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이 지난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작업중지권과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적용 쟁취를 위한 행진 결의대회가 열리는 서울고용노동청까지 행진하며 노동재해를 추모하는 국화를 들고 있다. 2024.04.24. ⓒ민중의소리
또 한 명의 학교급식노동자가 폐암으로 숨졌다. 벌써 14번째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는 지난 1일 이같은 부고 소식을 전하며 교육청과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교육공무직본부의 설명을 종합해 보면, 지난달 31일 경기도 평택의 학교급식노동자 A씨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A씨는 지난 1998년부터 학교급식실에서 일하다, 22년간 근무한 뒤 정년퇴직했다. 하지만 방학 중 무임금과 생계 문제로 다시 급식 대체인력으로 복귀했고, 지난 2023년 폐암 3기 진단을 받았다. 이후 항암치료를 이어왔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교육공무직본부는 “생계를 잇기 위해 30여 년간 근무한 급식실은 결국 병의 시작이 되었고, 죽음으로 끝나게 되었다”며 “학교급식실은 열기와 수증기, 조리흄과 유해물질이 가득한 밀폐된 공간이다. 산소보다 뜨거운 김이 더 많은 조리공간에서 배기 시설도 없이 매일 수백인분을 조리하는 일, 이 위험을 수년간 반복해 온 노동자들이 폐암에 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공무직본부는 “아직까지도 학교급식실의 폐암 예방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고, 환기시설 개선은 수년째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죽음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조리흄’조차 산업안전보건법상 유해인자로 지정되지 않은 현실은, 정부와 교육 당국이 이 문제를 외면해 왔다는 증거”라며 “급식실에서 폐암으로 사망한 노동자가 14명에 이르는데도, 정부도, 교육청도, 누구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고 있다. 이 죽음은 더 이상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구조적 방치에 의한 사회적 타살”이라고 규정했다.
교육공무직본부는 “학교가 더는 병을 주는 공간이 되지 않도록, 급식노동자가 병들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교육청과 정부는 지금 당장 응답해야 한다”며 ▲경기도 내 모든 학교급식실 환기시설 실태조사 실시 및 전면 개선계획 수립 ▲노사 공동 점검체계 구성해 실효성 있는 안전대책 마련 ▲학교급식노동자의 폐암 CT 검진 결과 및 폐암 산재 신청·승인 현황 즉시 공개 ▲중장기 건강 관리 대책 수립 등을 촉구했다.
지난 4월 기준, 학교급식노동자의 폐암이 산재로 인정된 건수는 175건으로 늘어났다. 지난 2021년 학교급식노동자의 폐암 산재가 처음으로 인정된 이후, 죽음의 급식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실제 개선하는 움직임은 더디기만 한 상황이다.
학교급식 노동자들의 폐암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조리흄이라는 발암물질이다. 이에 정부는 학교급식실 환기 시설 개선에 착수했으나 실제 이행된 학교는 36%에 불과하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지난 6월 발표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폐암에 걸린 학교급식노동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학교급식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보장하도록 책임을 부여하고, 1인당 적정 식수 인원 기준을 정하는 내용을 담은 학교급식법 개정안이 지난해 6월 진보당 정혜경 의원과 올해 7월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에 의해 잇따라 발의됐다. 하지만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계류 중이다.