다. 노래 '우리들의 죽음' 말미에는 죽은 아이들의 인사가 나온다.

"엄마, 아빠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우린 좋은 곳으로 가요."

35년이 지난 오늘에서 다시 겪는 비극이라 너무 비현실적이다. 그만큼, 남겨진 우리가 책임질 일이 무언지 가슴을 후벼파듯 다시 물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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