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후 5시,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 연단에 김용범 비서실장이 다시 올랐다. 한미 상호관세 협상 결과 브리핑 6시간 만이었다. 브리핑 주제는 '마이크로그리드 사업 확대'였다. 기자들의 관심은 시들했다. 북적거리던 브리핑룸엔 빈자리가 여럿 보였다.
하지만, 매우 중요한 이야기였다. 마이크로그리드는 송전망 포화 상태인 한국의 전력 계통 문제를 풀 해법 중 하나다. 분산된 재생에너지 전원을 IT 기술로 연계해 소규모 전력망을 구축하는 사업이다. 재생에너지 전환을 위한 핵심 기술이기도 하다. 정부는 내년 약 2천억 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한다. 철강·석유화학 공장, 공항, 대학, 농공단지 등에 마이크로그리드 시범사업을 배치할 예정이다. 이 사업은 기술 고도화를 위한 실증이자, 전국 확산을 위한 발판이다.
김 실장은 "단기, 중기, 장기 계획을 착실히 세워 하나씩 실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가운 발언이다. 지난 7월 10일 그의 첫 공식 브리핑 주제도 에너지 전환이었다. 그는 RE100 산업단지 추진을 “최우선 정책 과제”라고 소개하며, 전남·경남·충북 등에 재생에너지 특화 산단을 조성하고, 연내 2.3GW 계통 접속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전남 해상풍력 중심 1.1GW, 충북 태양광 중심 0.6GW, 도서·농촌형 산단 0.6GW 등 구체적 계획도 제시됐다. 이번 마이크로그리드 사업은 그 연장선에 있다.
주민 참여형 이익공유 모델 확대 의지도 재차 강조됐다. 신안군의 ‘햇빛연금’은 1가구당 연 160만 원 수익 효과를 거뒀지만, 전국 확산은 정체되어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역량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중앙정부 차원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김 실장은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는 장기계획이다. 곧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수년 전부터 반복돼온 계획이 재탕되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송전망 확충 방안이 필요하다. 장기 계획인 만큼 광역송전망확대 특별법의 문제점도 재검토해 반영하길 바란다.
일부에선 김용범 실장의 에너지 전환 정책을 전남지역을 위한 '선거용 정책'이라 비판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전남은 전체 재생에너지 발전량의 40% 이상을 생산하면서도 소비는 6% 수준에 불과하다.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은 계통 혼잡과 전환 비용 증가를 야기하고 있다. 이런 격차를 조정하고, 재생에너지 기반 신산업과 균형발전을 추진하는 일은 국가적 과제다. 이를 정략적으로 폄훼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에너지 전환은 구호가 아니라, 인프라와 제도, 거버넌스 전반을 다시 짜는 일이다. 산업·에너지·균형 정책이 일관되게 통합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